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2절 :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절 :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절 :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절 :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제목 :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새로운 환상의 시작
어린 양께서 여섯째 인을 떼신 후에 온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은 세상의 마지막 날과 같습니다. 해가 검어지고 달은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지고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산과 섬도 제자리에서 옮겨져서 세상은 예전의 모습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아주 다른 세상이 되어버립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 앞에 설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 앞에는 멸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의 끝을 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끝 날을 본 것 같습니다. 세상의 끝 날에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자는 없습니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땅을 딛고 살아갈 수 밖에 없고 하늘을 보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땅이 움직이고 하늘이 떠나가버린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살리시길 원하실까요?
사도 요한은 여섯째 인 재앙 이후 다른 환상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보게 될 7장에서 9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공부할 내용은 여섯째 인 재앙이 마친 이후 사도 요한이 보게 되는 환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계속해서 강조하는 이야기 이지만,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사도 요한이 보는 것은 환상입니다. 실제로 일어날 일이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환상이 가리키는 의미를 교회에게 전달하길 원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보는 재앙은 역사 상 일어났거나 일어날 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존재하는 모든 역사적 시간 가운데 만나게 될 환란과 고난에 대한 상징입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을 통하여 우리가 겪고 있는 환란과 고난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역사상 교회 가운데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날 일인 것을 알고 모든 것 위에 계신 삼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사도 요한이 세상의 끝이였던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대한 환상을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환상을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측면에서 다른 관점에서 교회가 세상의 끝 날까지 겪게 될 일들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알려주시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일, 다른 관점, 다른 상징들이 환상 속에 등장하지만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친히 가르쳐 주십니다. 함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도록 합시다.
인침을 받은 무리들
여섯째 인의 환상이 끝난 후에 시작되는 환상입니다. 여섯째 인 환상과 일곱째 인 환상 사이에 삽입된 환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인치심을 받은 십 사만 사천 명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요한이 보고 듣는 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일어날 일도 아니며 일어나고 있는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사도 요한을 통해 전하기 위하여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뜻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만한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환란과 핍박 가운데 있는 교회에게 위로를 주기 위하여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7장 1절에서 네 천사가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천사는 모두 배우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천사라고 해서 착한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기 위하여 환상 속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맡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 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등장하는 네 천사는 어떤 어떤 천사이고 이 천사들이 마지막 날에 이런 저런 역할을 맡을 것이라 이야기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이야기 입니다. 일단 1절에 등장하는 네 천사는 바람을 붙잡아 바람이 불지 않도록 하는 천사 입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것도 재앙이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것도 재앙입니다. 2절에서도 말하듯이 네 천사는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지닌 천사 입니다.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 있는데 인을 가진 천사가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네 천사에게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소리칩니다. 인이라는 것은 도장이며 인치기는 이마에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구원 받는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을 모든 성도를 구별하시고 재앙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놓치지 않으시고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어떤 환란이 앞에 있을지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십니다.
사도 요한은 인침을 받은 수를 듣게 되는데 그 수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십사만 사천 명 입니다.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는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실제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유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 단 지파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 지파가 이스라엘 가운데 우상 숭배를 심하게 했고, 자기에게 분배된 땅을 지키지 않고 다른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빠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온 지파가 우상숭배를 하였고 그 죄로 결국에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하여 온 지파가 포로가 되고 나라는 멸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에 자신에게 분배 받은 땅에 그대로 살았던 지파는 몇 없습니다. 단 지파도 모든 단 지파가 옮겨 산 것이 아니라 일부 인원만 북쪽 단 쪽에 살았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지파당 만 이천 명이라는 숫자가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지파는 각각 인원이 많은 지파도 있었고 인원이 적은 지파도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때에 땅을 분배할 때에도 지파별 가족 수대로 땅을 제비를 뽑아 나눴는데, 구원을 받는지 받지 못하는지를 결정짓는 인치심을 받는 문제에서 인원이 고려되지 않고 일괄적으로 만 이천 이라는 숫자로 통일되는 일은 어색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십사만 사천은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상징으로 봐야 합니다. 십사만 사천은 열 둘 곱하기 열 둘 곱하기 천 입니다. 이십 사 장로와 같이 구원 받는 성도 모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십사만 사천은 이스라엘 지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택함 받은 많은 백성의 수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14장에도 다시 등장합니다.
