열왕기하 14장 25절-27절
25절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26절 :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을 보셨고
27절 :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제목 : 요나 선지자
서론 : 다른 선지자
요나서를 읽어보다 보면 다른 선지서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선지서에는 여호와의 말씀을 강조합니다.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요나서에서는 요나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은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는 말씀 뿐 입니다. 그 외에 요나서에 기록된 말씀은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며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행동에 어떤 것으로 응답하시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나서의 주된 내용은 선지자의 행동, 그 행동에 따른 백성의 반응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 입니다. 우리는 이런 선지자들을 역사서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하에 기록된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요나서의 이야기처럼 선지자의 행동과 말씀을 받은 백성의 반응,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요나서는 역사서로 분류되지 않고 선지서로 분류되었습니다. 역사서가 아니라 선지서로 분류되었지만 다른 선지서와는 다른 형식으로 다른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나서가 역사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선지서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요나서의 이야기가 환상이나 꿈에 나타난 이야기 혹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이야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요나서를 읽을 때에 우리가 역사서 성경을 읽듯이 읽어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야기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요나서의 배경과 요나서기 기록되게 된 계기들을 살펴보면서 요나서를 하나님께서 주신 뜻대로 읽어갈 수 있는지를 살펴보길 원합니다.
요나의 시대 : 여로보암 II세
요나 선지자는 여로보암 II세 때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인 아합 왕을 물리쳤던 예후 왕의 증손자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예후 왕의 증손자였지만 자기 이름과 같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북이스라엘을 세웠던 여로보암 왕과 똑같이 행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벧엘과 단에 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그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여로보암 왕은 송아지 우상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송아지 우상은 여호와 하나님이 앉으시는 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송아지 자체를 하나님으로 생각하거나 신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정한 방식과 규례대로 섬겨주길 원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먼저 요구하셨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 왕이나 여로보암 2세는 남유다에 있는 성전에 백성들을 보내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붙잡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왕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규례대로 섬기지 않는 죄를 범했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과 규례대로 섬기지 않았다고 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예 섬기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북이스라엘의 죄는 자기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그 한 가지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온 세상에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다른 이방신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이방신을 섬기는 방법으로 섬겼기 때문에 죄를 범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우상을 송아지를 태운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여로보암 왕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올라 탄 탈 것이라고 송아지 우상을 지었지만 그것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다른 많은 우상과 거짓 신처럼 대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백성들은 온 세상에 유일한 신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금송아지를 탄 많은 신들 중에 하나로 섬겼다는 이야기 입니다. 여로보함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과 거짓 신들의 위치로 끌어 내린 것입니다.
왕도 백성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지만, 온 세상의 유일하신 여호와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다른 이방 신과 우상들을 같은 위치에 두고 자신이 필요한 부분, 좀 더 기도를 잘 들어줄 것 같은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 자기 원대로 사는 삶을 꿈꾸었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사람도 있었고, 이 세상에 신은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도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다른 이방 신의 위치로 끌어내린 후 일어난 죄악의 시대였습니다.
요나의 청중 : 여로보암 시대의 백성
죄악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여로보암 2세의 아버지인 요아스 왕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자기 아버지처럼 따랐습니다.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표현은 북이스라엘이 다른 이방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요아스 자신이 강해서도 이스라엘의 병사들이 강해서도 그런 것이 아니라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셨다는 것이라 인정하는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뜻을 알려주시니 요아스 왕에게는 엘리사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핵심되는 전력, 병거와 마병이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죽고 나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 나라들에게 많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 때 당시 이스라엘에는 고난이 매우 심했습니다.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었습니다. 이 말은 나라가 멸망해서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 가운데 자유가 있지도 않았습니다. 주변 강대국들에게 치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찌할 수 없는 형편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이스라엘을 도와줄 나라도 없었습니다. 각자의 살 길을 찾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불행한 형편을 돌볼 자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큰 어려움 속에 있었고 이 어려움 속에서 빠져나갈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 없애버리겠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 계셨습니다. 아직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에 내어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그 뜻에 따라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소명을 다하고 죽었고, 이제 요나 선지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은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 듣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요나의 계기 : 구원자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요나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나 선지자가 남긴 요나서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슨 말씀을 전하셨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직접적인 말씀을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선택 받고 언약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자들, 악하고 악독한 니느웨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나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악독한 니느웨 성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놔두시고 악독한 니느웨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시려고 했을까요?
우리는 요나의 태도를 보면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악독한 니느웨 사람들보다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착각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만의 하나님이시라고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스리시며 그것들을 사랑하여 주십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않는 것이 없으며, 이 세상 어떤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받지 아니하는 것이 없습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온 천지를 지으시고 만드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만의 하나님으로만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강대국 가운데, 그 틈바구니 속에서 이스라엘은 작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택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온 세상을 지으시고 온 세상을 운행하시며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우주와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온 우주와 나라와 백성 가운데 택함 받은 이유를 알아야 했습니다. 요나의 불성실과 불순종은 이스라엘의 불성실과 불순종을 나타내었고 요나의 분함과 성냄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악독함과 성급함을 나타냅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시고 니느웨 사람들처럼 돌아오길 원하시는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2세의 손을 빌려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결론 : 그리스도와 요나
우리는 요나서를 읽을 때에 여로보암 2세 때에 일어난 일만을 가지고 요나서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언급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님께서 진정 그리스도가 되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 외에는 다른 것을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이스라엘의 불성실과 불순종, 이스라엘의 악독함과 성급함을 나타낸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나와 같은 일을 겪으셨지만 단 한 순간도 요나와 같이 생각하시거나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설하시고 순종하시며, 선하시고 온유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품으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요나서를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요나서를 읽어가며 요나 선지자를 통해 보여주시는 두 가지 모습을 함께 보게 될 것입니다. 불성실하고 불순종적이며 악독하고 성급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성실하시며 순종하시고 선하실 뿐만 아니라 온유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함께 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여 주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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