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7일 금요일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는


 서     
     요즘 대한민국은 ‘헬조선’ 이라 불릴 만큼 살기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청소년들은 ‘입시지옥’이라 불리는 교육 환경에서 하루하루 문제 푸는 기계와 같은 삶을 살고 있고,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렸던 대학은 이미 일자리 경쟁을 위해서 스펙 쌓는 취업예비학교가 되어있다. 물가와 부동산 가격은 치솟아서 가계 부채 또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종말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된다. 본 보고서가 다루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절은 핍박과 고난 가운데 주의 날을 곧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이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말의 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고 종말의 때를 기다리는 성도의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 본문 번역
  
  
개역개정
1
Περὶ δὲ τῶν χρόνων καὶ τῶν καιρῶν, ἀδελφοί, οὐ χρείαν ἔχετε ὑμῖν γράφεσθαι,
게다가 형제들아 시간과 때에 대하여 너희에게 쓰여질1 필요가 없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αὐτοὶ γὰρ ἀκριβῶς οἴδατε ὅτι ἡμέρα κυρίου ὡς κλέπτης ἐν νυκτὶ οὕτως ἔρχεται.
확실히 너희들은 너희 스스로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ὅταν λέγωσιν· εἰρήνη καὶ ἀσφάλεια, τότε αἰφνίδιος αὐτοῖς ἐφίσταται ὄλεθρος ὥσπερ ἡ ὠδὶν τῇ ἐν γαστρὶ ἐχούσῃ, καὶ οὐ μὴ ἐκφύγωσιν.
그 때에 그들이 말할 것이다. “평화와 안전하다.” 그리고 갑자기 멸망이 그들 위에 온다. 아이 밴 자궁에 산고처럼,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ὑμεῖς δέ, ἀδελφοί, οὐκ ἐστὲ ἐν σκότει, ἵνα ἡ ἡμέρα ὑμᾶς ὡς κλέπτης καταλάβῃ·
그러나 너희 형제들아, 너희가 어둠 속에 있지 않는다. 그 날이 너희에게 도둑이 불시에 엄습함처럼 (있지 않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πάντες γὰρ ὑμεῖς υἱοὶ φωτός ἐστε καὶ υἱοὶ ἡμέρας. Οὐκ ἐσμὲν νυκτὸς οὐδὲ σκότους·
확실히 모든 너희들은 빛의 아들들이고 또한 낮의 아들들이다. 우리는 밤과 어둠의 (아들들이) 아니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ἄρα οὖν μὴ καθεύδωμεν ὡς οἱ λοιποί ἀλλὰ γρηγορῶμεν καὶ νήφωμεν.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경계하고 술 취하지 말자.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Οἱ γὰρ καθεύδοντες νυκτὸς καθεύδουσιν καὶ οἱ μεθυσκόμενοι νυκτὸς μεθύουσιν·
확실히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한다.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ἡμεῖς δὲ ἡμέρας ὄντες νήφωμεν ἐνδυσάμενοι θώρακα πίστεως καὶ ἀγάπης καὶ περικεφαλαίαν ἐλπίδα σωτηρίας·
그러나 우리, 낮에 속한 우리는 취하지 말고, 믿음과 사랑의 가슴 갑옷을 입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ὅτι οὐκ ἔθετο ἡμᾶς ὁ θεὸς εἰς ὀργὴν ἀλλὰ εἰς περιποίησιν σωτηρίας διὰ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노하게 정하신 것이 아니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신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τοῦ ἀποθανόντος ὑπὲρ ἡμῶν, ἵνα εἴτε γρηγορῶμεν εἴτε καθεύδωμεν ἅμα σὺν αὐτῷ ζήσωμεν.
(그는) 우리가 경계하든지 자고 있든지, 그와 함께 우리를 살게 하려고 우리를 위하여 죽은 자이다.2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Διὸ παρακαλεῖτε ἀλλήλους καὶ οἰκοδομεῖτε εἷς τὸν ἕνα, καθὼς καὶ ποιεῖτε.
그러므로 서로를 격려하라 그리고 서로를 세워주라 너희가 바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 본문의 장르 및 역사적 배경
   본문의 장르 : 교훈을 위한 서간문
     본문은 바울 사도가 멀리 떨어져 있는 고린도에서 마케도냐 지방에 있는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수신자와 발송자가 있는 ‘서간문’ 형식을 따르고 있다. 특히,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 생겨난 주의 날에 대한 궁금증들을 가르치고 오해들을 바로 잡아주는 ‘교훈’ 의 형태로 나타난다.