이 일 후에 사도 요한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도 성결함을 상징하는 흰 옷을 입고 찬송과 축제의 기쁨을 상징하는 종려나무를 들고 구원을 노래합니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표현된 이 사람들도 택함 받은 백성을 가리킵니다. 앞에서 말한 인치심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입니다. 두 무리는 각각 다른 환상에 등장하지만 결국 가리키는 것은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같은 것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모습으로 반복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구원을 노래합니다. 구원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에 대하여 노래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찬양 뒤에 등장하는 모든 천사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찬송을 아멘으로 받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을 노래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할 뿐 입니다.
사도 요한은 장로가 흰옷 입은 자들에 대해서 듣게 됩니다. 흰옷 입은 자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된 백성입니다. 다시 한 번 흰옷 입은 자,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십사만 사천 명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큰 환난은 어떤 특정한 사건을 지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은 환난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라면 반드시 감당해야 할 복음전파의 현장이 어느 시대를 따지지 않고 환란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 그 사명을 마친 자들이 흰 옷을 입고 구원을 찬양하며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습니다.
장로는 흰옷 입은 자들이 받게 될 상급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 입니다. 그 위에 장막을 치신다는 표현은 함께 살아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시겠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허락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실 것입니다. 그들을 먹이시고 돌봐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리거나 목마르거나 상하지 않을 것 입니다.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히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이어가도록 하여 주십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신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만한 저주와 고통을 없애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첫 네 개의 나팔재앙
7장에서 구원 받은 자, 택함 받은 자, 신구약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인치심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누리게 될지 보여주셨다면, 8장에서는 일곱째 인을 때심으로 일곱 나팔 재앙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시간 순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의 순서입니다. 여섯째 인 재앙은 마지막 심판을 상징하는 재앙이었습니다. 마지막 심판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일곱 나팔을 통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또한 7장의 내용은 마지막 심판이 끝나고 구원 받은 자들이 누리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때문에 새로운 재앙이 시작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일곱째 인 이후에 일곱 나팔의 재앙이 이어지는 이유는 사도 요한이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일곱 나팔의 재앙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반시간 동안 하늘이 고요해집니다. 하늘이 고요함은 폭풍이 불어 닥치기 전에 있는 고요함과 같습니다. 일곱 나팔의 재앙이 준비되고 있고 이 재앙이 곧 세상에 쏟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금 향로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금 향로에는 많은 향을 받았습니다. 많은 향은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받았습니다. 향의 연기가 하나님께 전달되고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쏟게 됩니다. 이 행동은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땅에 향로를 쏟게 되니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기 시작합니다. 재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올린 기도는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 구해 달라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첫째 나팔이 울리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하늘에서 내리는 피 섞인 우박과 불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환란과 핍박 가운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들로 나팔을 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첫째 나팔을 불자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재앙은 성도를 괴롭히고 핍박하던 온 땅에 대한 재앙입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은 핍박 당한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앙의 결과는 땅과 수목과 각종 푸른 풀이 삼분의 일이 타버린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에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하지만 전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삼분의 이가 살아남아 있습니다. 전부를 불태우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드러납니다.
