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8일 수요일

십자가의 원수들 (빌립보서 3장 17절-21절 / 20.11.18)

빌립보서 3장 17절-21절

17절 :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절 :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절 :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절 :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절 :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제목 : 십자가의 원수들


서론 : 대적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있던 대적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주의자들보다 더 자랑할 만한 육체의 증거들을 보이고는 그것을 해로 여기며 배설물로 여긴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육체의 자랑들은 이미 지나간 것이며 오직 앞에 있는 한 일을 위해 달려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갈 때에 빌립보 교회는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대적자들에 대한 마지막 단락입니다. 이들은 빌립보 교회 안과 밖에서 빌립보 교회를 넘어뜨려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대적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그의 솔직한 마음 속에는 땅의 일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의 이중성을 빌립보 교회에 알려주고 빌립보 교회가 진정 가져야할 시민권에 대해서 말합니다. 말씀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봅시다.

나를 본받으라 (17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본보기로 빌립보 교회가 함께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행동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살아가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신앙하는 방식은 대적자들에게서 승리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앞선 단락에서 말했던 교훈들을 말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가르침은 효과적이었습니다.

바울이 솔선수범 하자 빌립보 교회에는 바울과 같이 행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바울은 바울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고 그들을 따라 자신과 같이 행동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런 바울의 말을 통해서 바울은 자기 행동과 생각에 대해서 교만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을 보고 배우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닮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으시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아시고 사도를 보내셨습니다. 또한 사도에게서 잘 배운 자들이 일어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지켜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붙잡으시고 일으키셔서 예수님을 따를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십자가의 원수들 (18절-19절)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 말하고는 본받지 말아야 할 자들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본받지 말아야 할 자들을 십자가의 원수들이라 이름 붙혔습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에 대해서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여러 번 말했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할 정도로 교회에 해악을 끼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존재입니다. 바울이 이토록 십자가의 원수들에 대해서 경계하고 경고하는 이유는 바울의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원수들은 그리스도의 원수이며,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 구원 얻은 성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인 유대인과 같이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한 편으로는 맞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전혀 틀린 생각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 등의 율법을 지킴으로 받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이루신 의를 전가 받는 일은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바와 같이 율법주의자들의 결말은 멸망입니다. 구원의 열매인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멸망 당하고 말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삶은 경건해 보이고 정말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그들의 결말은 영생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것도 아니고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배는 사람의 신체 부위 중 가슴과 다리 사이에 있는 곳을 말합니다. 배에는 음식이 들어가는데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의 정결법에 따라 부정한 음식과 정한 음식을 가려 먹었고 그것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음식의 정함과 부정함을 구분하며 자신의 정결함, 자신의 음식물 소화기관인 배의 정결함을 추구하였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자신의 배가 신처럼 되어서 구원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배격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이 배를 신으로 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이 누리는 영광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에서 그 영광을 찾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이라는 말은 신체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킵니다. 이는 신체의 부끄러운 곳에 행하는 할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내세울 것이 할례받은 부끄러운 곳 밖에 없었습니다. 율법의 의를 이루는 것은 세상의 어떤 사람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할례를 행하는 것은 특별한 장애가 있지 않는다면 유일하게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율법이며 자신이 율법에 속한 자인 것을 알리는 유일한 표시입니다. 유대인들 그리고 율법주의자들은 할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자기들의 부끄러운 곳을 영광으로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늘의 것보다는 땅의 것,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에 집착하며 지키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것, 영적인 것을 구하지 않고 땅의 것, 육신의 것을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시민권 (20절-21절)


십자가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것, 하늘의 것을 구하지 않고 땅의 것, 자기 육신의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인 빌립보 교회는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자 입니다. 시민권이라는 말은 어떤 나라의 시민으로서 권리 뿐만 아니라 시민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민으로서의 신분, 자격, 권리, 의무 등 시민이라면 가지고 있을 모든 것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를 시민으로 만들어주는 나라, 정부, 국가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도 확장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자신이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땅의 법인 율법을 지키는 것에 치우치지 않고 하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율법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법을 따라야 하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빌립보 교회에게도 의미가 잇습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으며 이 세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오시는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구원은 고통과 고난과 환란에 빠진 자를 구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과 고난과 환란이 있는 세상이며 믿는 자들은 믿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으로부터 고통 받고 고난 당하며 환란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로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비천하여서 약하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마음은 원하지만 행함이 없는 하나님께서 만족할 만한 어떤 의도 이룰 수 없는 연약한 몸입니다. 하지만 구원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낮은 몸을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 몸은 강한 몸이며 신령한 몸입니다. 약하거나 병들거나 넘어지지 않는 몸 입니다. 무슨 일을 행하더라도 마음에 있는 선한 소원을 쫓아 행하는 완전히 영화롭게 된 몸 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를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아직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완전히 왕권을 행사하실 그 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론 : 우리는 결국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럴뿐만 아니라 우리도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을 대적하고 그들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육신의 것, 땅의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알고 하늘의 시민권자로 하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 마음으로 서게 되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이 생활을 가능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노력도 의지도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 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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