   본문의 역사적 배경, 문화적 배경
     - 본문의 저자와 저작시기 : 사도 바울, A.D. 50-51년경 (고린도)
     저자는 1:1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이다. 데살로니가전서는 2차 선교여행 중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면서 아덴에 이르러 다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낸다 (살전 3:1-2) 그리고 디모데를 고린도에서 다시 재회하고(행 18:5)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므로, 이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편지를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살전 3;7-8) 이런 사도 바울의 행적은 2차 선교여행의 행적과 일치하므로 따라서 본문은 A.D. 50-51년경 고린도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 데살로니가의 역사적 배경3 : 전통적 헬라도시
         BC 315년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중 한 사람인 마케도니아의 왕 카산드로스(Cassander)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옛 마케도니아 중심 도시였던 내륙 도시인 펠라에 비해 테르마이크만의 위치하여 지중해 항로 이용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BC 168년 로마에 점령되고 로마 마케도냐 주의 주도가 되었다. 그리고 총독 에그나티우스에 의해 에그나티아 대로를 건설하여 데살로니가는 아시아와 로마를 잇는 가교 역할을 감당한다.  BC 42년 빌립보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를 지지함으로 자유도시(Civitas libera)가 된다. 자유도시에서는 도시자체의 자치가 가능하였고, 5~6명의 읍장으로 이루어져있는 집단 정치체제로 다스려졌다. 또한 로마 군대 주둔하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막대한 세금을 면제 받았다.
     - 데살로니가의 문화적 배경
          · 데살로니가의 종교 : 다신교 및 혼합주의적 종교
     전통적으로 그리스 문화권에서 섬기는 제우스를 필두로 한 올림푸스 신들 뿐만 아니라 이집트 신들까지 받아드렸다고 한다.4 또한 황제 숭배도 중요한 종교로 여겨졌다. 특히, 카비루스는 당대의 데살로니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종교로 받아드려졌다.5 이들 종교들의 특징을 종합해보면6 첫째, 비윤리적인 종교이다. 성적으로 방종하고 술 취하는 삶을 권장하며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을 부정하고 남근을 사용한 종교행사를 치루었다. 둘째, 기복적인 종교이다. 신들은 은혜가 아니라 철저한 보상 원리로 사람들에게 선물(제물)을 받아야만 복을 준다고 생각하였다. 셋째, 정치적 종교였다. 자유도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황제 숭배를 강요하였고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 데살로니가의 경제 및 지리 : 교통의 요지이자 부유한 도시
     자유도시의 특권으로 로마 공용화폐를 사용하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 도시만의 화폐를 만들고 유통할 수 있었다.7 데르마이코스 만의 북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자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에그나티아 대로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로 무역이 성행했지만, 데살로니가 도시 자체로도 생산력이 있었다. 농사 짓기에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금 광산과 목재를 생산할 숲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8
   저자와 독자들이 처한 상황 : 핍박과 유혹의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킴.
      저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충분히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유대인의 핍박에 의해서 데살로니가를 떠나왔어야만 했다. (행 17:10)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은 유대인의 핍박(대표적으로 야손과 그 형제들, 행 17:6)과 시험하는 자들(살전 3:5)에 노출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을 항상 걱정을 하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제자 디모데를 보내어 확인하게 하였다. (살전 3:1-2) 디모데가 가지고 온 소식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잘 지키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었고 바울은 크게 기뻐한다. (살전 3:7-8) 하지만, 바울이 충분히 가르치지 못한 탓 인지,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은 종말이 임박하였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교정하고자 하였다.

 본문의 전후 문맥
     본문은 4장 9절 부터 시작되는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질문한 문제에 관한 응답 중에서 세 번째 응답이다. 바로 앞의 단락은 ‘자는 자’ 들에 대한 응답이며, 예수께서 죽으셧다가 다시 살아남을 믿는 것 같이 (4:14)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죽은 자들이 일어날 것이며 (4:16), 살아 남은 자들은 다시 살아난 자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라 가르친다. (4:17) 또한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서로를 위로하라고 권면한다. (4:18) 이 문단은 자연스럽게 본문으로 이어진다. 같은 주의 날을 주제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그 주의 날의 ‘때와 시간’ 에 관하여 다루고 질의 응답을 마친다. 그 뒤의 문맥은 다시 4장 1절의 권면의 맥락으로 돌아가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에게 공동체의 화목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하나님의 뜻을 지키라 권면한다.

