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30일 월요일

풍성한 하나님 (빌립보서 4장 10절- 20절 / 20.12.01)

빌립보서 4장 10절- 20절

10절 :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절 :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절 :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절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절 :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절 :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절 :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절 :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절 :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절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절 :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제목 : 풍성한 하나님


서론 : 한 번 더 감사


사도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 하며 다시 한 번 빌립보 교회가 보내준 선물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섬김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과 사랑의 위로와 성령의 교제와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울이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말했던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노력과 섬김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빌립보 교회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바울 이 기쁨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나누길 원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함께 말씀을 살피면서 바울과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와도 함께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도록 합시다.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 (10절)


바울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오랜 제자가 선생을 찾아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느끼고 있는 기쁨은 그런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바울이 느끼는 기쁨은 주님께서 주신 기쁨이며 주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진정한 한 몸, 한 형제된 구원 받은 자의 모임 가운데 이루어진 주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이 바울에게 더 특별한 것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싹이 났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감옥에 갇힌 바울을 걱정하며 바울을 위하여 생각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염려와 걱정으로 사도 바울을 도울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시 싹이 남이니 라는 표현은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을 도운 것은 이번 한 번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에도 바울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로마 감옥에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에바브로디도와 함께 선물을 보내며 바울을 다시 도왔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항상 자신을 도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기회가 없어서 돕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고 말해줍니다. 빌립보 교회는 항상 바울을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적절한 때에 바울을 돕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준 선물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주 안에서 잘 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고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자족하기를 배움 (11절-13절)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보낸 선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결코 선물을 더 받기 위한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선물을 더 바라고 선물에 대한 감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처한 어떤 형편에서도 만족하며 지낼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바울이 겪었던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바울은 비천에도 처할 줄 알고 풍부에도 처할 줄 알며 배부르고 배고프고 풍부하며 궁핍할 때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서 어떤 외적인 환경 속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보통 사람은 알 수 없는 비밀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특별한 능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능력으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바울은 할 수 있다고 하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자신 앞에 닥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자가 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단지 바울은 바울 자신 앞에 닥친 고난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감당하고 견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비천에도 처하며 풍부에도 처하였으며,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한 상황에 있었던 자였습니다. 경험만으로는 이것들을 견디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부족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되어야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만족하는 자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배운 일체의 비결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대한 칭찬 (14절-17절)


괴로움 가운데에서도 만족함을 누릴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바울이었지만, 바울의 고난과 어려움에 함께해 준 빌립보 교회에게 감사 인사를 빼놓지 않습니다. 감사 인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잘한 일이라고 크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감옥에 갇혀 거동을 할 수 없는 바울을 돕는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었고 감옥에서 쓸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더욱 칭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돕는 일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복음의 시초에 즉,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던 제 2차 전도 여행의 처음부터 바울의 선교 활동을 돕기 위한 재정 후원을 동참하였습니다. 다른 교회는 바울을 돕지 않았지만 빌립보 교회를 도왔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한 번 뿐만 아니라 두 번이나 사도 바울의 쓸 것을 도왔다고 말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물질으로나마 복음을 위한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칭찬을 하면서 이 칭찬이 빌립보 교회에게 더 많은 선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풍부에도 빈곤에도 처하더라도 만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을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도록 바꾸셨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선물에 대해서 감사하는 이유는 빌립보 교회에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선행은 분명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선행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빌립보 교회를 온전하도록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감사를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자기에게 뿐만 아니라 선행을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모든 것이 있고 풍족한지라 (18절-20절)


바울은 자기에게 모든 것이 있고 풍족하다고 말합니다.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보낸 것들로 풍족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받은 선물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제사로 드렸던 제물을 떠올리게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제사로, 십자가 죽으심으로 성도가 드려야 할 모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제물과 제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 제사로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선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모든 삶의 행동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선물 그 자체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에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선물했던 빌립보 교회의 마음과 선행을 하나님께서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빌립보 교회의 쓸 것을 채우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내놓은 만큼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원래 풍성한 하나님이십니다. 그 풍성하심을 언제나 우리에게 베푸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우리의 부족함만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풍성함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뜻에 맞는 범위 안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의 영광과 이익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풍성함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채워질 때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환란 가운데 있는 성도를 도우시고 고통 가운데 있는 자를 건지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필요와 간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같이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을 되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작은 선행도,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선물을 보낸 것과 같이 조그마한 선행이든 커다란 선행이든 기쁘게 받으시고 영광으로 여기십니다. 우리의 모든 마지막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사도 바울을 통하여 빌립보 교회는 그들의 선행을 칭찬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풍부에도 처할 줄 알고 가난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 때문에 빌립보 교회의 도움이 꼭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빌립보 교회의 섬김은 바울이 로마 생활을 풍족하게 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한 마음과 행동을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풍성하신 것으로 빌립보 교회를 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로 자라나게 하실 것입니다.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우리 안에 착한 소원을 가지고 기꺼이 남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습니다. 충실한 일꾼인 에바브로디도를 기꺼이 내놓은 빌립보 교회처럼, 자기 목숨을 내놓을 만큼 바울을 섬긴 에바브로디도처럼 우리는 풍성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기꺼이 우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소망이 됩니다. 이런 은헤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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