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일 월요일

하나님 고백 (요나 4장 1절-3절 / 21.03.02)

요나 4장 1절-3절

1절 :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절 :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절 :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제목 : 하나님 고백


서론 : 하나님 고백하기


2021년 1학기는 하나님 고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운동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고백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한다는 말도 있지만 하나님께 고백하여 돌아간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번 한 학기 동안 하나님 고백이라는 말을 우리 가운데 세기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우리 삶의 유일하신 하나님께 go-back 하는 귀한 훈련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고백이라는 주제와 맞춘 것은 아니지만 이번 학기 큰모임에는 요나서를 가지고 함께 공부할 예정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이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하나님을 떠났다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특이한 선지자 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이야기가 왜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달아났고 하나님의 뜻을 싫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은 요나 선지자가 자신이 경험하고 알았던 하나님에 대해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고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본론1 : 매우 싫어하고 성내었다.

 
요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성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베푸신 은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니느웨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요나가 살던 북이스라엘 왕국과는 원수 지간에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아시리아는 성경에 앗수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앗수르는 자기 나라와 민족에 대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진 나라들을 아주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정복 당한 민족들을 죽여 해골로 탑을 쌓기도 하고 싸움을 하지 않고 항복한 지역의 왕족이나 귀족들은 코를 바늘로 꿰어 잡아가 처형하고 평민들은  자기가 살던 고향에서 강제로 다른 곳에 살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거추장스러운 어린 아이들은 바위에 내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앗수르 제국 주변 국가들은 가혹하고 잔인한 앗수르의 만행에 앗수르를 싫어했습니다. 특히, 북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와 안 좋은 관계에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던 요나 선지자에게는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은 하나님의 뜻은 정말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런 잔혹하고 폭력적인 자들을 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보내서 회개하도록 하시고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요나 선지자가 앗수르 제국을 향해서 가졌던 마음은 결코 특별한 감정이 아닙니다. 정의의 하나님,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악독하고 잔인하며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을 용납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또한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불합리한 점을 보고 세상의 악한 것을 보며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저것을 그대로 놓아두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악이 악에 합당한 벌을 받길 원합니다. 선은 선에 합당한 복을 받길 원합니다. 그러나 요나 선지자의 눈에는 선하신 하나님이지만 은혜로우시고 노하시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 너무나 불의하시고 악하게 보였습니다. 

본론2 : 이러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요나 선지자는 곧바로 불만을 쏟아 놓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니느웨를 회개하게 하고 그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나 선지자는 다시스로 도망했었습니다. 하나님의 행동이 너무나 불의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요나의 생각과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의롭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시고 온 세계와 열방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판장 되어 주시지 않으니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요나에게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나의 고백은 결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죄인도 용납하시는 공평하지 못한 재판관이라는 고백입니다. 니느웨는 분명 죄를 범했습니다. 앗수르는 분명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습니다. 그들을 전쟁에 승리를 위한 살인이 아니라, 불필요한 살인을 하고 잔인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자기 터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을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재산을 빼앗고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앗수르를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용서해주셨습니다.

요나가 드렸던 고백은 너무나 처절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그저 도망칠 수 밖에 없는 무력한 인간의 공허한 외침일 뿐입니다. 요나가 고백했던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요나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요나의 생각도 감정도 그가 품고 있는 뜻도 이해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선한 생각과 선한 감정,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해 선지자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도구에 불과한 요나가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도망치는 것이었으나 그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 아래에 있었을 뿐입니다.

본론3 : 나의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요나는 자신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하며 그저 자신이 죽길 바랍니다. 평생 선하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겼던 자신의 삶이 부정되는 것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벌 받아야 할 저들은 살려놓으시는 불공정하고 불의하며 악해보는 하나님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라는 직분을 받아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살아왔는데 눈 앞에 있는 결과는 벌 받아 마땅한 자들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 재앙이 넘어지나가는 장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저 밖에 죽어가는 다른 백성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지 않는 것과 같이 보였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게 내린 재앙이 이대로 넘어가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런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을 한 명 더 알고 있습니다. 까닭 모를 고난 가운데 있어서 자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욕하지는 못하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어나는 날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욥 입니다. 욥은 자신을 위로하는 친구들, 욥이 당하는 고난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 얘기하는 친구들의 위로를 들으면서 매우 불쾌했습니다. 욥이 스스로 자신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자신이 아무런 죄도 없이 고난을 당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으로 자신의 의로움과 정당함을 무시한 전능자라고 고백합니다. 욥의 고백은 고통과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무심함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불평과 불만에 응답해 주실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욥의 요구는 끝내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욥과 친구들 앞에 나타나서 욥이 죄 없이 고난을 받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이 욥이 받은 고난을 함부러 평가했다고 말씀하셨고 오히려 자신을 원망했던 욥이 솔직하게 자신의 말을 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 가운데 처한 욥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주셨습니다. 요나의 처지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불평을 기쁜 마음으로 은혜와 긍휼과 오래 참으시는 깊으신 인애로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요나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훈을 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결론 : 솔직하게 하나님 고백하는 삶


하나님께서는 요나나 욥과 같은 솔직한 고백을 우리에게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겪는 아픔이나 고통, 우리가 처한 이해되지 않는 상황, 고난들을 하나님의 뜻이라 덮어놓고 믿기를 바라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 어떤 존재보다 심지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저런 말씀에서 고통을 당하고 혼란을 느끼며 불합리함을 느낄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십니다.

까닭 모를 고난이나 이해되지 않는 불합리함, 불공정함에 우리의 마음이 어두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솔직함을 요구하십니다. 욥과 요나가 한 것처럼 고난과 고통, 혼란과 무질서의 근원이라고 보여지는 하나님께 매달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가끔 상황에 매몰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될까봐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나오길 원하십니다. 솔직한 말로 하나님을 고백하길 원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우리 이번 한 학기 이런 주제를 가지고 한 학기를 살아가려고 합니다. 고난과 고통,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상황 가운데 내던져졌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솔직한 말로 하나님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고백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사랑, 우리에게 진정 무엇을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셨는지를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미리 정답을 가르쳐드리면 그 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발견합니다. 요나서를 공부하면서, 또한 위원들이 준비한 주력 운동에 참여하면서 그 답을 찾아가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를 누리길 원합니다. 캠퍼스 가운데 사랑과 은혜를 흘려 보내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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