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7일 화요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골로새서 1장 24절-29절 / 21.04.27)

골로새서 1장 24절-29절

24절 :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절 :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절 :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절 :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절 :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절 :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함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제목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서론 : 배경과 문맥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일꾼으로 소개였습니다. 복음의 일꾼은 교회를 세우는 일꾼이요 교회를 위해 일하는 일꾼입니다. 그래서 이번 단락에서는 자신을 교회의 일꾼이라고 소개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교회를 세울 때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 고난을 당합니다. 교회의 일꾼으로서 일반적으로 행하는 사역들을 말하고 다음 단락에서는 라오디게아와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힘쓰는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합니다. 

바울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기에 받는 고난 입니다. 이 비밀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미래 계획을 말하는 것으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구원 계획을 말합니다. 또한 세상의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바울은 이 비밀이 이전에는 감추어져 있다가 이제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밝혀졌다고 선포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전파하며 선포하는 영광스러운 일꾼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하는 이야기는 단순히 바울 자신의 사역을 소개하는 듯 보입니다. 어쩌면 바울 자신이 맡은 직분, 즉 교회를 세우는 사도의 직분에 대한 직무 기술서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바울 당시의 골로새 교회 뿐만 아니라 현재 골로새서를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자신의 뜻을 전하시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뜻을 전하기 위하여 바울로 하여금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이 교회의 일꾼됨을 알리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본론 1 : 교회의 일꾼 (24-25)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방문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굘로새 교회를 위해서 일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골로새 교회 때문에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기록할 때에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받게 되는 일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충실했던 사람입니다. 현재의 고난에 갇혀서 슬퍼하고 낙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고난을 견뎠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은 해석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며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온 인류의 죄에 대한 벌로 합당할 정도로 극심한 고난이었고 완전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받으셔야 할 고난 중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남은 고난은 분명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 받을 만큼의 온전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모든 일을 전하는 것,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은 따라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있어서 고난이 따르며 그 고난은 충분하지 못하고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에 그리스도를 전하며 필연적으로 받게되는 고난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채우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꾼이라는 사실을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여러 번 이야기 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대부분 성도들이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였고,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사실을 익히 듣고 알았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직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강조해서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내용은 다음 절에 상세하게 제시 됩니다.
 

본론 2 : 비밀이신 그리스도 (26-27)


바울은 비밀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비밀은 신비, 비밀스러운 지식을 이야기 하는데 다니엘 2장의 말씀에 사용되는 “은밀한 것’ 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다니엘 2장에서 ‘은밀한 것’은 종말에 메시야를 통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이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부터 시작된 신약 시대부터 오랫동안 감추어두신 구원 계획이 성도들에게 드러내어 밝혀졌습니다.

사실 구원 계획은 구약 성경에 자세히 소상하게 기록되어 밝혀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된다는 내용은 구약 성경에도 이미 예언된 말씀입니다. 또한 이방인들 또한 종말의 때에는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도 구약 성경을 통해 익히 알려진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이방인과 유대인들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사실은 감추셨던 비밀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사도들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밝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방인들에게 얼마나 풍성하게 내려졌는지를 알려줍니다. 구약 시대에만 해도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밀이 성도들에게 나타났을 때, 이방인은 유대인과 구분되지 않고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비밀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다고 말씀합니다. 앞서 우리는 비밀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 계획이라고 했는데 사도 바울은 비밀이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비밀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비밀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되십니다. 따라서 비밀은 그리스도 자체이시며, 영광의 소망입니다. 영광의 소망이라는 말은 영광을 함께 나누게 될 소망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지극히 높은 영광 중에 계시고 또한 종말 때에 심판주로 오셔서 지극히 큰 영광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종말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 되십니다.

본론 3 : 바울의 사역 (28-2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인 비밀, 비밀이신 그리스도, 영광의 소망인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당연히 해야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일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당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바울을 포함한 디모데와 에바브라와 같은 사역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골로새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교사들과는 전혀 다른 자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신비 체험을 전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신비이자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사역자들은 그리스도를 전하고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칩니다. 권하다는 말은 잘못된 행동을 훈계하여 바로 잡는 것 뿐만 아니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권하는 것을 포함하는 목회 활동을 의미합니다. 이는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목회 활동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복음이라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의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 권하다는 말에 포합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사역자들은 권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친다는 말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교리와 삶의 원리를 알리고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은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행동 뿐만 아니라 행동의 이유를 알아야 더욱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자라나게 하는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 모두 모든 지혜로 감당해야 합니다. 지혜는 올바른 결정이나 행동을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사역자는 각 사람의 상황과 형편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각 사람을 권하고 가르칠 때에 모든 지혜로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사역자들을 통해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고 하십니다. 완전한 자라는 말은 최고 수준에 도달하거나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1장 22절에서 비슷한 의미로 언급되었습니다. 결국 완전한 자가 된다는 말은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모든 성도들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표는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옆의 동역자들의 힘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다만 사도 바울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를 다시 일으키신 기적의 능력입니다. 성도들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은 사도 바울의 목표, 사도 바울과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이며 목표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부르셨고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자신의 행적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수고 하였다고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간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그저 따라가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가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말합니다. 힘을 다하는 것은 그저 힘을 다하여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운동경기에 임하듯, 무기를 들고 싸움에 임하듯 분투하며 애쓰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온 몸의 근육을 사용하여 땀을 흘리며 일하는 육체 노동자의 모습과 같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가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기쁨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조그마한 한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조그마한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분투하며, 애를 쓰며 달려드려야 할 정도로 버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기쁨이,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영광의 소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 가운데 기쁨을 누리며, 나중에 얻을 최후 승리를 바라보며 힘을 다하여 수고하고 있습니다.   

결론 : 진정한 일꾼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진정한 교회의 일꾼이 누구인지 밝히고 있습니다. 진정한 교회의 일꾼이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아야 할 고난을 기쁨으로 받고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며 각 사람을 권하고 가르쳐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일꾼이 아닌 자들은 모두 거짓 일꾼들이며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무리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거짓 가르침 가운데 벗어나길, 진정한 교회의 일꾼들에게로 돌아오길 원하는 마음으로 이 부분을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서로에게 교회의 일꾼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각 교회를 섬기는 청년의 입장에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권하고 가르치는 사역자들을 위해 얼마나 그 권위와 수고를 인정하여 주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천년 전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에바브라와 같은 헌신적인 사역자의 수고를 내버려두고 거짓 교사들을 따랐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생각해보며 우리 또한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라는 것을 잊지 말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되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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