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0일 금요일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 시편 3편 1 - 8절

시편 3편 1 - 8절

1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위대한 다윗의 위대한 기도


다윗은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다윗이 위대하다고 평가 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당했던 수많은 고난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져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당한 고난은 거의 대적으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다윗의 가장 끈질긴 대적은 사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의 존재 자체를 두려워 하였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에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다윗에게 집착하기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다윗은 광야를 떠돌았고, 블레셋과 같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에 붙어 비굴하게 생명을 이어나가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대적들에 의해서 고난을 받을 때마다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고난의 연속일 때,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하나님께서 이 고난 속에서 꺼내주실 유일한 분이라 믿으며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그 기도를 입으로 그저 드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기록하여 다른 어려움을 겪는 자들도 자신처럼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의 모범을 시편을 지어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통해 위대한 신앙의 거장 다윗의 기도를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기도를 하도록 다윗에게 신실하셨던 우리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편 3편을 읽어나가면서 대적들에게 둘러쌓여 고난 받던 자가 어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어떤 도우심을 구해야 할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황인식


시편 3편은 시편의 저자와 이 시편이 기록된 계기에 대해서 기록된 시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장과 절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괄호로 처리되어 있어 대부분 읽지 않지만, 시편은 각 시편의 표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표제는 성경에 포함된 기록으로 히브리어 성경은 이 표제를 1절에 포함 합니다. 때때로 우리가 가진 성경과 한 절씩 차이가 날 때도 있습니다. 표제가 길거나 1절이 길 경우 분리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표제는 이 시편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이고, 시편 본문과 함께 보전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3편 표제는 이 시편이 다윗이 지은 시이고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표제를 통해서 우리는 다윗이 이 시를 지을 때의 상황과 감정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고 난 뒤에야 시편에서 사용된 단어와 문장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수월합니다. 왜냐하면 시에 사용되는 문장이나 단어들은 원래 평소에 사용하던 뜻보다 조금 다른 뜻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시는 사실만을 기록하는 글이 아닙니다. 히브리 시는 시인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간결한 문장과 평행법 그리고 비유를 많이 사용합니다. 오늘 본문 1절만 보아도 그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여기서 다윗은 비슷한 뜻의 짧은 문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짧은 문장을 통해서 자신의 처지를 간결하게 묘사하고 평행법을 사용해서 자신의 대적이 많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언급합니다. 이 반복 평행법은 자신을 헤치려는 대적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대적이라는 말을 일어나 나를 치는 자라는 심상을 제시하면서 다윗을 반대하는 대적들이 그저 말과 생각으로만 반대하지 않고 실제로 다윗을 헤치려고 다가오는 자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다윗은 이 짧은 문장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수세에 몰려 있는 나약한 존재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


다윗을 이토록 위기에 몰아넣은 것은 압살롬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로 다윗이 아끼던 아들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용모가 출중하고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흠이 없던 완벽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형님이자 다윗의 첫째 아들인인 암논과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암논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왕위 계승권이 있는 왕자를 왕의 심판 없이 죽이는 것은 큰 죄에 해당합니다. 다윗은 매우 아끼는 아들 압살롬이었지만 그를 예전처럼 곁에 둘 수 없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이 벌인 짓이 큰 죄인 줄 모르고 아버지 다윗이 자신에게 행한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여러 방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회복하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끝내 압살롬을 용서해주는 듯 보였지만 전과 같은 사랑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이 상심한 마음은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타고난 용모와 부드러운 성품으로 다윗에게 홀대 받는 자들을 모아 함께 연합하여 반란을 계획하고 실행합니다.


압살롬의 반란은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자보다 압살롬을 따르는 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순식간에 압살롬은 수도 예루살렘을 점령할 수 있었고 다윗은 요단강을 건너 동편 길르앗 땅으로 피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르실래와 같은 헌신적인 사람들이 다윗을 돕긴 하였지만,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은 압살롬을 따르는 자들에 비하면 소수였고 언제 패배할지 모르는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간구는 “여호와여”로 시작한다.


다윗은 여호와여 라고 하면서 기도를 시작합니다.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람을 처음 지으실 때부터 자신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여호와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밝히시는 시점은 출애굽을 위해서 모세를 부르실 때 부터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온전히 이루시려고 준비하는 그 때, 여호와라는 이름은 그저 이름이 아니라 다른 특별한 의미를 더하게 됩니다.


