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6일 월요일

유대에서 갈릴리로 그런데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 요한복음 4장 1-9절

요한복음 4장 1-9절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침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침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유대에서 갈릴리로 그런데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한 섬기며 높여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땅히 그런 대접을 받으셔야 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세례 요한을 주목하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주목을 피하기 위하여 유대를 떠나고자 하셨습니다. 유대를 떠나게 되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공생애의 삶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유대를 떠나시는 예수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릴 때, 많은 사람들의 시선도 세례 요한이 아닌 예수님께로 시선이 옮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목 받는 사역자가 되셨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는 것보다 예수님께로 가서 세례 받는 일이 더 많아지기 시작할 때, 바리새인들의 시선도 예수님께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시고 그들을 피해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세례를 받은 이유는 세례 요한의 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열심을 품고 많은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열심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지금 예수님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피할 길이 있었고 용납할 만한 수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지나친 열심, 혹은 구원 계획 가운데 도움이 되지 않는 열심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고자 하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십자가 형벌을 받지 않기 위해 바리새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 입니다. 하지만 그 일로만 유대에서 떠나신다면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으셔도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그들의 지나친 열심과 유대인 중심에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사마리아 행을 택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면 속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며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돌아가신 것은 오직 단 한 명의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시선을 피하여 갈릴리로 돌아가실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셨습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땅조차 밟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이방인들의 땅으로 돌아가거나 배를 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수가라는 성에 이르렀습니다.


사마리아는 본래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준 지역을 가리킵니다. 그곳에 북이스라엘 왕국이 자리 잡았고 그들의 죄로 인하여 앗수르에게 정복당했습니다. 앗수르의 가혹한 정복 정책 때문에 이방인들과 피가 섞일 수 밖에 없었고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말았습니다. 분열 왕국의 죄와 허물이 쌓여 있는 사마리아에는 믿음의 조상들의 유적들이 남았고 사마리아인들은 나름의 회개를 하며 조상들이 지은 제단과 판 우물을 곁에 살았습니다.


수가라는 성에도 야곱의 우물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며 잠시 수가 성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쉬셨습니다. 그 때가 여섯시였는데, 이는 우리 시간으로 정오였습니다. 딱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었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우물가에 앉아 있을 때, 한 여인이 그 우물에 물을 길러 왔습니다.


바로 그 여인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물을 떠서 줄 수 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태도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 여자를 평생 월경하는 여인과 같이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자에게 닿은 것은 모든 것이 부정하고 그와 함께 앉는 것도 부정합니다. 항상 정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부정할 때는 제사를 지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 특히 여자를 함부로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유대 율법 주석서인 미쉬나 니다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사마리아인에게 먹을 것을 사는 일은 허용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에게 먹을 것을 사서 그들의 그릇으로 그들끼리 먹을 것이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여인이 사용한 두레박으로 여인이 가져온 그릇에 담아 물을 먹는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월경하는 부정한 여인에게 닿은 그릇을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부정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쉬나를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면서 굳이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하는 이유가 자신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정오에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러온 바로 그 여인입니다. 예수님의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고 필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 상쇄하는 가장 큰 이유와 필요는 한 사람의 생명이었습니다. 이 생명이라는 것은 불특정한 혹은 일반적인 한 생명을 뜻하지 않습니다. 정오에 야곱의 우물로 물을 길러 온 그 여인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사마리아를 통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통해 놀라운 계시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다른 누구도 아닌 한 사람을 위하여


지금까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돌아가신 예수님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떠날 이유와 명분이 충분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를 통과하실 이유는 전혀 없으셨습니다. 사마리아를 가로질러서 빠르게 돌아가야 할 만큼 긴박한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굳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고 수가 성 야곱의 우물에서 정오에 물을 길러 오는 한 여인을 만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실 것입니다. 누가 예배 받을 만한 자이고, 누가 전능하신 분이신지, 또 누가 가장 사랑하는지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 찾아오시며 우리를 초대하시는 그 은혜를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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