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2장 8절-13절
8절 :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9절 :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복들이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맡겼나이다 하고
10절 :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11절 :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12절 :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절 :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제목 : 말씀을 듣고는
서론 : 성전을 수리하자
요시야 왕은 할아버지 므낫세 왕, 아버지 아몬 왕에 의해서 더럽혀진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자 나섰습니다. 므낫세 왕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에 일월성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기도 했고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하나님의 성전에 세웠던 사람입니다. 일월성신은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을 통해서 분명히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므낫세 왕은 해와 달과 별을 신으로 섬기며 그들을 위한 제단을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해야 할 성전에 세웠습니다. 또 아세라는 이스라엘 전에 가나안 땅에 살던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남신 바알의 아내인 여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그 외의 많은 용사들을 일으키셔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시고 가나안의 신은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가짜 신인 것을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므낫세 왕은 아세라 목상을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해야 할 성전에 세워서 아세라 여신을 섬기며 예배하길 원했습니다.
므낫세 왕은 일월성신의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하나님의 성전에 세워서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므낫세 왕의 악행을 벌하기 위해 남유다를 멸망시키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므낫세 왕의 아들인 아몬 왕도 아버지의 악행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유다의 멸망은 코 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므낫세의 손자,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수리하고자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들었던 제단과 목상을 성전에서 헐어버리고 더럽혀진 성전을 수리하고자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에는 그렇게 성전을 청소하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보는 시간이 되도록 합시다.
본론1 : 율법책을 찾다 (8절-9절)
요시야 왕의 지시에 따라 왕의 신하들과 성전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청소하고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고 돌보지 않았던 성전은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옛날 요아스 왕이 만든 헌금통이 발견되었습니다. 요아스 왕은 성전의 수리를 위한 비용들을 성전 앞 헌금통을 만들어 그곳에서 충당하도록 했습니다. 헌금통에는 꽤 액수가 되는 돈이 들어 있었지만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하나님의 성전은 그 어느 누구의 손길도 관심도 닿지 않았습니다. 헌금통을 발견한 요시야 왕의 신복들은 헌금통을 쏟아 그 돈을 성전을 수리하는 자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임금과 재료를 사는데 쓰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헌금통 안에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율법책이 발견되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헌금통에서 많은 돈과 함께 나온 책이 율법책인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항상 율법책을 곁에 두고 읽으며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인간 왕으로 세움 받은 것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의 통치를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한 므낫세 왕 때부터 어느 순간 왕의 곁에 율법책은 사라졌습니다. 므낫세의 통치 기간이 52년간이었고 그 아들 아몬의 통치기간이 2년이었습니다. 무려 54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려야 할 인간 왕 곁에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되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삶 속에도 겉모습으로만, 이름으로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감사가 넘쳐야 할 마음 속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 넣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시고 내 생각과 행동을 주장하여 주신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할 때가 많습니다. 겉모습으로만 이름으로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성전을 청소하고 수리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발견하였던 것처럼 우리가 잊어버린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때는 겉모습으로만 이름으로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신 기회입니다.
본론2 : 율법을 듣고 회개하다 (10절-11절)
요시야 왕은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이 기회를 굳게 잡았습니다. 책을 발견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요시야 왕은 그 책을 읽게 하도록 했습니다. 사실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책을 읽었을 뿐이었지만, 요시야 왕은 사반의 행동을 막지 않았습니다. 요시야 왕이 서기관 사반의 행동을 막지 않은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율법책의 내용은 54년 간 잊혀져 있던 내용입니다. 요시야 왕이 잊혀진 율법을 지켰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알지 못하는 일을 지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율법을 읽어나가면 읽어나갈 수록 요시야 왕은 자기 죄가 드러나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매우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신하들에게 둘러 쌓여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는 일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기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율법책을 읽는 일을 멈추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옷을 찢으며 표현하였습니다. 신하들을 향해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부끄러움과 수치를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을 회개하는 표현입니다.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을 낮추고 여호와 하나님을 높히며 자신의 잘못과 수치를 드러내며 회개하길 원했습니다. 이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요시야 왕의 아들인 여호야김 왕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자기 아버지 요시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회개하지 못 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왕 앞에 서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읽을 때에 읽은 만큼 책을 잘라내어 불에 태웠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볍게 여겼고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불에 태워 그것이 남아있게 하지 않았고 백성들이 그것을 듣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옆에 신하들이 여호야김 왕의 행동을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수치가 드러나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시선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두려워하는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따갑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있고 싶어하시기에 우리의 더러움과 죄를 버리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지적 받을 때에 수치스럽게 여기긴 하지만 이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더 바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로 우리를 돌이키기 위하여 우리를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만 수치스럽게만 놔두지 않으시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요시야 왕과 같이 자기 옷을 찢고 나의 죄와 더러움을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올 때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주시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내고 우리로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본론3 : 이 책의 말씀을 물으라 (12절-13절)
요시야 왕은 이 말씀 속에서 유다 온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요시야 왕 자신과 백성 그리고 온 유다 나라를 위하여 이 말씀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물으라고 명령합니다. 요시야 왕이 이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물으라고 한 것은 성전에서 발견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의심에서 물으라고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지키지 않았던 유다 온 백성에 대하여 어찌하실지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신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도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잃게 되고 백성은 포로가 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가 떠돌게 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버리시고 돌아보지 않으시는 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최고의 진노는 내버려 두는 벌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어떤 말씀도 어떤 손길도 닿지 않도록 내버려 두시는 벌이 가장 최고의 벌입니다. 이 벌이 옛날 출애굽 당시에 애굽에게 내려졌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내버려둠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재앙 가운데 있는 크신 기적과 권능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10개의 재앙이 지나고 애굽 땅이 완전히 망하고 난 뒤에야 겨우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었습니다. 그러나 홍해 앞에 멈춰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왔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홍해 가운데 자신이 기른 최고의 군사들을 다 잃었을 때에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기를 그쳤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기만 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했던 포학과 학대를 갚기 위하여 애굽 왕 바로를 내버려 두었고 그 결과 애굽 나라는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내버려 두는 벌이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세상 속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버려둠을 당한 자는 이 사실을 망각합니다. 자기가 하나님보다 위에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하나님도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요시야 왕이 했던 것처럼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돌이키시고자 하시는 뜻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내 뜻을 정하고자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낮은 자세로 여호와 하나님께 뜻을 묻는 일이 필요합니다.
결론 :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삶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우리를 깎아내리고 수치를 주고 부끄러움을 주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마음에서 주신 말씀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을 풀어 우리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풀어주는 목사님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책인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며 성경을 읽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뜻을 묻기를 주저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찬양 : 우리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삶을 살아가도록 다짐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약하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어려움을 아시고 이 어려움을 해결해주시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해결책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어 우리 가운데 살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내어야 하는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우리에게 정말로 기쁘고 즐거운 날이 됩니다. 성탄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성경이라는 낡은 고대 문서를 우리에게 던져주신 것만이 아니라 직접 우리에게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탄절을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다른 행사나 즐거웠던 기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사실이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우리에게 큰 은혜가 임했기 때문에 우리는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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