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2장 8-17절
8절 :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9절 :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참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절 :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절 :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절 :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절 :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4절 :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15절 :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16절 :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17절 :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
제목 : 작은 여우 잡기
서론 : 지혜로운 사랑
우리는 지금까지 지혜서를 함께 읽고 있습니다. 지혜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가운데 살아가면서 관찰하고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지만 그 가운데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가운데 행복하게 살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담은 성경입니다. 지혜서의 마무리는 우리가 오늘 읽었던 아가 입니다.
아가라는 말은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수많은 노래 중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인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러주는 사랑의 노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가는 사랑의 노래로 이루어진 성경입니다. 거룩하고 정결한 성경책에 남녀 사이에서 부르는 사랑의 노래가 들어간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남녀 관계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요소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관계 입니다. 잠언과 전도서에는 남녀 관계, 부부 관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관계이며 그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먼저, 잠언 19장 14절 입니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다음으로는 전도서 9장 9절 입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 둘을 부부로 맺어주시며 창조를 마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녀 관계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창조세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느끼길 원하셨습니다.
아가는 긴 서사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사시라는 말은 이야기, 줄거리가 있는 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지만,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쉽게 분리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가는 남녀 사이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행복의 상태로 이르게 하는 지혜를 가르칩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사랑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누리게 하고자 하시는 행복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본론1 : 사랑하는 자에게로 (8-9절)
방금 읽었던 부분은 아가의 여자 주인공의 말입니다. 아가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술람미 여자라고 불리는데, 피부가 검고 생김새가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피부가 검은 이유는 술람미 여자가 목자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양 떼를 돌보며 살았기 때문에 햇빛에 그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평범한 예루살렘 여자들은 햇빛에 그을리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을 가꾸며 살았지만, 아가의 주인공인 술람미 여자는 그런 시간도 없어서 그을려 버린 자기 피부에 많은 여자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술람미 여자의 신랑은 왕과 같은 매력을 가진 목자였기 때문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술람미 여자를 사랑하는 신랑의 눈에는 어느 누구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술람미 여자는 자기 신랑이 자기를 보기 위해 달려오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신랑은 노루와 어린 사슴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신랑은 노루와 어린 사슴에 비유될 만큼 높은 산과 낮은 산을 가리지 않고 껑충껑충 뛰어 오르며 넘어서 옵니다. 신부와 신랑 사이에는 그들의 관계를 방해하는 요소가 많이 있지만, 신랑은 신부를 보기 위한 그 마음 하나로 장애물들을 뛰어 오르며 넘어섭니다. 사랑은 사랑을 방해하는 문제들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을 잘 뛰어넘을 수 있도록 넉넉한 힘을 줍니다.
술람미 여자는 신랑이 산들과 작은 산들을 노루와 어린 사슴과 같이 순식간에 뛰어 오르며 넘어서 왔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여자의 집에 도착하여 벽 뒤에서 서서 창문을 들여다 보며 창살 틈으로 보이는 신부를 찾는다고 노래합니다. 신랑은 자기 신부를 찾기에 간절합니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습니다. 신부의 집에 덜컥 들어가 신부를 데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부 집 문 앞에 서서 신부를 부르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신부의 얼굴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 거릴 뿐입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뛰어 넘고 극복하지만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신부가 자신의 부름에 응답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신부를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서 신부의 모습을 창살 사이에서 찾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신부는 그런 신랑의 모습을 보며 자기의 사랑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노루와 어린 사슴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유합니다.
본론2 : 일어나 함께 가자 (10-15절)
이 부분은 신랑의 말입니다. 신랑은 왕과 같이 뛰어난 매력을 가진 목자 입니다.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술람미 여자가 신랑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술람미 여자가 신랑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놀릴 만큼 아주 매력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앞 부분에서 본 것과 같이 신랑은 오직 술람미 여자만 사랑하며, 그를 위해서 산과 작은 산을 사슴과 어린 사슴과 같이 빠르고 힘차게 뛰어 넘어올 정도로 술람미 여자에게 푹 빠진 상태 입니다. 푹 빠졌지만 신랑은 자기 신부에게 무례하지 않고 지킬 선을 지키며 신부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자신과 함께 갈 것을 요청합니다. 신부에게 일어나 달라고 함께 가달라고 초청합니다. 신랑이 초청하는 곳은 봄이 찾아온 동산입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온 동산으로 신부를 초대합니다. 이스라엘 지역의 겨울은 우기이기 때문에 비가 그쳤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 겨울이 끝났다는 이야기 입니다. 겨울이 끝이 나고 봄이 왔습니다. 비가 그치고 난 뒤의 동산에서는 꽃이 피고 새들이 찾아와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둘기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춥고 비가 오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비로소 동물들이 밖으로 나와 활동하는 것처럼 신랑은 집에 있는 신부를 부르며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초청합니다.