 본문의 구조
   데살로니가전서 전체의 구조9 : 전통적 헬라식 담화문 양식 (예식적 수사)
      데살로니가전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3가지 공적 담화 유형들 중에 예식적 수사법이 사용되었다. 이 예식적 수사는 상대방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칭찬하거나 비난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주로 장례식 추모사에 많이 쓰인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 예식적 수사는 인사말, 서두, 사건의 해명, 문제 제기, 전환, 논증, 종결부로 이루어져 있다.10 이와 같이 정형화된 양식 아래에서 데살로니가전서가 기록되었기 때문에 아래 표에서 비교한 두 학자도 제목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하게 본문을 나누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본 보고서는 두 학자의 의견보다 구분을 단순화하여 적용하기로 한다.
Gene L. Green
Charles A. Wanamaker
나의 구조
I. 인사말 (1:1)
II. 복음의 도래와 그것의 수신 (1:2-10)
III. 편지의 본문 (2:1-5:22)
  A.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복음 (2:1-3:13)
    1. 사도가 들어감 (2:1-12)
    2. 복음의 수신 (2:13-16)
    3. 사도들의 퇴장과 돌아갈 시도 (2:17-20)
    4. 디모데의 선교 (3:1-5)
    5. 데살로니가인들에 대한 감사 (3:6-10)
    6. 데살로니가로 돌아가기 위한 기도 (3:11-13)
  B.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 (4:1-5:22)
    1. 서론 (4:1-2)
    2. 만족 (4:3-8)
    3. 질문에 대한 답변 (4:9-5:11)
      a. 형제의 사랑 (4:9-12)
      b. 잠에 빠진 자들 (4:13-18)
      c. 시간과 때 (5:1-11)
    4. 공동체와 그의 리더쉽 (5:12-13)
    5. 공동체 속의 삶 (5:14)
    6. 보복없는 삶 (5:15)
    7. 하나님과 함께하는 공동체 (5:16-18)
    8. 공동체에 예언 (5:19-22)
IV. 마지막 기도, 인사, 축복 (5:23-28)
  A. 거룩하게 하시고 (5:23-25)
  B. 모든 형제와 자매에게 문안하라 (5:26-27)
  C. 주의 은혜가 너희 가운데 (5:28)
I. 편지의 인사말 (1:1)
II. 편지의 전문 (1:2-10)
III. 사건의 해명 (2:1-3:10)
  A.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선교사역 (2:1-12)
  B. 이야기 안에서 하강 (2:13-16)
  C. 바울과 박해당하는 데살로니가의
     개종자들과의 지속적인 관계 (2:17-3:10)
    1. 데살로니가로 돌아가려는 시도들 (2:17-20)
    2. 디모데를 보내다 (3:1-5)
    3. 디모데의 귀환 (3:6-10)
IV. 사건의 해명에서 논증으로 전환 (3:11-13)
V. 논증 (4:1-5:22)
  A. 도덕적 권면 (4:1-12)
    1. 현재 행실을 유지하라 (4:1-2)
    2. 성적 규범 강화 (4:3-8)
    3. 가족의 사랑과 조용한 삶 (4:9-12)
  B. 존재와 가정에 대한 설명 (4:13-18)
  C. 종말론적인 기대와 권고 (5:1-11)
  D. 일반적인 권고들 (5:12-22)
VI. 결론과 편지의 나가는 말 (5:23-28)
1. 인사말(1:1)
2. 편지를 보내는 이유 (1:2-10)
3. 과거를 돌아보는 내용 (2:1-3:13)
 - 사도의 방문과 복음전도(2:1-12)
 - 핍박받는 성도들을 향한 위로 (13-20)
 - 디모데의 방문과 보고 (3:1-10)
 - 데살로니가를 다시 방문하기를 기도 (11-13)
4. 권면의 내용 (4:1-5:24)
 - 이미 행하고 있는 것을 격려 (4:1-2)
 - 음행에 대한 권면 (4:3-8)
 - 교우들에 대한 사랑을 권면 (4:9-12)
 - 부활에 대한 권면 (4:13-18)
 - 주의 날에 대한 권면 (5:1-11)
 - 가르치는 자를 대하는 권면 (5:12-13)
 - 약한 자에 대하는 권면 (5:14-15)
 - 하나님의 뜻을 지키라 (5:16-22)
 - 거룩하고 완전하게 하실 하나님 (5:23-24)11
5. 마지막 인사 (5:25-28)


  석의 본문의 구조
5장 전체의 개요
본문의 구조
1-11 : 주님의 날에 임하는 자세
12-13 : 봉사하는 자들을 존경하라
14-15 : 약한 자들을 존중하라
16-22 : 하나님의 뜻
23-24 :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하나님
26-28 : 기도 부탁, 끝인사
A. 주님의 날은 멸망의 때이다. (1-3)
 B. 빛의 자녀인 우리들 (4-7)
A’.주님의 날은 구원 얻을 날이다.(8-11)
