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3일 일요일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청중을 가진 기독교 변증학

플라톤의 철학은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기에 유용한 도구였다. 철학은 일정한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영혼 불멸을 믿고 있었으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가지도 못하는 이상향이 있다는 사실은 영원한 천국과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데 정말 잘 어울리는 예시였다. 형이상학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예비하셨고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천국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었고 그들의 유산을 받은 유럽 사람들에게도 잘 전달되었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그리스 철학을 활용하여 자신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 규명하였다.

그리스 철학에 활용하여 그리스-로마 사람들이 복음을 잘 알아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대교회와 초대교회 변증학의 역할이었다.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고대 히브리 민족의 신화와 역사에 불과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온 세상의 창조자가 되시며, 온 인류의 구주가 되시며, 각 개인의 보혜사가 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그리스-로마 배경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앙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의 신앙을 다른 그리스-로마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변증학은 자신의 신앙을 규명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변증학은 그리스-로마의 배경에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각자 그들이 가진 배경에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고 변호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변증학은 공간의 축에 따라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고 변호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축에서도 시대의 조류에 따라 세상의 사상과 맞추어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고 변호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는 것에 한계가 보이는듯 하다. 여전히 플라톤의 철학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서구 세계 위주의 학문과 사상에 기반이 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현대인은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바야흐로 포스트 모던 시대가 도래하였고 각 개인은 각 개인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믿으며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거나 심지어는 거짓으로 여긴다. 변증학은 큰 위기를 맞이 하였다. 각 개인은 기독교 신앙을 그저 어떤 개인이 가지는 신념과 사상으로 치부한다. 그들의 신념과 사상을 존중하고 인정해주지만 그것을 자신의 신앙이나 신념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그들이 가진 사상과 신념이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것과 유사하고 그것을 완성시킨다고 설명한다면, 그들은 자기가 가진 사상과 신념을 고수할 뿐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변증학의 전제는 청중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청중을 둘러싸고 있는 사상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환경으로 형성된 청중의 세계관이다. 변증학은 이러한 사상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환경에서 형성된 청중의 상식과 가치관을 이용하여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고 번역한다. 따라서 변증학을 통해 설명되고 번역된 기독교 신앙은 청중에게 있어서 자신의 상식과 가치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기독교 신앙은 옛부터 하나님의 말씀이라 인정받던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성경이라는 책에서 기초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이름 붙혀진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중에게는 변증학을 통해 설명되고 번역된 기독교 신앙은 자신들의 세계관과 가치관를 강화시키는 역할 밖에 할 수 없다. 진리라고는 없고 사실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청중에게는 성경이라는 옛부터 받들어지는 책에서 말하는 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와 비슷하거나 일치한다고 한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을 강화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변증학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자신의 불신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의도치 않게 감당할 수도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철옹성과 같은 불신 속에서도 기독교 신앙은 없어지지 않았다. 포스트모더니즘 속의 현대인에게는 결국 기독교 신앙도 한 인간이 취사선택 할 수 있는 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기할 만한 점은 기독교 신앙이라는 가치를 선택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한 개인의 선택을 획일적인 가치 기준에서 판단하지도 평가하지도 않는 현대 사회에서 특별한 일이다. 그 누구도 기독교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강요하더라도 개인적인 입장에서 거절하면 그만이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에서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에 대한 선택 기준만은 절대적으로 현대인의 선택에서 작용하지만 기독교 신앙과 같은 신념과 가치관에 관련된 맥락에서는 금전적인 가치는 상대적인 가치가 된다. 그러므로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선택한 개인은 분명히 있고 그런 개인들이 다수라는 사실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기독교 변증학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변증학은 기독교 신앙을 세상의 언어로 번역하여 신앙이 없는 세상에게 믿음을 갖도록 설득하기 보다는 신자들에게 닥치는 모든 상황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발휘하며 지켜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어야 한다. 변증학은 신자 개개인이 각자 삶의 현장에서 부딫치는 비신앙적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상황들과 교회나 신자 사이의 교제 사이에 벌어지는 전혀 이상적이지 않는 상황들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해석하고 대처하고 신앙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으로 기독교 신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에서 자신이 신앙을 가지고 그 신앙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야 함을 이해시킬 수 있는 만족한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신자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 변증학의 제 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번역하는 변증학이 아니라 설명하는 변증학, 해석하는 변증학이 되어야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서는 가치의 우월성으로, 사상의 고매함으로 다른 누군가를 설득할 수 없고 우리 자신도 설득되지 않는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며 취사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견고한 신앙의 바탕 위에서 윤리적 고결함을, 생활의 순결함을 보일 때에는 다르다. 윤리적 고결함과 생활의 순결함 속에는 사람이라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또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증학을 통해 우리 믿는 자가 왜 윤리적 고결함과 생활의 순결함을 가져야 하는지 믿는 자를 위하여 설명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전도는 이루어 질 수 있다.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 가치라고 서로 주장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고 서로의 가치와 생각을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윤리적 고결함과 생활의 순결함이 그들을 감동시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진리로 이끌 수 있다. 변증학의 기능은 믿는 자로 하여금 윤리적 고결함과 생활의 순결함을 드러내도록 또는 그렇게 살아가도록 신자의 상황을 해석하고 설명하며 설득하는 것이다.

설명하고 해석하는 변증학이 중요하지만 번역하는 변증학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믿지 않는 자를 위한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도 플라톤의 철학은 사람들의 사상 저변에 갈려 있으며 서양의 문물이 전파된 어느 곳에서도 그것의 영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류 사조들로 기독교 신앙을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핵심적인 진리와 가치는 번역보다는 있는 그대로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2 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고백한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들의 생각과 방식을 인정해 주듯, 그들도 우리의 생각과 방식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진리 즉, 복음을 아무런 번역없이 외칠 수 있다. 그리고 외쳐야 한다.

우리의 복음은 거부할 수 없다. 우리의 복음은 설명이나 설득이 필요없다. 하지만 우리는 약하다. 우리는 넘어지고 우리는 다치며, 우리는 아픔을 호소한다.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하고 설득해야 하며 격려해야 한다. 그것이 변증학의 제일 기능이 되어야 한다. 모든 가치가 상대적인 이 시대에서 약한 우리가 곁 길로 가지 않도록 우리를 붙잡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복음을 외칠 때에는 담대하게 외쳐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2천년의 교회사 속의 신자들이 고백했던 대로 우리의 신앙을 외쳐야 한다. 설명이 필요할 때에 번역이 필요할 때에 그들에게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결국 복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우리의 순종과 헌신이다. 그것은 윤리적 고결함과 생활의 순결함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설명하며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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