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7일 목요일

돌아서는 이스라엘 (민수기 20장 14절~21절/ 20.05.10)

민수기 20장 14절~21절

14절 :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며 이르되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15절 : 우리 조상들이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우리가 애굽에 오래 거주하였더니 애굽인이 우리 조상들과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16절 :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17절 : 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한다고 하라 하였더니
18절 :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
19절 :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큰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
20절 : 그는 이르되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21절 :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

제목 : 돌아서는 이스라엘  

서론 :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며 우리의 사랑을 받아주시는 넓고 넓은 하나님의 품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도 힘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멋진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는 좌절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은 분명 우리에게 기쁜 일이고 즐거운 일이며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고 계명을 지키는 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썩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 같지는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을 찾아보면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갈등입니다. 사람마다 인식과 사고 방식의 차이가 있고 살아온 환경과 성장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문장을 읽어도 서로 이해하는 내용에 차이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데도 이와 같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 차이가 갈등을 만들어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방해되게 됩니다.

오늘 읽은 성경 본문에도 갈등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께서 주신 세일 산 주변을 살아가는 에돔 백성의 갈등입니다. 두 백성은 각각 이스라엘은 야곱의 자손이었고, 에돔은 에서의 자손이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우리가 잘 알듯이 이삭의 쌍둥이 아들로 각각 다른 곳에서 이 때까지 살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살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에돔 백성들은 하나님게서 주신 세일 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40여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백성이 있던 지역을 통과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성경 본문과 같이 사신을 보내어 에돔 백성들에게 에돔 땅을 지나가도 될지 부탁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1 : 형제에게 호의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여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옛날 40년 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 두 정탐꾼을 보내었던 것처럼 가나안 땅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치고 올라가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 동쪽에서 서쪽으로 들어가려고 요단강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에돔은 요단강이 끝나고 모이는 사해의 동편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특히 에돔에는 애굽 땅에서 바벨론으로 통하는 큰 길이 있었습니다. 본문에도 등장하는 왕의 큰 길 입니다. 이때까지 40여년 간 광야의 험한 길을 지나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나라를 지나가는 왕의 큰 길을 통해서 빠르고 편안하게 가나안 동편에 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방랑하는 군대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받아줄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다른 나라 군대가 자기 나라 안에서 어떤 일을 만들어낼 지 알 수 없었고 애굽에 내렸던 재앙이 자신들에게도 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을 것 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광야 생활에 지쳐있었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준비하기 위하여 좀 더 안전한 길로 가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에돔 백성에게 호의를 얻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방법으로 이스라엘은 에돔에게 자신들이 그들의 형제라는 사실을 먼저 알립니다. 이스라엘과 에돔은 정말로 형제 민족이었습니다. 이삭의 아들인 야곱과 에서의 자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장자권 문제로 야곱과 에서는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야곱이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죽었을 때에 형제는 함께 아버지의 장사를 지냈습니다. 아버지 이삭을 장사한 후에 두 형제는 만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장자권을 처음 빼앗았을 때에 야곱을 죽이려고 길길이 날뛰었던 에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두 형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신의 자리에서 삶을 살았습니다. 에서는 자기에게 허락된 세일 산에서 살았고, 야곱은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본론2 : 형제가 고난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애굽에 내려간 뒤의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애굽에서 고난 당하고 학대당했던 자신들의 처지를 알려줍니다. 형제인 에돔 백성이 보았을 때에 측은함을 느끼고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줄 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당했던 고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진었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해주셨다고 에돔 자손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에돔 자손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이삭의 아들인 에서의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세일 산에 자리잡게 된 것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곳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에돔 자손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세일 산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에돔 자손에게 세일 산을 허락하셨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또한 인도하셔서 에돔 땅 변경의 가데스라는 지역까지 인도해주셨다는 .사실을 에돔 자손들에게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에돔 자손들이 형제인 자신들을 호의로 품어줄 것을 기대하였고 고난 당하다가 온 형제에게 베풀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백성들이 자신들을 받아 줄 것이라 생각했던 이유는 옛날 야곱과 에서가 다시 만날 때에 에서가 야곱을 죽이지 않고 만나주었기 대문입니다. 야곱은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자신을 찾아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무서워 하였고, 얍복 강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며 자신에게 복을 줄 것을 요구할 정도로 힘들어 했습니다. 드디어 창세기 33장에서 야곱은 에서와 재회하게 됩니다. 막상 에서와 만나고 보니 에서는 몇 년 동안 보지 못하고 먼 갈대아 우르에서 고생한 동생을 걱정하였고 평안히 동생과 인사하고 고된 여행으로 지친 동생의 무리를 배려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에돔 자손들에게 옛날 자기 조상이 받았던 호의를 바라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에돔 자손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마음을 거부하고 자기 땅을 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본론3 : 형제의 손해를 기꺼이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에돔 자손에게 다시 제안합니다. 에돔 땅을 돌아가는 길은 또다시 광야 길로 들어서는 길이었기 때문에 40여년 간 떠돌던 광야 생활을 정리하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말렉 족속과 같은 다른 유목 민족의 공격을 당하여 큰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단칼에 거절해버린 에돔 족속의 얄궂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시 에돔 자손의 영토에 있는 큰 길 사용을 부탁했습니다.