     본문은 4절의 ὑμεῖς δέ (그러나 너희는) 과 8절에  ἡμεῖς δὲ (그러나 우리는) 으로 내용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12 1-3절에서 주의 날이 밤의 도둑과 같이 산고와 같이 찾아와 평화와 안전을 부수는 멸망의 때라 경고하고는 “그러나 우리는 빛의 자녀이다.” 라고 주의 날이 우리에게는 도둑과 같이 덮치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7절에서 어둠 속한 자들의 행태를 보여주고 “그러나 우리는 취하지 말자.” 하고 구원 얻을 날을 준비하도록 권면한다.

 본문 구조에 따른 해석
   주님의 날은 멸망의 때이다. (1-3절)
     - 1절 : ‘시간과 때’ 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와 시간을 가리킨다. 이 표현은 바울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아주 잘 알려진 관용구로 보인다. 이 표현은 사도행전 1장 7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에서 유래되어 많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지만,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에서 먼저 사용되었다.13 (단 2:21, 7:12, 느헤미야 10:34, 13:31 등) 그것에 대해서 쓸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을 때, 사도 바울과 동역자들은 ‘시간과 때’ 이라는 표현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너희에게 쓰여질 필요가 없다’는 4장 9절에서 ‘형제 사랑’ 에 대한 것을 다룰 때에도 ‘적을 필요가 없다’ 고 말하는데 이 때는 능동태를 사용한 반면 본문 1절에서는 수동태를 사용한다.14 이와 같은 차이는 형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하나님께 받아서 (4:9), 그대로 실천하는 (4:10)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가르칠 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지만, 4장 9절의 상황과는 다르게 본문의 상황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시간과 때’ 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차이이다.15 바울은 그 때와 시간이 어느 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1절 이후로 나오는 종말의 때를 어떻게 맞이해야하고 준비해야하는지가 더욱 중요한 것임을 서두에서 밝혀 놓는 것이다.
     - 2절 : 바울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이 오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마태복음 24장 43절과 누가복음 12장 39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인유(Allusion) 하여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말씀은 주의 날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주의 날은 노아의 때와 같이 평범한 일상을 보낼 때에 예상치 못한 때에 온다고 말씀하시고, 누가복음에서는 혼인잔치를 위해 신랑이자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모습을 비유하며 가르치신다. 사도 바울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누가복음의 말씀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과 때는 모른다. 오직 그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눅 12:38)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 3절 : λέγωσιν은 현재시상 가정법 동사이다. ‘평화롭다, 안전하다.’ 고 주의 날을 기다리지 않는 자들이 지속적으로 말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16 평안과 안전은 팍스 로마나의 구호였다.17 그 평안과 안전은 로마의 군사력과 외국인들도 로마의 시민으로 받아주는 식민지 정책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황제 숭배로 정점을 이룬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도시는 멸망을 당할 뿐이다. 서기 1세기경의 유대 전쟁 또한 이와 같은 이유로 치루어 진 전쟁이었다. 그 평안과 안전을 지속적으로 말해야 하듯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주의 날은 강대한 로마의 군사력을 웃도는 멸망의 날임을 강조한다.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이라 부정어를 두 번 반복하면서(οὐ μὴ) 단호히 선포한다.
