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30일 월요일

보수하고 개혁하다 / 열왕기상 22장 41 - 53절


열왕기상 22장 41 - 53절

41 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니

42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43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44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

45 여호사밧의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와 그가 어떻게 전쟁하였는지는 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6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7 그 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 왕이 있었더라

48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49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50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5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52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53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


제목 : 보수하고 개혁하다


아합 왕의 죽음 그리고 남은 자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던 아합 왕이 죽었습니다. 아합 왕의 최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비참한 최후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왕의 시체는 조상의 묘에 장사되었으나 왕의 피는 개들이 핥아 먹는 치욕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어김이 없었습니다. 아합 왕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그 말씀에 불순종한 한 죄인의 죽음일 뿐만 아니라, 여전히 아합의 길로 걷고 있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분위기를 바꾸어 남유다 왕 여호사밧과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과 그에 대항하는 엘리야 선지자를 비롯한 많은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며, 이방의 신은 모두 헛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지켜본 두 왕은 어떻게 살았을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사밧 왕


여호사밧은 아사의 아들로 남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 왕과 같이 정직하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여 백성들이 산당에서 예배하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산당이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이 곳은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던 곳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찾아가기 어려운 곳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산당을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산당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지어졌다고는 하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운영되고 왕과 선지자, 제사장 상호 교차 검증을 받는 예루살렘 성전과는 달리 중앙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조금 느슨하게 운영되었습니다. 때문에 분별되지 못한 많은 이방 종교의 의식이 산당 예배에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산당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전혀 다른 신을 섬기는 곳으로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산당에 대해서 경계하셨고 왕들의 평가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아버지 아사 왕이 실행한 남은 개혁을 이어 받아 시행하였습니다. 특히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었습니다. 남색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단순한 동성애자를 말하다고 볼 수 있으나 당시에는 동성애자보다는 우상을 섬기는 성직자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위해서는 신전에서 성적 접촉을 예배 행위로 보았습니다.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므로 백성들이 남색하는 행위 자체를 금할 뿐만 아니라 이방 신을 예배하지 않도록 백성들을 보호하였습니다.


남색한 자를 쫓아낸 것과는 별개로 여호사밧 왕은 아합 왕과 화평하고 군사적 동맹까지 맺었습니다. 아합 왕은 그 당시에도 유명한 바알 숭배자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사밧 왕은 북이스라엘과 화평을 맺고 군사 동맹까지 했습니다. 이 동맹을 통해서 아합과 여호사밧은 북쪽의 아람 왕 벤하닷과의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에돔도 점령하여 자신을 대신해 다스릴 섭정 왕을  세워 다스렸습니다. 아마도 여호사밧 왕은 이를 통해 솔로몬 이후 소원했던 아라비아와의 무역을 통해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합 왕과 대조되는 장면입니다. 아합 왕은 아람을 정복해 총독을 보내고 군대를 주둔시켜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아합 왕은 아람 왕에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역설적인 결말을 맺습니다.


여호사밧은 또한 솔로몬 왕 때 행했던 해상 무역로를 다시 개척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배가 파선하여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멈추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은 이를 모른 채 함께 해상 무역 개척을 함께하고자 했을 때 여호사밧은 이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여호사밧의 이야기는 역대하에 더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열왕기상에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습니다. 그는 평온히 죽음을 맞고 장사되어 그의 아들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


한편 북이스라엘에는 아합 왕의 죽음으로 아합 왕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어 북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25년 동안 다스린 여호사밧 왕과는 달리 아하시야는 단지 2년 동안만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아하시야의 악행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으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로 행했고,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을 행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길이라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무시하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 지켜야 할 여호와의 절기를 무시했다는 의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러 혹은 절기를 지키러 갔을 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여로보암은 성전과 절기를 무시하고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길은 바알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하나님을 자신의 편의대로 섬기는 죄였다면, 아합의 죄는 하나님을 세상 다른 우상들과 같이 섬긴 죄입니다. 아하시야는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바알을 더 많이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아하시야의 생명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누구의 길을 가려는가?


지금까지 아합 왕의 전사 이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했으나 허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합과 같이 버리지 않으시고 그를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악한 길에 들어서서 그 곳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길게 살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두 사람의 시작은 모두 자기 아버지를 따라 행하는 것이었지만, 결말은 매우 달랐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며 두 가지 측면을 생각보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는 어떤 아버지를 따라 행하느냐? 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보고 닮아가야 할지, 그 모범을 따라 행동해야 할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고 분별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나는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가 입니다. 아사와 같이 자녀를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게 할 아버지가 될 것인가? 아합과 같은 자녀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살게 할 아버지가 될 것인가? 우리 삶을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점검하며 정직하게 살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복과 은혜를 누리는 성도님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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