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7일 금요일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 “Tradition History and The Old Testament”를 읽고

  어릴 때 성경을 읽으면서 항상 궁금한 점이 있었다. 모세오경의 저자가 모세라면, 그는 어떻게 자신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간의 일들, 즉 창세기 속에 나오는 일들을 알고 기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어린 시절 나름대로 부족한 생각을 정리해보았을 때 떠오른 생각은 첫째, 모세 홀로 40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말씀을 받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천지가 창조하는 것과 인간의 타락 홍수 바벨탑, 아브라함과 족장들의 직접 모세에게 이야기 해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둘째는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형들을 안심시키며 한 말,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창 50:21)”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 이방민족들 속에서도 요셉이 이루어 놓은 탁월한 교육시스템에 의해서 태초에 일하신 하나님의 일들과 자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족장들의 이야기를 배우고 있었고, 모세는 그것을 자신의 유모이자 어머니인 요게벳을 통해 배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번에 읽은 “Tradition History and The Old Testament”는 이 오랜 질문에 대답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읽었다.

  모세오경의 저자가 어떻게 자신이 살아보지도 않은 시대를 기록하였는가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자료 비평 (Source Criticism)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료 비평의 대표주자인 벨하우젠(Wellhausen)에 따르면 모세오경을 이루는 4개의 자료는 각 자료의 저자들의 창조적인 능력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100년 전 조선시대 말의 쌀 한 가마니의 값을 모르는 것처럼, 오경의 저자들도 자신들의 시대보다 약 400년 이상 과거인 족장시대를 알 수 없었을 것이며, 심지어는 모세시대의 상황도 제대로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궁켈 (Gunkel)은 벨하우젠의 견해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였다. 그의 견해는 오경의 저자들은 그들 자신이 오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이 전해들은 이야기나 당시 사람들의 전승들에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하나도 덧붙이지 않고 모은 수집가 혹은 편집자라는 것이다. 그 전승들이라는 것은 전승 형성의 오랜 과정을 거쳐진 마지막 단계였고, 그 단계 전에는 구두를 통해서나 문서를 통해서 전승되어져 왔다고 주장하였다.

  궁켈 (Gunkel)의 주장 이 후로, 그 전승들이 어떤 수단으로 내려오게 되었는가? 그 전승은 어떠한 변화를 겪으며 전해 내려왔는가? 그 변화 속에는 어떠한 요소가 들어있었는가? 를 학자들은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이 전승이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각 전승의 변화 단계를 회복하고 각 전승 단계마다 관련된 전승 전달자, 장소, 전승의 사회적 배경, 신학사상, 의미 등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 분야를 가리켜 전승사 (Tradition History) 혹은 전승사비평 (Tradition-historical Criticism)라고 부르게 된다.

  전승사 비평 연구가 진행되면서 가장 혁신적인 주장을 했던 사람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학자들이다. 그 중 나이버그 (H. S. Nyberg)는 구약성경의 모든 전승들이 포로 이후 까지 구두로 전승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스칸디나비아의 학자들이 그의 의견에 동조하였다. 이것은 모든 구약성경의 기록 시기가 포로 후기로 정해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구두 전승의 전달은 전달하는 사람 혹은 집단의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상황과 관심에 의해 재구성될 수도 있고, 재창조될 수도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느 본문이라도 심지어 시와 같은 단순한 문장이라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같은 사람의 입에서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래토록 전승되어진 이야기일수록 전승의 불변성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해야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스칸디나비아의 학자들의 주장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과 인물과 장소들을 모두 만들어진 것이나 허구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올브라이트 (W. F. Albright)는 이스라엘의 초기 전승이 형성되었다고 여겨지는 B.C. 1200 ∼ 900 년경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여러 비문에서 그 시절에도 이미 문자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스칸디나비아의 학자들이 주장한 포로 후기까지 구두 전승으로 구약성경이 전승되었다는 사실이 거짓임을 증명하였다.

  전승사비평 학자들의 의견은 자료 비평의 한계를 극복하고 만족할 만한 설명을 제공하였다. 저자 또한 전승사 비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승사 비평 학자들은 이스라엘 자신들이 역사를 어떻게 해석해 왔는가? 전승이 전달되면서 이스라엘 자신들의 신학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으며, 어떻게 적용하며, 어떻게 변해가야 할 것인가? 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승사비평은 자료비평의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료 비평의 한계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J, E, D, P 문서의 저자들 혹은 수집가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전승사 비평은 존재할 수 없다. 자료 비평은 이미 고대 근동의 문학에서 발견되는 한 신을 한 문서에서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르거나, 한 사건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 등의 문학 스타일을 오해하여 한 저자가 쓴 오경을 4명의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의 저자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자료 비평 위에 세워진 전승사 비평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전승사 비평은 모세가 창세기를 어떻게 기록하였을까? 하는 나의 오랜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전승사 비평은 자료 비평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가 아니고 쓰여진 시기와 장소가 다른 4가지 문서의 저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전승사 비평 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을 318명의 용맹한 군사를 거느리고 가나안 연합군을 무찌를 만큼 강대한 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브론 옆 마므레에서 셋방살이 하듯이 살았던 약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고 이삭 또한 아브라함의 재산과 세력을 물려받았음에도 그랄 사람들에게 우물을 빼앗겨 쩔쩔매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야곱은 자신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그저 자신이 좋아했던 라헬 때문에 종살이 했던 사람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어떤 민족이 자신의 조상들을 이런 방식으로 비하하고 부족함을 드러낼 것인가? 만약 자신들이 만들어낸 전승이라면 좀 더 다른 민족들과는 다른 거룩하고 구별된 이야기만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승은 부끄러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가감 없이 정직하게 전달하였고 자신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약한 존재임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 민족들이 다음 세대에 가르쳤던 그 말씀을 가지고 살아간다. 모세가 그 전해들은 말씀으로 창세기를 기록하였다 생각하면, 우리 또한 그 말씀을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정확하게 가르치고 그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훈련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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