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1일 화요일

성내는 요나 (요나 3장 10절- 4장 4절 / 210511)

요나 3장 10절- 4장 4절

10절 :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절 :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절 :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절 :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제목 : 성내는 요나


서론 : 문맥과 배경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는 다시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니느웨 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리 변화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요나는 약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요나는 불성실하게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불성실한 선지자가 말씀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니느웨 온 성읍은 자기 방식대로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방식대로 하는 회개는 아니었지만, 동물에서부터 니느웨 왕까지 회개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니느웨에 일어났던 기적이 어떤 결과를 보여주었는지 말씀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의 회개를 보며 니느웨에 내리고자 한 재앙을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요나는 하나님께서 하신 행동에 대해 매우 싫어하며 성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요나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해주시고 참아주십니다. 말씀을 찬찬히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본론 1: 말씀이 번복되다  (10절)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니느웨를 벌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슬픔을 나타내는 표시였습니다. 벌을 받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와 함께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슬픔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꾸밈없이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긍휼히 여겨달라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사람들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짐승이나 소나 양에게도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고 하였고 굵은 베 옷을 입히게 하였습니다. 짐승에게 금식을 시키고 베옷을 입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는 없는 풍습이었습니다. 이 풍습은 전적으로 니느웨 사람들이, 니느웨 사람들이 살아가던 페르시아 사람들이 지키던 풍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방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방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입니다. 이스라엘의 방식은 율법에 기록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회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회개하는 니느웨 백성들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엄중한 잣대를 요구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게는 그러시지 않으셨습니다. 니느웨가 회개하는 방식을 문제 삼지 않으시고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받아주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그들이 행한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셔서 그들에게 내리고자 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지 않은 것이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과거에 행한 악독에 대해서 어떤 벌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여주는 회개하는 행동, 자신의 비참함을 슬퍼하는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저 좋게 봐주시지 않으셨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고 재앙을 내리시는 것은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서도 목적을 이루셨으니 도구이자, 과정일 뿐인 재앙을 내리실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본론 2 : 요나의 분함 (1-3절)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에게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말씀을 번복하신 것에 대하여 싫어하고 성내었습니다. 요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직접적으로 반역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에, 요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거부하며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니느웨를 향한 재앙을 내리지 않기로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안 순간, 요나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을 드러내며 싫어하고 성내었습니다. 


요나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요나가 알고 배우고 믿었던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스스로 계신 능력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능력의 말씀이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선포하라는 말씀을 모두 전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성실하게 자기 임무를 수행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요나는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모두 전하였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 안에서 전한 말씀은 요나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모두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요나에게는 이 사실이 너무나 버거웠고 견디기 힘든 문제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자기가 물고기 뱃 속에서 삼 일 동안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겪으며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었던 이유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럴 바에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용서하면 되었을 것이지 자신을 불러 왜 사용하셨는지 이유를 몰랐을 것입니다.


요나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시내산에서 범죄하였던 이스라엘을 용서하신 하나님을 떠올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절시키시고 모세로 하여금 새로운 민족을 일으키시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간절한 기도와 이스라엘의 자발적인 회개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주께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요나는 자신에게 명령하신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을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요나가 원하는 것은 죽음 뿐이었습니다. 요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음으로 이끄는 독에 불과했습니다.


본론 3 : 성내는 것이 옳으냐 (4절)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어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대답을 원하고 물어보신 것이 아닙니다. 요나가 싫어하고 성내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고 것입니다. 실제로 요나는 하나님께 대답하지 못합니다. 요나는 자신이 맞다고 자신이 의롭다고 소리치지만, 결론은 이해할 수 없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이지만 하나님께서만 항상 선하시고 옳으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노하기 더디하심과 인애를 경험하였지만,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은혜와 자비와 노하기 더디하심과 인애를 계속 베푸셨습니다. 요나에게 말씀을 주시고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였을 때에도, 요나가 배 밑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요나가 탄 배가 폭풍에 심하게 흔들릴 때에도 요나가 물 속에 던저져 물고기 뱃 속에 들어갔을 때에도, 물고기에게 뱉어져 다시 육지에 나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자비와 노하기 더디하심과 인애를 베푸셨습니다. 요나는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요나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순종과 순종했기 때문에 생긴 자신의 의로움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이때까지 베푸셨던 은혜와 자비와 노하기 더디하심과 인애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관되게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노하기를 더디하심과 인애를 나타내기 위해서 능력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시기 위하여 말씀에 신실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도, 시내산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용서하신 것도 모두 사랑을 베푸시기 위하여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여주시길 신실하게 사랑하십니다. 지엄한 율법조차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자기 형제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가르쳐주신 사랑의 법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오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숨겨진 사랑의 뜻을 찾지 못했습니다. 요나는 의로웠지만 하나님 만큼 의롭지 못했습니다.


결론 : 사랑에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가 돌이키는 모습을 보고 재앙을 내리시고자 하신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사랑하셔서 니느웨를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재앙을 내리고자 하셨는데 재앙을 내리기 전에 니느웨가 돌아왔으니 재앙은 필요가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뜻을 돌이키는 하나님을 보며 싫어하고 성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하나님이라고 비꼬았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잘못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신실하셨습니다. 자기 사랑에 신실하셨습니다. 언제나 자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거기에 계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내걸며 이야기 했지만, 하나님의 의로움에 비할 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알지 못하는 자기의 사랑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다른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오셨다고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은 설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언약을 주셨을까요? 연약하고 자기 의만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싫어하고 성내기 바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언약을 맺으셨을까요? 결국 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향한 자기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 후에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이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도 맞습니다. 제자들에게 구약 성경에 예언된 것들을 어떻게 이루셨는지 가르치기 위한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궁극적인 이유는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함께 생활하였던 제자들을 사랑하여서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사랑이 흘러 흘러 우리에게 도달하였습니다. 우리도 이 사랑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우리만 품기에는 이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흘러보내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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