첫번째 제안에서는 서로가 형제 민족임을 알려주고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찾아 힘들고 고달픈 길을 왔다라며 약간은 불쌍히 여겨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두번째 제안에서는 첫번째 제안과는 게산적이고 이성적인 제안을 내놓습니다. 사람이 지나가면 흔적이 남기 마련 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백만에서 삼 백만 정도의 엄청난 숫자 입니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하면 그 흔적은 어떻게든 남기 마련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에돔자손에게 그 손해를 감당하겠다. 오히려 값을 쳐서 더 주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에돔 자손들은 많은 군대를 이끌고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고 있던 가데스까지 찾아왔습니다. 어 이상의 협상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제안은 명백히 거절되었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에돔 땅을 돌아 광야길로 모앞 평지까지 이동하게 됩니다.


결론 : 거부하는 형제, 말씀을 지키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자기 형제인 에돔 자손에게 길을 빌려달라 요청합니다. 에돔 자손들은 무장한 이스라엘 군대가 자기 땅을 지나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땅에서 무슨일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땅을 지키고자 이스라엘 백성의 출입을 거부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한 결정입니다. 그러나 두 민족은 마음이 상하였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는 다윗 왕 시대부터 서로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두 민족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글자가 적힌 그대로 그들이 전해들은 그대로는 지켰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잘한 것 못한 것을 굳이 따지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했습니다. 에돔은 군대를 이끌고 나와 자기 형제 민족인 이스라엘을 문전박대 했지만, 이스라엘은 형제를 거부하고 호의 베풀기를 싫어한 에돔 자손에게 복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일 산을 에돔 자손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믿고 그들의 땅을 빼앗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민족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무리 형제 민족이라도 그들의 땅인 가데스에 무단으로 들어가서 길을 내놓으라 얘기하는 것은 형제를 가볍게 여긴 태도로 보입니다. 에돔도 400여년 간의 노예 생활과 40여년의 광야 생활로 이제야 본향으로 돌아온 형제 민족을 반기지는 못할 맘정 그들을 대적하고 문전박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창세기 33장에서 야곱과 에서의 아름다운 재회 장면과 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사랑하여 주셨듯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 형제를 돌보는 것 입니다. 

찬양 : 우리의 진실한 형제 되어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정말 잘 보여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에서 18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봐주시는 모습을 자기 몸을 십자가라는 제단에 바쳐 드린 대제사장의 모습과 비유하면서 잘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17절 :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절 :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되셔서 형제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에돔 자손들처럼 자기 형제를 문전박대하지 않으시고 호의를 베풀기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시험 받는 자, 어려움에 처한 자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형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와 같이 되시고 형제가고 불리기를 자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이런 사랑과 자비가 있기 때문에 우리 또한 사랑과 자비를 형제에게 베풀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는 우리 친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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