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8일 수요일

하나님의 평강 (빌립보서 4장 1절- 9절 / 20.11.18)

빌립보서 4장 1절- 9절

1절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절 :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절 :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도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절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절 :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절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절 :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절 :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절 :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제목 : 하나님의 평강


서론 : 한 마음으로 서라


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권면을 마쳤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권면했던 내용들의 요점을 반복하고 사람과 감사를 담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를 격려하고 난 뒤 작별 인사를 하고 빌립보서가 마무리 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자신을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주고 선물을 보내어 감옥 생활을 잘 지낼 수 있게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믿음 생활에 있어서도 충직하고 성실한 빌립보 교회를 칭찬했습니다. 다만 빌립보 교회 안과 밖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 하늘에 시민권을 두고 사는 나그네의 삶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지적하며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고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 하지 않길 권면하였습니다. 그 예시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바울의 가르침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의 헌신 그리고 빌립보에 있는 대적자들에 대한 태도를 통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기를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살펴보는 본문은 권면했던 내용들의 요점을 반복하는 부분으로 실제로 빌립보 교회 안에 구체적인 인물을 지적하면서 권면하였던 내용이 지켜질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기뻐하길 권면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설립한 바울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복음의 진보가 더디게 있는 것 같아 보이더라도 대적자들이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기뻐하며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길 간절히 권면합니다. 함께 말씀을 찬찬히 살피며 바울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주 안에서 함께 서라 (1절-3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해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불러줍니다. 사랑하고 사모한다는 비슷한 말을 반복하면서 바울이 얼마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지 강조하고 있고 기쁨이고 면류관이라 말하면서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자랑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면류관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화관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로마 황제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쓰기도 했고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의 표시로 화관을 만들어 수여했습니다. 그러니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는 큰 영광과 기쁨과 자랑 거리라는 것을 표현해 줍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랑을 담아 다시 한 번 더 이와 같이 주안에서 서라라고 말합니다. 빌립보 교회에 들어온 율법주의자들의 말에 속지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 그 받은 교훈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입니다. 1장 22절 부터 3장 21절까지 권면한 말씀 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에 있으면서 바울이 가르친 복음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둘 다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붙히는 이름입니다. 아마도 빌립보 교회에 중심되는 두 여성도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신앙도 좋고 열심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일들은 두 사람이 거의 도맡아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둘은 같은 마음을 품지 못했습니다. 앞서서 1장 27절과 2장 2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말씀했던 이유가 이 두 사람을 위해서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눈에 띄는 갈등 상황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울이 세 번이나 말할 정도로 특히 실명을 거론하여 이야기 할 정도로 서로 맞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둘은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 한 교회였고 한 성도였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겪는 문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도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기도 했고 유오디아와 순두게 그리고 바울 사이의 든든한 신뢰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공개적으로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멍에를 같이 한 자에게 권면합니다. 멍에를 같이 한 자는 빌립보 교회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바울과 복음 사역을 함께 감당한 동역자인 한 남자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정확한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그는 빌립보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고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일, 즉 같은 멍에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바울은 멍에를 같이 한 자에게 부녀자들 즉,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도우고 글레멘드와 그 외의 동역자를 도우라고 권면합니다. 이들은 특히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복음의 일을 위하여 함께 힘써 수고했던 자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글레멘드는 정체가 불확실한 사람입니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로마의 감독 글레멘드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아마도 자기를 돌보고 있는 로마 교회의 글레멘드를 도울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도와주라는 말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구원 받은 것을 확정하는 말이며 함께 한 아버지를 섬기는 형제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형제를 돕는 일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4절-5절)


생명책에 그 이름이 함께 기록된 형제들과 한 마음을 가지고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할 때에 우리는 정말 기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다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전체에 걸쳐서 세 번째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바울은 빌립보 교회로 인하여 기뻐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잊지 않고 에바브로디도라는 멋진 동역자와 함께 선물을 보내어 로마 생활 기쁨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보낸 헌신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가 헌신함으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기뻐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립보 교회를 돌보시며 인도하신다는 것을 빌립보 교회의 헌신을 통해 보았기 때문에 바울은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기쁨을 빌립보 교회에게 나누고 싶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주 안에 있는 것을 주 안에서 잘 자라나고 있는 것을 알고 기뻐하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기뻐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관용을 다른 이들이 알게 해야 합니다. 관용은 권리나 요구가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것이 아니고 자기 권리를 지나치게 주장하지 않고 엄격하게 굴지 않는 태도를 이야기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마음을 넓히고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분명 빌립보 교회 사람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만 있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길 원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우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형제에게는 한 마음을 품기 위하여 관용을 보여야 하고 교회 밖에 불신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복음의 합당한 생활을 위하여 우리는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염려하지 말라 (6절-7절)


복음에 합당한 생활 가운데 염려는 없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염려가 가득한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에 대한 염려, 병에 걸려 죽을 뻔한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염려, 복음 전파의 방해에 대한 염려, 교회 속에서 한 마음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염려 등 빌립보 교회는 여러가지 염려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성도 앞에는 염려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은 천지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분은 온 만물의 주가 되신 성자 예수님이시며,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입니다. 아뢰다는 말은 하나님께 알려지게 하라 알려드리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염려와 걱정 거리가 있을 때에 가슴 속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알려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내뱉어야 합니다. 속으로 염려와 걱정을 끌어 안는 것은 스스로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태도 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에게 임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각에 뛰어나십니다. 지각은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이성적인 기능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월적으로 뛰어나신 지각으로 우리의 우둔한 마음을 깨우치고 모든 문제보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시며 하나님의 평강을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염려와 걱정에 빠지지 않도록 지키십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은 그저 명령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이루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명령을 잘 지켜야 합니다.

생각하고 행하라 (8절-9절)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동반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우리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가진 관용을 남들에게 알게 하여야 하듯이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해야 합니다. 알게 하기 위해서는 행동을 해야 하는데 행동에 앞서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8절에 생각할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할 만한 것, 칭찬할 만한 것 입니다. 덕이나 기림이 될 만한 것들도 생각해야 합니다. 덕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뛰어난 것을 의미하고 기림은 찬양과 칭찬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은 우리가 이미 배운 것입니다. 우리는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배운 바를 행하면 됩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이미 주신 성경 말씀에 가르치는 것을 기억하고 행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우리 안에는 불안과 염려와 걱정이 없어지며 두려울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어떤 염려도 걱정도 우리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권면을 마치고 권면의 요점들을 모아서 다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교회의 염려와 걱정을 아시고 이 모든 것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권면이지만 명령으로 가득한 말씀을 읽으며 우리는 부담감만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만 주시지 않으시고 명령을 지킬 수 있도록 이미 은혜를 주시고 또한 명령을 지킬 때에 복을 더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교회에게 평강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사랑하여 주십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향합니다. 이 사랑과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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