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2일 수요일

주께 헌신하기로 하면 (민수기 6장 1절~8절 / 20.04.26)

민수기 6장 1절~8절

1절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절 :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3절 :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절 :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절 :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6절 :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것이요
7절 :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8절 :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제목 : 주께 헌신하기로 하면 


서론 : 나 이제 좀 다르게 살아보려구


하나님께 헌신한다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헌신이라는 말은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 헌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목사님들이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항상 성경을 읽고 성경을 공부하고 찬송가로 노래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시고 하는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TV나 인터넷 같은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성경을 더 많이 알아간 후에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이라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지키는 삶.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줍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특별하게 구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레위라는 사람의 후손이었고 여러분이 아는 모세와 아론이 레위 자손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하며 성막에서 봉사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구별된 백성이었습니다. 레위 자손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처럼 제사를 지내거나 성막에서 봉사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특별하게 구분하셨기 때문입니다.

레위 자손 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오늘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나실인의 서원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나실인의 서약은 레위인과 같이 혈통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서원을 통해서 구분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나실인의 규례를 살펴보면서 나실인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1 : 자기 몸을 구별하여


레위인은 제사를 위해서 제사장 집안 남자만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반면에 나실인은 남녀의 구분없이 나실인을 서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나실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성막 안에서 제사를 할 수 있었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실인으로 서약하는 사람은 자신을 구분하여 헌신하기로 한 일에 대해서 자신이 구별하여 드린 기간만큼 자신을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 앞에 구분되어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도 여자도 지으셨기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귀한 섬김을 거부하지 않으시고 받아주셨습니다.

나실인은 헌신하는 기간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최소 30일 부터 평생까지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나실인은 어떤 섬길만한 일을 위하여 헌신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나실인으로 헌신할 사람이 목적한 기한과 임무가 끝나면 나실인의 헌신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헌신이 끝났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규정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다양한 모습과 기간을 통해 우리에게 헌신하는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각자 다른 모습으로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도록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그대로 사랑하여 주십니다.

본론2 :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


나실인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은 남녀의 구분없이 다양한 형태와 기간으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실인은 나실인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고 이 규칙은 어떤 나실인이든 간에 동일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실인으로 헌신하는 이유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을 기뻐하기 위한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헌신된 자로 구분되기 위한 몇 가지 규칙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첫 번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레위인들도 성막 봉사를 할 때에 포도주나 독주를 마실 수 없었습니다.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다른 불을 드려서 벌을 받아 죽은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는 독주와 포도주를 성막 봉사할 때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실수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나실인의 경우에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규정 말고도 다른 규정이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나실인에게 추가된 규정은 포도나무에서 나는 모든 소산을 하나님께서는 금하는 규정입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금지하는 하나님의 명령은 제사장들의 사례를 비추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포도나무에서 나는 모든 것을 먹지말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나실인의 규례라는 것입니다. 나실인이라면 지켜야할, 나실인으로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어야할 규칙이라는 말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먹지 않는 것을 볼 때에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은 나실인이구나 하고 납득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실인이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구분되길 원하셨습니다.

본론3 :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


두번째 규칙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고 길러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제로 머리털이나 수엽을 깎이는 것에 대해서 큰 수치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통적인 유대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수염도 머리카락도 깎지 않습니다. 그러나 머리카락을 깎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실인으로 서원한 자는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구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깎지 않는 일도 포함됩니다.

사실 나실인이 부득이하게 부정하게 되었을 경우 머리털을 하나도 남김없이 밀어야 했습니다. 정결하게 되기 위해서 입니다. 9절 말씀과 같이 나실인이 자르지 않은 머리는 나실인이라는 표시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나실인은 머리를 깎아 자신의 헌신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표시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헌신한 사람들의 겉모습부터 나타나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아무런 행동도 표시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진정 하나님께 헌신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뿐더러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헌신이라는 말입니다.

본론4 :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


세 번째 나실인의 표시는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는 일은 레위인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사의 직분을 맡은 자는 시체를 만져 자신을 부정하게 하면 자신의 직분을 행할 수 없는 부정한 자가 되었습니다. 나실인도 마찬가지로 시체를 만져 자신을 부정하게 하면 나실인으로 지킨 날수가 무효가 되고 머리를 깎고 다시 나실인으로 헌신하여야 했습니다. 시체를 만지는 일은 극히 부정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시체를 만지는 행위가 부정하게 만든다는 것은 레위 제사장과 나실인이 똑같았지만 나실인은 제사장보다 더 까다로운 규정이 추가 됩니다. 바로 자기 친족,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된다는 규정입니다. 레위 제사장은 자기 친족의 시체를 만져 장례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실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왔듯이 나실인은 하나님 앞에 특별하게 구별되고 헌신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친족의 시체도 만지는 것을 금하고 자신의 구별됨과 헌신 됨을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헌신 된 자가 철저히 구분되길 원하셨습니다.

결론 : 하나님께 대한 헌신


오늘은 나실인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나실인을 통해서 하나님께 헌신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레위인만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남녀 가릴 것 없이 자신의 헌신하고자 하는 직분에 맞춰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제도가 나실인 제도 입니다. 비록 왜 지켜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규정들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헌신된 자는 다른 사람들과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다르길 원하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우리의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 할 수 있으십니다. 우리가 힘겹게 하는 일도 하나님께는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나 찬양, 헌신이 하나님께서 볼 때 별다른 감흥이나 감동을 일으키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같은 것보다 더 좋고 아름답고 정결한 것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같은 나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인생을 붙잡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헌신을 기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대로 지켜나가는 모습을 기뻐하기로 정하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추하고 나약하지만 우리가 드리는 헌신에 기뻐하기로 하고 즐거워해주십니다.

찬양 : 예수님의 헌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잘 전달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한 인간의 의미 없는 죽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죽음은 죄인인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시는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헌신도 아주 기쁘게 받아주신다는 것을 몸소 그리고 확실히 알려주십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에게는 율법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이 사실을 알려주셨고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예수님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알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여기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기쁘고 즐거운 소식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우리 친구들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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