둘째 나팔이 울리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떨어지게 됩니다. 여기서도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붙는 큰 산과 같은 진노로 바다에 재앙을 내리셨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환상이고 상징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맹렬하고 불타는 진노를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은 역사상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날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있을 동안에 이뤄질 일들에 대한 원리를 나타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가 삼분의 일이 깨지게 됩니다. 인간의 죄는 이렇게 파급력이 큽니다. 하지만 그 전부를 죽이지 않으시고 삼분의 이를 남기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나팔이 울리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게 됩니다.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정확히 무엇인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별 이름을 쓴 쑥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물의 삼분의 일이 쑥 같은 쓴 맛을 내게 되었다고 해서 쓴 쑥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 입니다.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은 지구에 충돌하는 소행성이나 유성도 아니고 주의 종 중에 타락하는 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맹렬히 타는 진노와 쓰디 쓴 보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강과 물샘에 내려 삼분의 일이 쓴 물이 되어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삼분의 이가 남아서 여전히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넷째 나팔이 울리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져 낮이나 밤이나 삼분의 일 정도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체에 대해서 비정상적인 운행을 시행하셨습니다. 정확하게 삼분의 일 정도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앞에서 살펴왔듯이 상당한 수준으로 파괴되고 어그러지게 되었지, 전부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빛이 부족한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넷째 나팔이 울린 후 독수리를 보게 됩니다. 이 독수리는 독수리 같은 것이 아니라서 독수리 모양을 한 천사는 아닙니다. 말하는 독수리의 환상을 본 것입니다. 독수리가 날아가며 나머지 세 개의 나팔 재앙에 대해서 예언합니다. 화, 화, 화가 있으리니 라고 이야기 하면서 나머지 세 천사가 불어야 할 나팔이 세 개 남았다는 사실을 땅의 사는 자들에게 알려줍니다. 땅의 사는 자들은 독수리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로 피해야 합니다.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재앙
8장에 이르러서 다섯째 나팔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다섯째 나팔이 울리자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습니다. 이 별은 셋째 나팔의 별과는 상관 없는 별입니다. 이 별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무저갱이라는 말은 밑도 끝도 없는 구덩이라는 말로 마귀와 귀신 즉, 악귀의 장소 입니다. 무저갱의 열쇠를 하나님께서 땅에 떨어진 별에게 줍니다. 성경에는 수동태로 받았다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수동태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사탄, 마귀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모든 것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땅에 떨어진 별은 하나님께 받은 열쇠로 무저갱을 열게 됩니다. 그 구명에서는 연기가 나오고 연기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어두워집니다. 이는 사람의 심령까지 어두워지게 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는 감각을 무뎌지게 만들어버립니다.
무저갱에서 나오는 연기와 함께 무저갱에서 황충이 땅 위에 나오게 됩니다. 황충은 메뚜기를 가리키지만, 나중에 묘사되는 황충의 모습을 볼 때에 메뚜기 자체는 아닌 것 같습니다. 황충은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습니다. 전갈의 권세는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권세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사람들을 전갈로 다스리겠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황충은 사람을 괴롭게 하는 권세를 받아서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못한 자를 해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황충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못한 자를 해하지만 죽이지는 못하게 하셨습니다.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셨습니다. 5개월은 10개월의 반으로 완전한 파괴의 재앙이 아니며 인침 받지 못한 자들을 오래 참으시고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갈의 고통을 받습니다.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하는 고통은 굉장한 고통입니다. 이것이 마귀로 인하여 고통 받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평안도 기쁨도 없이 마귀에게 종노릇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며 죽기를 구하지만 죽음이 그들을 피하게 됩니다. 죽여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그들은 죽음 이외의 파멸만 경험하게 될 뿐입니다.
황충이 하는 일처럼 황충의 모습도 무시무시합니다. 그들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이 생겼습니다. 마귀의 역사는 전투적인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는데, 그리스도의 승리를 모방하는 모습입니다. 그 얼굴은 사람 얼굴과 같아서 황충이 메뚜기 자체가 아니라 다른 무엇을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어서 사람들을 아름다움으로 유혹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아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어서 단단하고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려줍니다. 날개 소리가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아서 황충이 매우 공격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황충은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화살이 있어서 사람을 해하는 능력이 출중하고 꼬리로 사람을 미혹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완전한 파괴와 파멸은 아니지만 전갈의 고통으로 괴롭고 괴로워서 죽기를 바라지만 죽지 못하는 고통을 사람들에게 줄 것입니다.