     바울은 2절에서 사용한 ‘밤의 도적과 같이 어느 때에 임할지 모르는 주의 날’ 이미지를 ‘아이 밴 여자의 산고’로 치환하여 강조한다.18 도적은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아이가 산모의 뱃 속에서 나와야 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는 누가복음 12장의 혼인잔치 비유와도 연결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은 언젠가는 와서 이 혼인잔치를 끝 마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다림은 고통을 기다리기 이전에 기쁨을 기다리는 것이다. 산고를 견디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고통이지만 아이가 나와서 그를 안을 때, 모든 고통이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기쁨만이 그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 우리는 빛의 자녀이다. (4-7절)
     - 4절 : ὑμεῖς δέ 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3절에서 말하는 사람들과는 너희들은 전혀 다르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서 ‘너희’는 지금이 평안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은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이유에 대해서 바울은 다시 도둑의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한다. 도둑이 오는 시간은 어둠이 있는 시간이다. (2절) 바울은 어둠을 자신의 유대적 배경에서 말한다.19 어둠은 통상적인 뜻인 빛이 없는 상태 (창 1:18, 신 5:23, 욥 26:10 등)을 말하기도 하지만, 재난이나 (출 10:22, 욥 5:14, 15:30 등), 곤고한 상태 (시 88:18, 전 5:17, 사 9:1-2 등)를 말하기도 한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징벌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하나님께 가르침 받은 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행동한다. (4:9-10) 그들에게 ‘어둠’은 전혀 없는 것이다. 어둠이 없으면 도둑이 오는 것을 보고 준비할 수 있다. (눅 12:29)
     - 5절 : 바울은 4절에서 사용한 어둠을 더욱 확장시켜서 빛의 아들들, 낮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 밤의 아들들을 대비시킨다. 이런 표현들은 예수님께서도 사용하셨다. (눅 16:8, 요12:36) 예수님을 믿는 자들임을 의미한다. 또한 쿰란 사본에서도 사용되어서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통상적인 표현으로 쓰여진 것 같다.20 빛의 아들들은 선택된 자들을 의미하고 어둠의 아들들 선택된 자,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바울이 의도한 바도 빛의 자녀, 낮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직설법 동사 ἐστε (현재, 직설법, 능동, 2인칭 복수, 너희는 ~ 이다.) 를 사용하여 너희들에게 빛의 아들들, 낮의 아들들이라고 선포한다. 이 선포는 다음 절에 이어지는 명령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고 근거가 된다.
     - 6절 : 5절의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은 6절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로 대체된다. μὴ ~ ἀλλὰ ~ 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확연히 구별할 수 있다. 우리는 잠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경계해야하고, 술 취하지 말고 정신 차려야 한다. γρηγορῶμεν 와 νήφωμεν 는 현재시상, 가정법, 1인칭 복수로 우리 함께 하자는 청유의 뜻을 가진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함께 하자고 부탁한다. 이는 데살로니가전서가 예식적 수사법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21 바울은 어린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할 삶의 방식이 잘 정착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 그들에게는 고린도 교회처럼 분열된 교회를 다시 단합된 교회가 되기로 설득하기 위해 단합의 유익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고, 갈라디아 교회처럼 다른 교훈을 받아드린 교회와 시비를 따지고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었다. 다만, 그들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게 하고 그것을 칭찬하고 또한 칭찬 받을 행동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바울은 자신과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을 ‘우리’로 동치시킴으로 자신도 이 일에 동참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 7절 : 6절의 ‘다른 사람들’은 ‘자는 자들’과 ‘술 취하는 자들’로 치환된다. 잠자고 술 취하는 시간도 밤으로 한정된다. 그들은 밤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자고 술 취하는 것이다. 그들은 잠자고 술 취하였기 때문에 준비하지 못한다. 이 절의 모든 분사와 동사는 현재시상을 가지는데, 이는 밤의 아들들은 밤에 항상 자고, 술 취해 있음을 나타낸다. 그들이 낮에는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 주의 날을 대비할 수 없다. 그들은 벌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눅 12:45-46)
   주님의 날은 구원 얻을 날이다. (8-11절)
     - 8절 : ἡμεῖς δὲ 로 7절의 사람들과 바울 자신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포함한 ‘우리’ 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다시 우리는 낮에 속한 자들이라고 환기시키는데, 여기서 ὄντες 는 현재 분사로 νήφωμεν 의 숨겨진 주어인 1인칭 복수를 수식하는 형용사의 역할을 한다. 현재 시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 의미는 우리는 낮에 지속적으로 속한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술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1-7절까지 서술의 요약이다. 선언된 데로 명령(청유)을 행할 수 있다는 바울 서신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믿음과 사랑의 가슴 갑옷’과 ‘구원의 소망 투구’ 는 이사야 59:17을 인유하고 있다.22 이사야 59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공의의 갑옷과 구원의 투구, 응징의 속옷, 열심의 겉옷을 입으시고 억압받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싸우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장비들을 우리에게 입히신 것이다. ἐνδυσάμενοι 는 단순과거(Aorist), 분사, 중간태로 우리가 낮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이미 입혀진 것임을 알려준다.23 갑옷을 입은 군사, 전투 준비가 된 군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경계해야하고, 술 취하지 말아야 한다.