옛날 장군들은 전투를 하기 전에 통성명을 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일방적으로 재앙으로 무너뜨리신 것이 아니라 애굽과 전쟁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다만 이 전쟁의 승패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을 통해 여호와라는 이름을 온 세계와 열방에 전파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말을 전할 모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마침내 출애굽에 성공했을 때, 여호와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의미가 더해졌고 온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대신 싸우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내셨습니다. 홍해 앞에서 모세는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시는 모습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바라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싸워주시길 기도하는 일입니다. 다윗 앞에는 도저히 자신의 능력으로 넘어설 수 없는 대적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으 능력을 과대 평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실패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2장 13절에서 14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아니냐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사람이 아무리 수고하고 피곤해 지도록 성을 쌓고 작전을 짜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버리신다면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불에 타버리고 빈틈없는 작전도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다라는 깊고 넓은 공간을 물로 가득 채우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대신 싸워 승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에 다른 어떤 말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떤 기도보다 강력한 것을 알았습니다. 대적들의 압도적인 숫자가 다윗을 위협한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만 함께 계시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다윗이 여호와 이름을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출애굽의 구원을 기억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윗의 인생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앞서 말씀드린 히브리 시의 평행법에 따라 세 가지 다른 단어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여호와 주님께서는 다윗의 방패가 되어주시고, 영광이 되어주시고 머리를 드시는 자가 되어주셨습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택함 받아 이스라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세워졌습니다. 그 덕분에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 수년간 도망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당당했고, 미갈을 위하여 블레셋 사람 200명의 포피를 베어 바칠 용감 무쌍한 사람이었으나 늘 주위를 경계하고 불안에 싸여 수년간을 살아야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며 불안 가운데 있을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놓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을 물리치고, 블레셋 사람 200명의 포피를 벤 일이 결코 자신의 능력이나 힘으로 한 것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이 되어 주시므로 이룰 수 있었던 일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위기 가운데 있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항상 돌아봐 주시고 여호와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신 싸워주시고 그를 구원해주셨습니다.


두려워 하지 않는 다윗


다윗은 불안해 하며 기도하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는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따르는 자는 압살롬을 따르는 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었지만,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워 자고 깨었습니다. 전쟁과 난리 중에 있는 사람이 누워 잘 수는 없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적군을 방비하면서 선잠을 자거나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야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누워 자며 깨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천만 인이 자신을 둘러싸고 자신을 친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천만이라는 숫자는 현실적으로 다윗의 머리 속에서 나올 수 없는 숫자입니다. 다윗의 말년에 군대 장관 요압을 시켜 인구 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능히 칼을 빼어 전쟁에 나갈 수 있을 만한 장정이 110만이라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천만인 이라는 숫자는 민수기 10장 35절에서 36절에 등장합니다. 현재 개역개정에서는 천만인이라는 말을 종족이라는 말로 의역하였기 때문에 개역한글 성경을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35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 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여기서 천만인이라는 숫자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사용한 천만인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현재 대다수의 백성들이 압살롬을 따르고 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가면 모든 백성들이 다윗에게서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압살롬을 따르더라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패, 영광, 머리 드시는 자이시므로 두려워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다윗의 담대한 선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받은 줄로 알고 믿으라!


다윗은 민수기 10장의 모세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방황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밤낮으로 보호하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앞서 가시면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물리치셨습니다. 다윗은 그 때 이스라엘 앞에 대적들과 대신 싸우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자기 앞에 섰던 대적들을 물리치신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양치기 시절의 곰과 사자 뿐만 아니라 블레셋 거인 골리앗과 사울 왕,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여부스 족속, 암몬, 모압, 에돔, 아말렉, 블레셋 등등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뺨을 치시고 그들의 이를 꺾어주셨습니다. 이 일은 이미 다윗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이미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다른 이들에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1장 23절에서 24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다윗은 이미 자신이 경험한 구원 때문에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을 걸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으로 인하여 앞으로 이루실 구원 또한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알고 믿고 선포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마도 시편 3편 전체에서 간구하는 모든 구원은 이미 받은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다윗은 또 평행법을 사용하면서 구원이 주님께서 주시는 복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복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을 통한 자유, 구원을 통한 회복, 구원을 통한 사랑을 깨닫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의 방향은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주의 백성을 향해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대적하고 압살롬에게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최고의 복인 구원이 주의 백성에게 베풀어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주의 백성에게 구원이 임하길 기도하는 이유는 압살롬의 반란이 그저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겪는 고통인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모든 문제는 다윗 자신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알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면서 빨리 이 죄악의 고통에서 구해주시길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구대로 다윗과 그의 백성을 압살롬의 손에서 구원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우리의 기도


지금까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 지은 시편 3편을 묵상해보았습니다. 다윗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변하지 않으심, 언제나 기도를 들어주시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고 신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어떤 말보다도 여호와여 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윗과 같은 극적인 경험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윗에게 없던 것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온 몸을 구르며 경험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수단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에, 말씀을 곱씹고 묵상할 때에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고 보지 못했더라도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변하지 않는 표적으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변하지 않고 확실하게 증명하는 표적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 결코 변할 수 없이 이미 일어난 그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확실히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발견하고 다윗처럼 굳건한 확신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도할 것을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안타깝고 절절한 마음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 속에 살아갑니다.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우리 삼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도를 쉬지 않는 은혜를 누리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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