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8장 5절-12절
5절 :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절 :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절 :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절 :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9절 : 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10절 :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11절 :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12절 :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제목 : 이렇게 된 것은
서론 : 히스기야 왕
히스기야 왕은 선한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는 왕이었으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아하스 왕은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난 악한 왕이었지만 그 아들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잘 지키며 남유다 어느 왕보다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 왕이 유다를 다스리던 때에 아무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 택하시고 종살이 하던 애굽 땅에서 구원하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에서 살게 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에서 쫓아내신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와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길 원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누리며 가나안 땅에서 행복하게 살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멸망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 지역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셨습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을 살펴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기 백성을 버리신 그 뜻을 함께 발견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론1 : 형통하였다.
우리가 읽었던 본문에서는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한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을 의지한 정도는 이스라엘의 어떤 왕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전에도 히스기야 왕과 같이 하나님을 의지한 왕이 없었고 그 후에도 히스기야 왕과 같이 하나님을 의지한 왕이 없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하여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하였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아 놓지 않고 끝까지 신뢰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히스기야는 온 나라가 무너지는 그 순간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아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한 히스기야 왕과 함께 하셨고 히스기야 왕이 어디로 가든지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을 형통하게 하시며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 아하스가 했던 것처럼 앗수르와 블레셋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배반하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앗수르는 히스기야 왕 당시에 큰 제국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을 모두 굴복시켜 종처럼 섬기길 강요했던 매우 강대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아버지 아하스 왕 때부터 섬겼던 앗수르를 배반하고 앗수르 제국의 거대함과 강력함이 결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보다 약하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였습니다. 이후에 앗수르가 수 많은 군대를 이끌고 남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지만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압도적인 군사 앞에서 굴복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을 통해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편에 서서 남유다를 괴롭혔던 블레셋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까지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점령하였습니다. 항상 당하는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었던 남유다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히스기야 왕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고 놓치지 않음으로 남유다를 괴롭게 하던 블레셋을 혼낼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여호와 하나님께 소원을 구하는 남유다와 히스기야 왕에게 형통하게 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돌보셨습니다.
본론2 : 북이스라엘의 멸망
히스기야 왕이 남유다의 왕이 된지 사 년이 된 그 해에, 북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왕 제칠 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군대를 이끌고 와서 사마리아 성을 완전히 포위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호세아가 앗수르 제국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 왕 호세아가 앗수르 제국을 배반한 것은 앗수르 제국보다 애굽을 더 크고 강한 나라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 왕 호세아는 애굽에 사신을 보내고 앗수르에는 매년 보내는 조공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를 본 앗수르 왕 살만에셀은 자신을 배반한 북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에워쌌습니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한 지 삼 년 후에 사마리아 성읍이 함락되었습니다. 그 때가 남유다 왕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른지 제육 년이었고, 북이스라엘 왕 호세아가 왕위에 오른지 제구 년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와 같이 앗수를 배반하여 매년 바치는 조공을 앗수르에 바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달랐습니다. 남유다는 앗수르 제국이 하나님보다 크지 않다는 이유로 앗수르를 섬기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보다 애굽이 더 크고 강하기 때문에 앗수르를 섬기는 것보다 애굽을 섬겨서 애굽 제국이 주는 이익이 북이스라엘에 더 많다고 판단했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를 배반하였습니다. 앗수르를 배반하는 행동은 같았지만 이 행동을 하기까지의 이유가 달랐고 결과 또한 달랐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북이스라엘과 같은 결정을 할 때가 많습니다. 겉보기에는 매우 신앙적이고 교회 다닐 사람이 할만한 행동들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어쩔 때는 이 결정과 행동들이 정말 올바른 결정과 행동과 비교할 수 없고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일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에 대해서 합당하고 적당한 것을 되돌려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로 앗수르를 배반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신 것과 같이, 우리가 잘못 선택하고 잘못 행한 일에 대해서 갚아주실 것 입니다.
본론3 : 사로잡혀간 백성들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나라의 멸망으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앗수르 왕은 북이스라엘 지역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흩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종 되었던 애굽 나라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주신 가나안 땅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풀지지만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방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율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킬 때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구원에 대한 기쁨을 표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들 또한 자신이 받은 구원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고도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감사할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구원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표현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 율법에 순종하는 일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습니다. 구원 받았지만 구원을 모르는 자들의 결과는 결국 멸망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구원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보다 구원이 귀중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고 우리에게 다시 사랑을 받고 싶어하십니다. 주고 받음이 있는 사랑의 교제가 우리가 받은 구원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따르라고 하신 말씀은 사랑을 나누는 통로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왕들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거부하였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배반하며 하나님을 외면하였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북이스라엘 백성들과 왕을 사랑할 수 없었고 그들을 내버려 두시었습니다.
결론 : 생명의 길, 사망의 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완전히 상반된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남유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켜 형통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을 모두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게 되어 내버려둠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받게 될 벌을 그대로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구원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구원과 은혜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감사와 기쁨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과 은혜는 우리에게 베풀어진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길 원하셨습니다. 남유다와 남유다의 왕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드렸지만, 북이스라엘과 북이스라엘의 왕 호세아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찬양 : 우리에게 온 최고의 사랑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나약하고 미련한 인간을 위하여 우리에게 최대한 사랑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게 하셨습니다. 약하고 미련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신다고 하지만 정말로 우리를 아실까 하는 의심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서서 살게 하시며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과 아픔을 느끼시며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매우 잘 아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실 목적을 위해서 라면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아기의 모습으로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하지도 잘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어리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모두 아시는 주님의 존재를 알게 하셨습니다.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아기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믿고 응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을 받으시고 우리와 교제하며 함께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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