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1일 토요일

그 명령을 따라 돌아갔더라 (열왕기상 12장 21절-24절 / 20.11.01)


열왕기상 12장 21절-24절

21절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22절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3절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24절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였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명령을 따라 돌아갔더라

제목 : 그 명령을 따라 돌아갔더라


서론 : 분단 그리고 저항


솔로몬의 왕국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과 안식을 자신의 손으로 이뤄야 하고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졌고 그 착각으로 인해 주변 나라들과의 평화를 위해서 그 나라 여인들과 정략 결혼을 많이 했습니다. 솔로몬과 결혼한 여인들은 옛날 모압 여인 룻과 같이 자기가 섬기는 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들은 솔로몬이 우상 숭배하도록 유혹하였고 솔로몬은 그 마음이 사로잡혀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우상숭배를 벌하실 목적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나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은 솔로몬 당시에는 일어나지 않았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에 일어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뉘신 이스라엘은 남왕국에 르호보암 왕, 북왕국에 여로보암 왕이 다스렸습니다. 르호보암 왕은 솔로몬 왕의 아들로 다윗 왕가의 정통 후계자 입니다. 르호보암 왕의 입장에서는 북왕국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반역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스라엘 민족과 가나안 땅을 다스리라고 하셨고 그 자손들이 다윗의 왕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다윗의 자손이 아닌 여로보암이라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세우신 것도 나라를 나누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본론1 : 십팔만 명의 군사를 택하다.


르호보암 왕은 자기 입장에서 반란을 일으킨 여로보암을 만나기 위해서 세겜에 갔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여로보암과 열 지파가 르호보암 왕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나게 되었습니다. 르호보암 왕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이 소식을 자기에게 남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게 알렸습니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분노했고 르호보암의 부름에 따라 북왕국을 다시 르호보암에게 돌리게 하기 위하여 군사로 지원했습니다. 르호보암 왕은 지원하여 나온 많은 백성들 중에서 잘 싸울 사람들인 용사를 택하였고 그 수가 십 팔만 명이 되었습니다. 이 많은 군대로 반란을 일으킨 여로보암을 토벌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상 십팔만 명이라는 큰 숫자의 군대를 동원한 때가 별로 없습니다. 이 정도의 숫자의 군사는 한 전투나 전쟁에 동원된 적이 없습니다. 단지 동원될 수 있는 최대의 군사 규모를 말할 때에 십팔만 명이라는 큰 숫자를 이야기 합니다. 옛날 모세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에 유다 지파에 칼을 빼고 싸움을 할 수 있는 남자의 숫자가 십팔만 육천 사백명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십팔만 명이라는 숫자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 전부를 모아서 만든 숫자가 아니고 그들 중에서 싸움에 능하고 싸움에서 이길 만한 사람들인 용사들만 뽑아서 십팔만 명의 택한 용사가 모여있는 숫자였습니다. 르호보암 왕은 이 많은 숫자의 군대를 이끌고 여로보암과 전투에 임하면 당연히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많은 수의 군대는 승리를 보장하는 듯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승리 사례들은 적은 수의 군대로 승리를 거두는 때가 많습니다. 사사 기드온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미디안 군대를 삼백명의 군사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사 삼손은 자기 단 한 명으로 블레셋 군대와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도 자신과 자기의 무기든 소년과 단 두 명이서 블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군사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주시는지 아닌지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단 한 사람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하십니다.

본론2 :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택하다.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르호보암 왕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 중에 십팔만 명을 택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 중 단 한 사람 스마야 라는 사람을 택하여 르호보암과 르호보암을 따르는 십팔만 명의 군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왕도 아니고 군사를 이끄는 장군도 아닌 스마야라는 한 사람의 말에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십팔만 명의 군대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처럼 보입니다.

스마야는 단 한 사람이었고 그는 장군도 왕도 재상도 아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스마야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남은 백성이라는 말은 반란을 일으킨 여로보암을 반대하여 북왕국에서 남왕국으로 내려온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스마야는 십팔만 명 군대에게만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남왕국 전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르호보암 왕은 십팔만 명을 택하였고 북왕국을 칠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스마야라는 단 한 사람을 택하여 한 나라 전체를 상대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자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을 택하실 수도 있습니다. 택함 받은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기실 일에 대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이는 사람도 택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실 때에 택함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반드시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힘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사람을 붙이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겁이 많았던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 산에서 사백 오십 명의 바알 선지자를 맞서 이기게 하시고 가장 악한 왕 아합 왕과 그 백성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셨습니다. 

본론3 :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한 사람 스마야는 용기 있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남왕국 온 나라에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십팔만 명 군사의 진군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나뉘게 된 모든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아 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한 사람 스마야는 십팔만 명의 군대 앞에서 그들의 진군을 막아 섰습니다. 십팔만 명의 강하고 많은 군사에게 기대를 거는 남아 있는 많은 유다와 베냐민 족속의 백성들의 기대에 맞섰습니다. 

십팔만의 군사를 거느린 르호보암 왕과 십팔만이라는 어머어머한 숫자 속에 속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백성 개개인에게도 이 숫자라면 이 정도라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세우셔서 그들과 맞서게 하셨고 그들의 기대와 소망을 꺾어버리고자 하셨습니다. 남 유다의 백성들은 다윗의 자손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한 이스라엘 왕국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았습니다. 여로보암의 반란은 옛날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켰던 압살롬이나 세바와 같이 마땅히 토벌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뜻을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분명 왕으로 세워질 다윗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할 때에 그 왕위와 그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과 르호보암을 따르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조건을 잊어버린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만을 기억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약속 전체를 기억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점만 기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오해들을 항상 바로 잡아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보내셔서 여로보암이 북왕국의 왕이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해를 바로 잡아주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사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마야의 말을 듣고 북왕국을 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깨달았습니다. 십팔만 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한 사람의 외침으로 인해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족속 가운데 커다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팔만 오천 명의 앗수르 군사들을 하루에 몰살 시키시기도 하십니다. 유다와 베냐민의 택한 용사 십팔만 명에게도 그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와 베냐민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습니다. 자기들의 숫자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들의 숫자보다 더 중요하고 더 확실한 승리의 보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허락하지 않는 전쟁에 십팔만 명의 택한 용사들은 자신의 능력과 숫자를 믿지 아니하고 충분히 이길 것 같은 가능성에 걸지 않고 과감하게 돌아섰습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싸움이 계속 있었지만 십팔만의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리는 커다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찬양 :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 가장 잘 순종하시고 따르셨던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는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기도 하신 능력이 많으실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비참하게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그 밤에 열 두 영이나 되는 천사를 불러 충분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아무런 저항도 변명도 하지 않으시고 달리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어야 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한 사람 예수님을 택하시고 예수님이 모든 죄와 허물을 지시고 대신 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생명을 얻고 용서를 얻었으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고 가끔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며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한 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은혜와 연결됩니다. 은혜는 우리의 어떤 것으로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은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행복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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