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3일 수요일

온 힘을 다하여 (사무엘하 6장 12절-15절 / 20.09.27)

사무엘하 6장 12절-15절

12절 :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절 :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절 :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절 :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제목 : 온 힘을 다하여


서론 : 실패한 다윗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숙적이었던 블레셋도 르바임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약속되었던 평안과 안식을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서 누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과 안식을 누리기에 앞서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과 이스라엘을 자신으로 하여금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윗이 예배를 드리고자 한 것은 갑자기 든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을 통하여 예배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돌려드리는 일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성막이 필요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모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에 만든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거룩하게 구별된 천막이었습니다. 이 성막은 출애굽기에 자세한 설계가 설명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막 깊숙한 곳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는 함부로 만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궤 안에 있는 물건을 다시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궤 안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기신 돌판 두 개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던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제자리에 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길 원했습니다. 

다윗은 레위인들은 모아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긴 손잡이를 꿰어서 사람이 들고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수레에 실어 옮기려다가 떨어지려던 하나님의 궤를 손으로 만지는 바람에 웃사라는 사람이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고 다윗은 하는 수 없이 하나님의 궤를 근처 오벧에돔의 집에 맡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일이 있고 석 달 후 하나님께서는 노여움을 푸시고 오벧에돔에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듣고 다시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 시도 하였습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을 그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장면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우리에게 주실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1 :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처음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올 때에는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웃사의 죽음으로 다윗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은 하나님의 궤를 보관하므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을 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함께 하고 싶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기쁨으로 가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예루살렘으로 들고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이 느낀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옮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정해진 율법, 기록된 말씀대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지 않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며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며 이스라엘에게 예배 받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지금 다윗 왕이 수도로 삼아 다스리는 예루살렘에 있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메고 자기 이름을 딴 다윗 성으로 올라갔습니다. 다윗 성은 다윗의 궁전이 있던 곳으로 왕의 권위가 나타나는 궁전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 궁전은 두로 왕 히람이 지어준 궁전이었습니다. 왕의 이름에 걸맞게 백향목으로 궁전을 지었습니다. 백향목은 그 때 당시 가장 고급 건축 재료였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궤는 조각목이라는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조각목은 사막에서도 구할 수 있는 흔한 목재였습니다. 인간적인 안목으로는 백향목으로 지어져 이스라엘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궁전 옆에 조각목으로 만든 하나님의 궤를 놓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의 왕이심을 알고 고백하며 찬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 제일 높은 곳에 두기 위하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본론2 :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


다윗은 이 모든 일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면 소와 살진 송아지로 그 자리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낡은 나무 상자를 옮기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궤가 움직이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웃사의 사건으로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궤는 움직이지 않았고, 움직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이므로 궤를 움직인 사람들은 벌을 받았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궤가 만들어졌을 때에 궤 위에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자리 잡았습니다. 출애굽을 하고 광야를 지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기둥이 하나님의 궤 위에 있었습니다. 그 기둥들이 움직일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움직이라 명령하실 때에 하나님의 궤는 움직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궤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곳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궤가 움직일 때가 있었습니다. 사사 시대에 엘리 제사장 때의 일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궤를 가져와 하나님의 능력을 입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이스라엘 백성의 뜻이었지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지도 보호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는 블레셋에 의해 빼앗기게 됩니다. 다윗은 이런 역사를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궤를 움직이는 일에 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걸을 때에 여섯 걸음을 허락하시고 기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론3 : 힘을 다하여 춤추라


다윗의 넘치는 감사는 제사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감사는 춤으로 나타났습니다. 춤은 인간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입니다. 어떤 아름다운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춤으로는 표현할 수 있습니다. 춤을 보는 사람은 그 춤을 추는 사람의 감정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궤를 옮기시는 것을 허락하시고 다윗과 이스라엘에게 복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감출 수 없었고 그가 비록 천 에봇을 입어 자기 몸이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은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자기가 입은 베 옷이 거의 찢어질 정도로 춤을 추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공식적인 행사를 마치고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왔을 때 다윗의 아내였던 미갈이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과 같이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몸을 보였다고 이야기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춤을 춘 이유는 백성들이나 자기의 신하들이나 자기 신복의 계집 종의 눈 앞에서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었기 때문에 자기의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상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힘이 다하도록 춤을 출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권위나 명예나 영광과 권력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여호수아 때와 사사 시대에 점령하지 못했던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두로 왕 히람이 사신을 보내어 자신의 왕궁을 지어 줄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이 이룬 모든 것은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 없었다는 것을 다윗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왕으로 역할을 다하며 전쟁을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백성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정의로운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받아주시고 귀하게 사용해 주신 감사하신 하나님께 다윗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신의 몸을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결론 : 기뻐하는 이스라엘


다윗의 춤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함께 다윗과 함께 즐거워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다윗 왕이라는 훌륭한 인물을 세우셨고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옛적부터 약속하셨던 것을 이뤄나가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춤을 추는 다윗을 보며 정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시고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며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을 주시며 약속을 지키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메어 올리는 일은 이제 다윗의 감사 표현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전체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찬양 :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면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궤가 다윗 성에 오는 것으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큰 기쁨의 소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 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에 빠진 인간을 구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히 이루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완전한 사랑이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사실에 대해서 다윗처럼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실패한 채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특별한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우리에게 복 주시길 원하시는 예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으시다가 다시 이 땅에 오실 예수님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애통하거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새로운 세계가 다시 오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통해 각기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에서 평안히 살 것이라는 약속을 이뤄주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영원한 평안과 안식을 우리에게 주시며 눈물도 고통도 실망도 패배도 없는 새로운 세상에 살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미래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기뻐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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