     - 9절 : 우리는 군사로 세움 받았다. 군사의 의무를 다해야한다. 주의 날이 언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군사의 의무를 진노를 받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원함을 받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 당장은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나 자신의 이유로 어렵고, 핍박이 있어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받도록 하려함이다. 바울은 이런 관계를 οὐκ ~ ἀλλὰ ~ 로 결정적으로 대비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περιποίησιν의 해석이 문제될 수 있다.24 여성 명사로 보호, 소유, 취득의 뜻으로 사용된다. 본문에서는 취득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명사만 보았을 때는 구원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취득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 바울이 가지고 있는 구원의 개념에 배치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명사는 전치사 εἰς 의 목적어로 사용되어 동사 ἔθετο 의 목적절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을 취득할 수 있도록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작정하신 것이다.
     - 10절 : 9절의 언급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한다. 명사문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는데, τοῦ ἀποθανόντος (죽었던 자) 는 9절의 말미의 예수 그리스도 (Ἰησοῦ Χριστοῦ)를 동일한 격으로 받는 것이다. τοῦ ἀποθανόντος 는 분사, 단순과거(Aorist), 소유격, 남성 단수 이다. 단 한 번에 제사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사역을 의미한다. (히 9:12) 그 한량없는 은혜의 사역으로 구원을 얻은 우리는 그와 함께 살아간다. 이를 나타내는 동사 ζήσωμεν (살다) 는 단순과거(Aorist), 가정법, 능동, 1인칭 복수이다. 이 때 단순과거 시상은 과거에 한 번 이루어진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그 순간 시작한다는 말이다.25 따라서, 의미를 살려서 해석하면, ‘그와 함께 살기 시작하기 위하여’ 라고 해석할 수 있다.
     εἴτε γρηγορῶμεν εἴτε καθεύδωμεν (우리가 경계하든지 자든지) 는 앞의 문맥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26 앞의 문맥을 고려해 볼 때, 자는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 경계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는 자를 가리킨다. 예수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예수님의 공로를 받아 구원 받는다는 것은 바울의 구원 개념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자는 자와 경계하는 자는 앞의 4:13-18 에서 미리 언급하였다. 자는 자는 성도들 중에 먼저 죽은 자들을 가리키고, 경계하는 자들은 아직 살아있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 11절 : 바울은 이제 종말의 때에 대한 응답을 마치려고 한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바울이 지금까지 가르친 내용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잘 실천하고 있다. 바울은 이 절에서 모든 동사의 시상을 현재 시상으로 사용한다. 그들은 꾸준히 그리고 신실하게 서로를 격려하고 세우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행해 왔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바울은 각 명령 뒤에 ἀλλήλους (각자가), εἷς τὸν ἕνα (각자가) 를 사용한다. 바울의 바람은 온 교회에 대한 바람이기도 하지만, 각자 한 개인들에게 바라는 바람이기도 한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관심도 마찬가지이다. 온 교회의 순종도 중요하지만, 각자 개개인의 순종이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세울 수 있다.