황충에게는 왕이 있습니다. 황충은 메뚜기 때 처럼 그저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두머리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황충들의 왕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아바돈 입니다. 아바돈은 멸망을 뜻하는 히브리어 입니다. 헬라어로는 아볼루온이라고 하고 멸망하게 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저갱을 연 무저갱의 사자와 황충의 이야기가 끝나면서 첫째 화가 끝났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직도 두 번의 화가 남았음을 이야기 하면서 다섯째 나팔 재앙에 대한 환상이 끝납니다.
여섯째 나팔이 울리자 하나님 앞에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나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된 네 천사를 놓아주라는 명령을 합니다. 이 네 천사는 나팔 재앙이 시작될 때에 바람을 잡아두던 천사들이었습니다. 유브라데는 옛날부터 이스라엘과 바벨론, 앗수르를 가르던 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였던 이스라엘과 세상의 나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나라였던 앗수르와 바벨론을 가르던 유브라데 강은 그 자체로 세상의 권세를 뜻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지옥 권세를 지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가 놓이는 그 년 월 일 시를 계획하셨습니다. 세상의 역사 가운데 세세한 부분까지도 정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정확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네 천사가 그 년 월 일 시에 풀려나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게 될 것인데, 이런 심각한 재앙들이 교회 역사 속에서 일어날 것이고 모든 재앙들이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네 천사는 마병대를 부려 사람 삼분의 일을 죽입니다. 마병의 숫자는 이만만 입니다. 이만만은 2억이라는 숫자로 이 숫자 또한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 보다는 수많은 군대를 가리키는 숫자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어서 마병대의 모습을 이야기 합니다. 그들은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다고 합니다. 각각 색깔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색깔, 멸망과 죽음, 파괴의 색깔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들의 머리가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온다는 것을 볼 때에 마병대가 타고 있는 것은 말이 아니라 상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구체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자처럼 찢어죽이고 불과 연기와 유황이 입에서 뿜어져 나올 정도로 마귀의 파괴 행위에 적합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말들의 힘이 입과 꼬리에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고 꼬리로는 뱀 같고 머리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뱀 같다는 이야기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을 가리키므로 말이 마귀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꼬리에 머리가 있다는 말은 지성과 사상과 학문으로 유혹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꼬리는 사람을 교묘하게 지성과 사상과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유혹합니다. 뱀과 같이 사람을 파멸로 떨어뜨립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자들은 자기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않고 여러 귀신과 금과 은과 동, 나무와 돌로 만든 우상에게 절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살아남은 자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여전히 진노하고 계시고 다른 재앙을 준비하십니다. 다른 재앙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그들에게 합당한 결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마지막 심판만이 남아있을 뿐 입니다.
모든 것 아시는 주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만드셨으며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고 .허락됩니다. 사탄도 사탄을 따르는 존재들도 모두 하나님께서 아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세를 주셔야만 그들이 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적절하게 표현하실 줄 아시며 진노로 우리를 모조리 멸절시키실 수도 있지만 진노중에라도 긍휼하심을 잊지 아니하시고 정해진 범위와 정해진 기간을 지켜 벌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노 중에 긍휼을 베푸시지만 그것을 긍휼이라 여기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의 자비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어두워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역사를 목도하고도 귀신과 우상을 섬기는 죄인들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조차도 알아 주셨습니다. 그들이 거짓된 것에 속아 거짓된 것을 믿어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심지어 아는 것조차 거부하는 그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화를 준비하시며 일곱째 나팔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계획하셨고 이렇게 계시록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겪을 일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계시록의 환상이 어떤 특정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교회가 세워진 이후, 교회 시대 가운데 겪게 될 일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계시록 말씀을 읽으면서, 사도 요한이 보았던 무섭고도 떨리는 환상을 공부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제하시며 모든 것을 알고 대처하시는 그 너른 아버지 품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런 확신과 믿음 가운데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을 사랑하 수 있으며,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실 역사들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우리의 때를 살아내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