봄이 되고서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열렸습니다. 포도나무에는 꽃을 피워서 꽃 향기가 가득합니다. 무화과의 푸른 열매와 포도나무 꽃은 싱그럽고 따뜻한 봄이 왔음을 잘 알려줍니다. 특히 무화과 열매와 포도나무 꽃은 곧 후에 먹을 수 있는 열매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무화과는 봄에 푸른 열매가 열리지만 실제로 수확하는 때는 늦여름 입니다. 포도 나무의 피어난 꽃도 늦여름에 수확할 달콤한 포도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봄은 가을에 수확하게 될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하며 정성을 쏟는 기간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랑과 신부의 관계 또한 지금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푸른 열매를 즐기면서도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사랑의 관계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신랑은 집 안에서 자기의 초청에 응해줄 신부를 비둘기에 비유합니다. 지금이야 우리에게는 비둘기가 더러워 보이고 협오감이 드는 새가 되어 버렸지만, 비둘기는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사랑의 상징으로 사랑스럽고 귀엽고 순전한 모습을 지칭합니다. 이 비둘기는 바위 틈 낭떠리지 은밀한 곳에서 숨어 있습니다. 신랑은 비둘기를 보려고 해도 그가 숨어있어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얼굴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신랑은 앞에서 봄이 온 동산으로 초대하는 자기 초청에 신부가 빨리 응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신부는 신랑의 초청에 응하지 못할 작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라는 표현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는 신부가 신랑의 초청에 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 요소 입니다. 신랑은 자신을 가로 막는 방해를 노루와 작은 사슴과 같이 산과 작은 산을 뛰어 오르고 넘어서 신부에게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신부에게도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같은 문제가 있어서 신랑의 초청에 속히 대답을 줄 수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신부는 신랑의 요청과 부름에 따르기 위해서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작은 여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방해하고 둘이서 맺게 될 열매에 해코지 하는 것이 작은 여우 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의 사랑을 위하여 방해되는 요소들, 가로 막는 요소들을 분별하여서 과감히 잡아내어 사랑을 나누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본론3 : 그가 나에게 내가 그에게 (16-17절)
다시 신부의 대사로 넘어 왔습니다. 신부는 끝내 작은 여우를 잡고 신랑과 함께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신부는 신랑이 자신의 것이며 신부인 자신도 신랑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신부와 신랑은 다른 그 누구의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것이며,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둘은 스스로 그 관계에 속합니다. 부부 관계는 다른 누구에게 허용될 수 없는 관계 입니다. 다른 누가 함께 할 수 없는 관계 입니다. 작은 여우와 산으로 표현되는 서로를 가로막는 문제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속하고 서로의 것이 된다는 것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는 기쁨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백합화 같은 서로의 매력 가운데 양 떼를 먹이며 그들을 키우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행복한 삶은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는 전에 돌아올 때에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여러가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부딪히는 문제들 가운데에서도 언젠가 정해진 때에는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와야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산과 작은 여우 같은 문제들이 있지만 정한 때에 서로에게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술람미 여자는 신랑에게 저녁이 되기 전에는 돌아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과 같이 자기 거처로 돌아가야 합니다. 베데르 산이라는 말은 둘로 나뉘어진 산, 골짜기가 깊은 산이라는 말로 술람미 여자가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노루와 어린 사슴들이 산에 거처를 정하고 거처로 돌아갈 때가 되면 자기 거처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신랑에게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유지하고 누리기 위하여 돌아와 달라는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 :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이제까지 아가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아가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지혜서 입니다. 술람미 여자와 그의 신랑인 목자와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부부 관계 가운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 사랑은 결코 다른 누구와 공유할수도 대신할 수 도 없는 사랑입니다. 서로에게 속하였고 서로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즐거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행복을 가르치십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산들과 작은 여우가 가로 막고 방해하더라 하더라도 서로의 장애물을 뛰어 넘고, 쫓아냄으로 서로의 관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놓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찬양 :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의 지혜의 근원이 되시며, 가장 모범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산들과 작은 여우의 방해에도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의 몸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자기 사랑을 우리에게 표현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죄라는 장애물을 뛰어 넘고 작은 여우를 쫓아내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행복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길 원하셨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를 향하고 이 사랑이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졌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깊고도 진한 사랑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 사랑을 느끼며 감사하며 또한 다시 사랑하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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