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일 금요일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사무엘하 18장 31절-33절 / 20.10.04)

사무엘하 18장 31절-33절

31절 :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절 :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절 :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제목 :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서론 : 압살롬의 반란


이스라엘 온 나라는 전쟁 중에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이 다윗 왕을 배반하여 나라를 차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요단 강 건너편 가나안 땅의 서편으로 도망쳤습니다. 압살롬은 요단강 동쪽 지파들을 거느렸고 다윗은 요단강 서쪽 두개 반 지파들만 거느렸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을 따르는 무리는 매우 강대했습니다만, 다윗 왕에게서 떠나가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압살롬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다윗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다윗을 따르던 부하들은 백성들을 세 개의 부대로 편성하여서 압살롭과 맞섰습니다.

압살롬과 다윗의 부하들의 싸움에서 다윗의 부하들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아들 압살롬이 죽지 않길 원했고 죽이지 말고 생포할 것을 군 사령관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압이라는 장군은 압살롬이 일으킨 반란을 완전히 진압하기 위해서는 압살롬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를 잡은 후, 요압 장군은 압살롬의 심장을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은 압살롬의 죽음을 전해들은 다윗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기 아들의 죽음을 전해들은 다윗의 모습을 보면 자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비통한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만,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심정을 보여주시기 위해서만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본론1 :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압살롬은 다윗의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과 대치할 때에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세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차남인 길르압이 어린 나이에 죽어버리는 바람에 장남 암논에 이어서 왕위 계승권이 2순위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압살롬은 머리부터 발 끝까지 흠이 없었던 이스라엘 중에 가장 뛰어난 미남이었고 왕이 될만한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장자에게 다른 형제들이 받는 몫을 두 배로 물려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킬 당시에는 자기 위의 두 형이 죽었기 때문에 왕위 계승 순위에서 최우선이었지만, 다윗의 장자인 암논을 죽였다는 죄는 압살롬이 정상적으로 왕위를 계승받을 가능성을 없앴습니다. 압살롬이 정상적으로 왕위를 계승받을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압살롬을 다윗 다음의 왕으로 지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나온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압살롬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았습니다. 자기 형제를 죽인 범죄자이고 동생에게 밀려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는 자신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신의 흠없는 외모를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는 머리숱이 많고 머리털이 무거웠는데, 일 년에 한 번씩 이발할 때에 한번 무게를 달아보니  200세겔 지금으로 따지면 약 2kg 정도의 머리털을 잘랐다는 것이 온 이스라엘이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미 압살롬처럼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압살롬의 마음이 교만하게 만들었고 자신처럼 흠없는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압살롬의 교만함은 다윗 왕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을 반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장차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이 온 이스라엘에게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던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시고 구분하셔서 왕으로 세운 사울 왕을 인간인 자신이 죽이거나 폐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교만함과 착각에 빠진 압살롬은 스스로 다윗을 쫓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려 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에게 원수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맏아들인 암논을 죽이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교만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가 아닌 왕의 자리를 탐내고 아버지인 왕을 대적하고 아버지의 자리에서 쫓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에게 승리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왕의 모든 원수를 갚았다고 보고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본론2 : 그 청년과 같이 되길 원하나이다.


