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4장 5절 - 7절
5절 :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절 :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절 :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제목 : 요나와 박넝쿨
서론 : 문맥과 배경
요나가 알지도 못한 사이에 니느웨 성 안에는 큰 회개 운동이 있었습니다. 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정해주신 방법으로 회개하지 않았지만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셨습니다. 불성실한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니느웨에 사는 사람들과 모든 짐승들까지도 변화시켜 자기 잘못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그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매우 싫어하고 화를 내었습니다. 하나님께 자기가 가진 모든 생각을 쏟아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시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항을 하고 하나님께 윽박지르는 요나를 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일말의 기대를 앉고 니느웨 성이 어떻게 되는가를 지켜보기로 결정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요나가 니느웨 성 동쪽에 앉아 니느웨 성이 어떻게 되는가 살펴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요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본론 1: 초막을 짓다 (5절)
요나는 하나님께서 던지신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답하지 않고 니느웨 성을 나와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어떤 일이 있을지를 보려고 앉았습니다. 초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뒤에 광야에 지낼 때 짓고 살았던 이동식 텐트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서 자기 집을 짓고 살아갈 때에도 출애굽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초막을 짓고 가을 추수를 하나님께 감사하는 초막절을 지냈습니다. 요나는 마치 자신을 패역하고 더러운 니느웨 사람들에게서 나와서 초막을 짓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요나가 기다리는 구원은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망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요나가 앉았던 동편은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 방향입니다. 요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니느웨에 임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니느웨 성읍에 실현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패역한 세대에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원하시는 방식이 아닌 자기들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살아가는 패역한 니느웨 백성들에게서 떠나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요나가 바라는 하나님의 정의는 하나님의 것이 아닌 자신의 정의였습니다. 요나는 자신조차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용납하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반역과 도망에도 은혜를 베푸셨는데 요나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신 것은 니느웨 성에서 저들과 함께 살며 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원하시는 방식대로 회개하길 원하셨고 하나님게서 베푸시는 은혜의 원리를 그들에게도 가르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 사명을 무시하고 초막에 앉아 태양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에게는 그런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명령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초막을 짓고 태양을 피하며 하나님의 질문을 피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하였습니다. 이미 돌이키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정의로 판단하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제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도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자기 형제 아벨을 죽였습니다. 요나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보다 니느웨를 더욱 사랑하시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하는 행동은 자기 형제를 죽이는 행위 입니다. 니느웨의 처벌을 바라고 그 처벌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 기대하는 일은 하나님도 자신의 범죄의 공범이 되길 바라는 매우 불경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선지자가 가인과 같이 범죄자가 되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론 2 : 박넝쿨이 자라다 (6절)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위해서 박넝쿨을 자라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초막을 지어서 자신을 태양으로부터 가렸지만 햇볕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초막을 지어도 그 뜨거움을 막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예비하셔서 요나가 지은 초막을 가리게 하셨고 따가운 햇볕으로 인해 겪는 괴로움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박넝쿨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의 입장을 지지해 주시며, 요나가 기대하는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일에 자기 스스로 종결시켰습니다. 니느웨가 무너지기는 40일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니느웨를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3일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단 하루, 단 하루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므로 자신이 받은 모든 사명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초막을 지었습니다. 마치 굉장히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놀라운 성과를 이룬 사람이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모습처럼 요나는 자기를 위해서 초막을 지었습니다. 자기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 초막을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교만한 행동들,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이 반역들을 보시고 다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박넝쿨을 이용해서 요나에게 더욱 쉴 만한 장소를 만들어 주십니다. 요나가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지은 초막을 박넝쿨로 대체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행복을 주십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쁨으로 받아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바라고 원하는 니느웨의 파괴 대신에 박넝쿨을 요나에게 선물하셨습니다.
본론 3 : 박넝쿨이 시들다 (7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시행하십니다. 요나의 화를 누그러 뜨리고 요나의 잘못을 지적하시며 요나가 다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미리 예비한 계획을 시행하십니다. 요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 가운데 준비되며 하나님의 진정한 선지자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셨듯이 벌레를 에비하셔서 박넝쿨을 갉아 먹게 하셨습니다. 박넝쿨은 하루 만에 시들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단 하루 만에 니느웨 성과 같은 큰 성읍도 멸망시키실 수 있으십니다. 니느웨 성과 같이 악독이 가득하였던 큰 성읍이었던 소돔과 고모라는 단 하루 만에 유황불로 그 땅 위에 살아 있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에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네 번이나 하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역할을 요구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이 있다는 사실로 소돔과 고모라를 불쌍히 여긴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혹시라도 있을 의인들이 다치지 않길 기도했습니다. 혹시라도 희생될 형제를 위하여 아브라함은 기도했습니다.
요나에게 아브라함과 같이 니느웨를 위해서 기도하길 원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단 하루 만에 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변덕이 아닙니다. 동쪽으로 도망친 요나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었습니다. 요나에게 은혜를 내리시고 은혜를 거두어 가신 것이 아닙니다. 요나에게 더욱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작업이었습니다. 요나는 작은 박넝쿨을 기뻐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며 자신을 돌보신다는 표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니느웨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도 니느웨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돌보셨기 때문에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요나에게 니느웨 백성들과 그 안에 사는 짐승들은 죄인이고 멸망 받아 마땅할 존재들이었지 자신의 형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결론 : 아버지 되신 하나님
요나는 니느웨의 멸망을 바라면서, 그리고 니느웨 멸망을 자기 눈에 담기 위하여 니느웨 성 동편으로 가서 초막을 만들고 그 그늘에 앉아 니느웨 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은 니느웨와는 다르다. 느웨와 같은 패역한 자들과는 구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내 편이시기에 하나님의 정의는 내가 추구하는 정의와 같기 때문에 니느웨의 멸망을 재앙이 오는 동편에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박넝쿨을 예비하셨고 벌레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자기 형제 아벨을 죽인 가인과 같다는 것을 알려주길 원하셨고 소돔과 고모라에 있을 의인을 위해 기도한 아브라함이 되길 원한다고 알려주시길 원하셨습니다. 요나를 박넝쿨을 통해 돌보시고 사랑하셨듯이 말씀하신 재앙을 돌이키므로 은혜를 베푸시므로 니느웨를 그들의 아버지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도 아버지가 되셨고 니느웨 백성에게도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이 사실은 진짜 아버지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심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인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의인들을 위해 기도하였듯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중보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형제되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의 곁을 지키지 않았던, 예수님을 배신하고 흩어졌던 제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예전처럼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에게 조반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버렸던 제자들을 먼저 찾아와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시고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자를 가까이 하시며 자기 형제로 인정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사랑하여주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자기 형제인 줄도 모르고 사랑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멸망을 기대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를 형제로 받아들이시고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말도 안 되는 은혜 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형제가 되셨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그 은혜 가운데 살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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