 요약 및 결론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의 질문들을 받는다. 그 세 가지 질문 중에 마지막 질문인 종말의 때에 다한 질문의 답변이 본문의 내용이다. 종말의 때에 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유하여 항상 종말의 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밤과 낮, 어둠과 빛의 대조적인 이미지를 활용하며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마땅한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동시에 피해야할 자세들을 가르친다. 결론적으로 종말의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노의 날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는 날임을 강조하며 이런 말들로 서로를 격려하며 세우라는 교회 공동체 뿐만 아니라 각자 개개인 한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 목회자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최근 한국에는 수 많은 이단과 소위 거짓 선지자들이 종말의 때를 말한다. 본문에서와 같이 우리는 종말의 때에 관한 관심이나 호기심은 접어두어야 한다. 그 때와 시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시는 바이고(행 1:7), 우리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임신한 여자에게 산통이 갑자기 찾아오듯 그때가 오지 않을 수도 없고, 피해갈 수도 없기 때문에 그 날을 위해서 준비해야한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말의 때가 모든 것이 멸망 당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때라 생각하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는 그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은혜를 잊지 않아야 빛의 아들들이 된 삶, 낮의 아들들이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적용 및 교훈
   1. 주님의 날의 시간과 시기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의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 아니였다. 사도에게 복음을 받은 어떤 사람들이라도 궁금해 했을 법한 이야기이다. 특히, 바울의 데살로니가 사역은 다른 사역지에 비해서 매우 짧은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래서 그들은 더욱 주님의 날에 대한 불안감과 소망을 가지고 세상으로부터 주어지는 핍박을 견디며 살아갔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의 질문에 딱 잘라 너희에게 쓰여질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미 가르친 대로 그 날이 밤의 도둑과 같이 임할 것임을 한 번 더 알려준다. 더 나아가 산모를 예시로들어 언제 산고가 찾아올지 모르듯이 언제 주의 날이 찾아 올 것인지 모른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주의 날을 기다리며 두 손 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산모가 아이를 낳으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뜨거운 물도 준비해야하고, 산파도 준비되어야 하고, 가위도 준비되어야 하고, 깨끗한 수건도 준비되어야 한다. 그와 같이 주의 날을 맞이하는 우리 또한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또 한 가지를 더 말한다. 주의 날은 밤에 도둑과 같이 온다고 하였으나 우리는 낮에 속한 자라고 선언한다. 그래서 밤에 도둑이 불시에 엄습함 같이 우리에게는 엄습할 수 없음을 말한다. 밤에는 잘 수도 있고, 술 취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도둑에게 집이 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낮에는 잘 수도 없고, 술 취할 수도 없다. 우리는 도둑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다. 빛의 아들들인 우리들은 주의 날이 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그 때와 시기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이다. (행 1:7) 따라서, 우리는 주의 날이 언제냐, 어느 때냐 하는 문제보다 어떻게 준비하며 어떻게 임하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 2. 우리는 빛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항상 깨어있는 삶이 주의 날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대한 답이다. 바울은 우리가 낮의 아들들, 빛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깨어있고 술 취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믿음과 사랑의 가슴막이 갑옷을 입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사야 57장 17절의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사야 57장의 여호와 하나님은 억압 받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싸우시는 용사의 모습을 하고 계신다. 우리 또한 믿음과 사랑의 가슴막이 갑옷과 소망의 투구를 쓰고 군사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군사는 전쟁 중에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술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싸울 수 있고 싸움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갑옷과 투구는 내 스스로가 구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쓰여지는 것이다.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대로 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로 우리의 사랑 없음과 믿음 없음 그리고 구원의 소망이 없음을 고백해야한다. 그리고 채워주심을 바라고 기도해야한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사랑의 계명과 믿음의 계명, 소망의 계명들을 지키려 애써야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너희들이 행하는 것과 같이 행하라고 말한다. 그들의 삶은 서로를 무시무시한 핍박과 세상의 유혹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고 세우는 삶이었다.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핍박은 없지만, 유혹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보다 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항상 성경 말씀을 외우고 묵상하여 우리 삶의 기준이 되도록 해야 한다.
   3. 주님의 날은 진노와 멸망의 날이 아니라 구원과 소망의 날이다.
     주님의 날이 구원과 소망의 날인 것을 아는 것이 주님의 날이 어떻게 임하느냐에 대한 답이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주님의 날을 근거로 서로를 격려하고 세웠음을 평소에 해왔던 것을 볼 때에 (5:11), 주님의 날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울이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를 구분하며 멸망과 구원의 대비로 설명하는 것을 볼 때에 주님의 날에 대한 명확한 개념은 없었던 것 같다. 주님의 날은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를 구분하여 멸망과 구원, 진노와 구원, 어둠과 빛, 밤과 낮처럼 명확히 각자의 받을 바가 정해져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런 극명한 대비는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에게는 주님의 날이 멸망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임을 강력하게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날을 소망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의 주신 명령을 잘 이행할 수 있다. 우리는 잠들어 그 감격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깨어서 그 날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원이 우리의 선함과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구원 얻도록 정해놓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 구원의 핵심이며 피하지 못할 진노를 대신 막으신 사랑이시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며 항상 우리는 교회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이루는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격려해야하고 세워 주어야한다. 그것을 반복해야한다. 이 명령이 우리에게 구원과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명령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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