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6장 3절-5절
3절 :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4절 :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5절 :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제목 : 그의 곁에는
서론 : 이어지는 왕위
웃시야 왕은 다윗 왕에게서 12대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약속하신 것과 같이 다윗의 왕위는 끊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그 왕위를 빼앗기지 않으며 이어져 내려 왔습니다. 특히 웃시야 왕이 다스리던 시대는 할아버지 요아스, 아버지 아마샤, 자신과 자기 아들 요담에 이르기까지 옛날 다윗 왕이 다스리던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여 평화롭게 살던 때 였습니다. 유다 왕국 주변의 나라들은 부강한 유다 왕국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웃시야의 소문이 널리 퍼져서 주변 나라들이 두려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성경 본문은 웃시야 왕이 아버지 아마샤를 뒤이어 왕이 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역대하와 열왕기상, 하를 읽다 보면 왕위가 교체될 때마다 나오는 반복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복되고 틀이 있는 이 말씀 가운데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도록 합시다.
본론1 : 16세의 왕, 웃시야
웃시야 왕은 십 육 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십 육세에 왕이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 충분히 선대 왕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후대 왕이 왕위를 이을 때에는 20대의 아들에게 왕위가 돌아갑니다. 어느 정도 긴 시간을 한 사람이 통치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어느 정도 지혜와 지식의 수준에 있어서 왕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웃시야 왕과 같이 16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될 때에는 유다 왕국 안에 왕의 죽음을 준비하지 못할 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전쟁이 될 수도 있고 반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다 왕국의 왕들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셔서 세운 하나님의 종 입니다. 다윗 왕은 자기가 왕이 되기 전에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오로지 자기 교만과 욕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어 왕으로 삼으신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을 다윗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사람이 함부로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국의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뜻과 생각대로 움직이며,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는 반역을 일으키셨습니다. 웃시야의 할아버지인 요아스 왕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윗 자손을 멸하려고 했던 아달랴 여왕에게 대항한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서 일곱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또한 남유다 말기의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 숭배했던 아몬 왕에 대항한 백성들에 의해서 여덟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왕들은 전쟁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사울 왕도 블레셋 군대와 싸우다 죽었고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도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웃시야의 아버지 아마샤도 북이스라엘과의 전쟁 중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웃시야는 16세의 어린 나이로 남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본론2 : 아버지의 행위대로
웃시야 왕은 십 육 세의 어린 나이로 왕이 되었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정직히 행했습니다. 자기 아버지였던 아마샤 왕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사실 웃시야 왕의 아버지인 아마샤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잘 따랐고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않았다는 말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정직히 행한 웃시야 왕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못할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의 왕이라는 거룩하고 숭고한 직무와 직분을 주셨다 하더라도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인간 왕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자기의 뜻과 생각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웃시야 왕이 유다 왕국의 왕인 자리를 이용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만히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에 합한 종이라고 평가하신 다윗 왕도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죄를 지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주실 때에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사람을 향해 일하십니다.
본론3 : 스가랴와 함께
다윗 왕 곁에는 나단 선지자가 있었듯이 웃시야 왕 곁에는 스가랴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지금 당장 당면한 문제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웃시야 왕은 스가랴 선지자가 살아있던 동안에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웃시야 왕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사람을 향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다른 어떤 무엇이 아닙니다. 수수께끼처럼 숨어있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찾아내어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드러내시고 그것을 따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저 말씀만을 던져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그저 스피커로만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사람 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나가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그 하신 말씀에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말씀을 그저 던져 놓으시는 것만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어떻게 하나 보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사람을 통해 말씀을 주시고 사람을 통해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결론 : 함께 교회를 이룬다.
옛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이 모든 일이 이스라엘 민족, 이스라엘 왕국 그 안에서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에는 이 모든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납니다. 교회 안에 모든 성도들은 서로를 위해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일꾼 입니다. 우리를 서로를 섬기며 서로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며 그 말씀과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웃시야 왕이 스가랴 선지자가 살아있는 동안 여호와를 찾았듯이 우리는 누군가에게 웃시야 왕이일수도 있고 스가랴 선지자일수도 있습니다.
찬양 : 우리의 머리 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복된 공동체, 복된 사람들을 주시기 위하여 죽어주셨습니다. 예수님 자체도 복이 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복을 우리에게 전해지도록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자기 피값을 주시고 세우셨습니다.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이후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말과 행동에도 만족하며 기뻐하실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인류 앞에 있는 것은 죽음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되신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기쁘게 받아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납니다. 교회는 교회를 이루는 서로를 위하여 부름 받았습니다. 교회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예수님의 복된 순종, 이 모든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 모두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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