다윗은 승리 소식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처음 요압 장군이 이끄는 반란 진압군이 출정할 때에도 압살롬을 살려두라고 명령하였고, 처음 아히마아스가 진압군의 승리를 전할 때에도 압살롬의 생사를 확인하였습니다. 다윗의 관심은 온통 압살롬의 생사였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지 않길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압살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암논이 압살롬에게 죽고 말았지만, 솔로몬이 하나님께 선택받기 전까지는 압살롬이 적법한 후계자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사랑하는 이유는 압살롬의 이름에도 잘 나타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이뤄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셔서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시려 했습니다. 주변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다윗을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사사기 때에 점령하지 못했던 남은 땅을 다 점령하였습니다. 다윗은 모든 전쟁을 자신의 대에 끝내고 자기 아들 대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평화와 안식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의 이름을 “나의 아버지는 평안이다.” 라는 뜻의 압살롬이라 지었습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흠이 없는 아들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완전한 안식과 평안을 이루실 것이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압살롬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킨 시점에서는 압살롬이 다윗의 뒤를 이을 아들이 아니였지만, 다윗은 자신의 흠 없고 아름다운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너무나 지나쳤습니다. 지금 압살롬은 자기 형제이자 다윗의 맏아들 암논을 죽여 처벌 받아야 마땅한 범죄자였고, 자기 아버지의 자리를 가로채어서 아버지를 집에서 쫓아낸 패륜아였으며, 나라를 뒤집어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반역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인되시고 진정한 왕이 되시는 이스라엘의 모든 질서를 무너뜨린 이단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 되신 이스라엘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고 율법을 더 잘 지키도록 지혜롭게 백성을 인도해야 할 다윗 왕은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여 범죄자이자 패륜아이자 반역자이며 이단자인 압살롬을 그에 마땅한 벌로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큰 실수가 되었습니다.

본론3 : 마음이 심히 아파 우니라.


다윗은 마음이 아파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고 기대했던 아들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울음에 그 우는 모습을 보는 모든 신하들은 다윗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19장에서 요압 장군의 말을 들어보면 다윗이 아들을 위해서 공개적으로 우는 이 행동이 목숨을 걸고 다윗을 지키려고 싸움터에 나갔던 백성들과 신하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다윗의 행동을 보는 백성들과 신하들은 자신을 지키려고 싸움에 나갔던 백성들과 신하들이 죽고 압살롬이 살았더라면 다윗 왕이 좋게 여겼을 것이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의 울음은 그들은 다윗에게서 등을 돌릴 만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다윗의 울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도 인정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요단 동편의 지파들을 모두 규합한 압살롬을 기적적으로 이겼습니다. 그 날 싸움은 에브라임 수풀에서 일어났습니다. 전투로 이만 명에 이르는 전사자가 나왔는데 칼에 죽은 자보다 수풀에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나무에 걸려서, 혹은 찔려서 죽는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입니다. 처음 구스 사람이 보고하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패하게 하신 것을 주목하지 않고 오직 압살롬의 죽음에만 집중하여 그 죽음만을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일하신 사실을 다윗은 까맣게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진심을 다해서 압살롬을 위하여 울었다고 하더라도 그 울음은 자신과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자신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아니었습니다. 흠없고 아름다운 아들에게 걸었던 오만함, 교만함의 표현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보다 자신의 선택과 생각이 맞다고 표현하는 불신앙의 표현일 뿐입니다. 다윗이 가졌던 압살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진정한 왕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가 이스라엘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려고 한 교만한 왕 다윗에게서 나온 사랑과 관심이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위하여 우는 것은 진실된 눈물이고 꾸밈 없는 울부짖음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보다 자신의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결론 : 구원을 슬퍼하는 자.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슬퍼하였습니다. 다윗의 울부짖음은 자신의 뜻대로 자기가 계획한 대로 자기가 기대한 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싫어하며 거부하는 반응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왕이자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라 믿지 않는 불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번 선택하신 자를 놓지 않으시고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시며 그것을 붙잡으라 말씀하십니다. 다윗에게는 요압 장군을 보내셔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과 자기를 위해 피흘리기 까지 충성한 백성들과 신하들을 돌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찬양 : 이런 우리를 위해서도.


우리도 다윗과 같은 삶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 때가 많습니다. 내 눈에 좋은 것을 따라 우리의 구원자이자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가볍게 여기고 등한시 여기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그 아름다움을 흠모하며 베푸시는 구원을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흠모할 만한 모양 없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지만 가장 높은 하늘 보좌에서 낮은 이 땅 그리고 범죄자이자 패륜아이자 반역자이며 이단자인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신 아름다운 일을 하셨습니다. 흠없고 순결한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셨습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 삶 가운데 그 베푸신 구원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누리며 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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