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8일 수요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레위기 18장 1절~5절 / 20.04.12)


레위기 18장 1절-5절

1절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절 :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3절 :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4절 :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5절 :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제목 :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


서론 : 습관과 관습


습관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을 겁니다. 습관이라는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일단 습관이 되면 쉽게 습관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습관 하나를 만들려면 몇 개월, 몇 년이 걸립니다. 쉽게 얻을 수 없고 쉽게 만들 수 없는 것이 습관 입니다. 각 개인에게는 습관이라는 것이 있다면, 민족에게는 관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관습은 그 민족이 살아오면서 쌓아온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 같은 경우에는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이 있습니다. 지금은 모든 나라가 양력을 사용하지만 우리 한민족은 옛날부터 음력을 사용하였고 음력 1월 1일과 음력 8월 15일을 각각 설날, 추석이라 이름하고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라는 관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에는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등장합니다. 레위기는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을 끝내고 해방되어 홍해를 건너와 시내산에 모여 1년 간 살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 땅에 430년 간 살았습니다. 그래서 원래 이스라엘 자손이 가지고 있던 관습 보다는 애굽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관습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모습을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에 일본의 문화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특히 언어부분이 많이 영향을 받았는데 신삥, 유도리, 히마리 같은 말들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430년간 애굽의 지배를 받았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애굽의 관습들이 얼마나 많이 남았을지 짐작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관습과 풍속을 경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관습과 풍속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애굽에서 나와서 들어갈 가나안 땅에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지 못할 관습과 풍습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길 요구하십니다. 말씀을 찬찬히 살피면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론1 : 나는 여호와이니라


먼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라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도 가르쳐주셨지만, 여호와라는 이름에 큰 의미를 두어서 가르쳐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 하나님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라는 뜻을 가진 엘 샤다이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 가나안에서 방황할 때에 가나안 족속들 사이에서 평화롭게 살게하셨고 다른 이방 왕들에게도 대접받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온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곳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그들을 지키셨고 돌보셨습니다.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의 청에 따라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들어간 후, 요셉을 모르는 왕이 일어나 야곱의 자손, 즉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힐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때 모세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르십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을 알려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써의 모습은 선택받은 자들이 평화롭게 다른 민족들과 어울려 살게 하셨다면, 여호와 하나님으로써의 모습은 여호와께서 택하신 백성들이 부당한 대우를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그들에게 약속한 땅에 부정하고 간악한 죄인들에게 짖밟혔을 때에 자기 백성들을 일으켜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땅을 차지하게 하실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레위기에는 잘 나오지는 않지만, 출애굽기와 여호수아를 보면, 정말로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때리고 부려먹었던 애굽 나라를 박살내시고 가나안 땅의 포악과 음행을 일삼던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에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고 말씀하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 너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던 애굽 나라를 부숴버리고 해방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자신이 지으셨고 기르셨던 애굽 사람들, 가나안 사람들을 버리도록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알리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본론2 : 풍속을 따르지 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을 아시고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첫번째는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애굽과 가나안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견디지 못할 정도로 싫어하시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심판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해방을 위해서도 심판하셨지만, 애굽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도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애굽에는 더러운 풍속이 있었는데, 그것은 오늘 읽었던 레위기 18장 뒷부분에도 기록되어 있는 근친상간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덜했지만, 애굽 왕실에서는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실의 혈통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애굽 왕족들은 자신을 신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혈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오빠와 여동생이 결혼하는 일은 많은 일이 있었고 아버지와 딸이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더러운 풍속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대로 깨끗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가나안에도 더러운 풍속이 있었습니다. 이 풍속도 물론 레위기 18장 뒷부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에 퍼져있던 더러운 풍속은 동성애와 수간입니다. 동성애는 여러분 아시다시피 같은 성별의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이야기 합니다. 이 풍속은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도 널리 퍼져 있어서 로마서 1장에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 질서를 반대하는 일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각자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룰 것을 아담과 하와를 지으실 때 부터 명령하셨습니다. 수간은 동물을 범하는 일입니다. 설마 동물하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이 허망한 생각을 하고 죄를 짓는데는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습니다. 가나안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풍속이든 가나안의 풍속이든 자기 백성이 이런 일에 동참하지 않도록 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런 일을 더럽게 여기길 원했습니다. 어떤 편견이나 차별만 가지도록 이야기 하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자신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땅도 더럽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땅도 그 사람들이 더러워서 그 사람들을 토하여 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고 순리가 아니라 역리,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더러운 일이며, 인간이라면 행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인식과 생각을 가지길 원하셨습니다.

본론3 :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


하나님께서는 더러운 풍속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와 법도를 따르길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처음 살펴보았던 나는 여호와와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문장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 먼저 말씀하시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기준으로 그저 헌신을 바라고 경배를 바라는 신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삼으려고 하는 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친히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직접 그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대로 기분대로 충동적으로 우리를 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우리를 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우리를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고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깎은 연필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연필이 뭉퉁해져서 연필을 깎는데 연필이 아프다고 자신이 깎기는 것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규례와 법도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차원의 존재와 주고 받을 수 있는 수단, 통신 규약, 프로토콜을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도 못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생각을 가지시고 어떤 말씀을 하는지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규례와 법도를 먼저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며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을 거부하며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숨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고 자신의 법을 주셔서 하나님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서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결론 :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함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감격하고 싶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우리에게 사랑으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풍습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접하게 될 풍습을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자신들이 가졌던 애굽의 풍습을 버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가나안 족속의 풍습을 버려야 하듯이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던 더럽고 가증한 풍습들을 버리고 언젠가 만나게 될 새로운 더럽고 가증한 풍습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채워서 살아가야 합니다.

찬양 : 새로운 삶으로 살게하는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키셨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깨집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가 탐내지 말라는 말씀을 지킨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온전히 그리고 완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더 높은 의로움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뛰어넘는 거룩하고 숭고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망이라는 죄의 삯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 없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의로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그치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죄의 결과, 죄의 삯이 죽음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로 인하여 진노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심판을 받으시고 완전한 부활로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한 용서를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규례와 법도를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진 모든 벌을 대신 받아주시고 완전한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은 부활 주일 입니다. 이런 기쁜 소식을 즐거워하며 함께 나누는 날입니다. 함께 만나지 못하고 나눌 수 없지만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주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쁨으로 우리의 부활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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