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7일 금요일

성경을 읽는 형식(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누가복음 10장 25절 ~ 28절

25절 :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절 :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제목 : 성경을 읽는 형식


성경을 읽을 때에는 내 생각과 감정에 인상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읽어서는 부족하다. 성경은 그러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우리 인생을 형성 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셨다. 하나님의 계시가 충만하여 우리의 인생을 바꾸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있고 성경을 읽을 만한 언어적 지식이 있을지라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마치 자동차가 있고 자동차 열쇠가 있다고 해서 자동차를 모두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위해서는 주어, 동사 등을 구분하는 언어적 능력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는 기술, 그런 노력의 방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는 기술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지식으로만 다가오지 않도록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내 삶을 변화시키며 말씀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소유가 아니다. 하나님의 소유이다.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시고 우리를 그 말씀 가운데로 이끄신다. 성경은 그저 2,000~3,000년 전에 적힌 글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말 걸어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에는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에게 시험하기 위하여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리고 예수님은 네가 어떻게 읽느냐? 하고 되물으신다. 율법학자는 대답을 잘했다. 예수님이 옳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율법을 잘 요약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대답을 하였다. 율법학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온전하며 그것이 영생으로 이끄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네가 어떻게 읽느냐? 라고 물으셨다. 예수님께서 물으시는 의미는 율법학자가 성경을 읽는 방식에 대한 도전이다. 참여하지 않고 오직 지식으로만 성경을 대하는 태도, 성경을 통해 생활 원칙이나 수칙을 도출하여 잘못된 율법주의자로 만들어내는 그런 태도만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의 태도에 대하여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적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에게 살라, 그런 존재가 되어라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여를 원하지 관람을 원하지 않으신다. 분석을 원하지 않으신다. 삶의 변화를 원하시지 삶의 영감을 주기 위하여 말씀을 주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읽은 대로 살아라! 라는 도전을 주신다.

성경을 읽은 대로 살기 위해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성경은 글로 기록되기 전에 말로 되었던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입으로 시작해서 귀로 전달된다. 그 사이에 다른 감각기관이 작동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눈은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주변의 상황들을 볼 것이다. 코는 주변의 환경과 분위기를 감지할 것이다. 피부는 그 당시의 습도와 온도까지 감지할 것이다. 한 마디 말에는 여러 다양한 상황들과 자극들이 곂쳐서 전달된다. 그렇기 때문에 말의 의미는 한정된다. 글로 표현되면 애매모호한 문장도 말로 전달되는 순간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 모세가 하나님께 명령을 받던 그 음성은 글에서 표현될 때 제한된다. 여러 다양한 의미들로 해석될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이다. 말이 글이 되면, 그 골격만 남게 된다. 독자가 어떻게 살을 붙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와전될 수도 있다. 말은 상황을 담아내지만, 글은 상황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말은 어떤 맥락 가운데서 전해지고 어떤 특정한 의미로 전해졌는지 글은 온전히 그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려는 사람은 글로 적힌 성경을 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다시 쓰인 그 말을 사람들이 주의 깊게 듣도록 해야 한다.

글을 말로 바꾸는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는 거룩한 독서, 렉치오 디비나를 배워보려고 한다. 사실 이름만 거창하지 그렇게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 말씀에 집중하고 기억하고 곱씹으며 응답하고 그렇게 사는 것을 어떤 방법론으로 정리한 것일 뿐이다. 렉치오 디비나는 읽기, 묵상, 기도, 살기 이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요소들은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고리 모양의 나선형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읽기는 그야 말로 성경 말씀을 거기에 있는대로 만 읽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있다는 의미는 거기에 있는 방식대로 읽을 것을 요구한다. 성경은 성경이 말하는 방식대로 읽어야 한다. 성경 말씀을 적힌 그대로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진지하게 읽는다고 하여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단어는 연결성이 있다. 단어와 단어가 연결 될 때에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 한 가지가 바로 비유법이다. 성경에는 비유법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우리가 알아챌 수 없는 은유법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은유는 비유이다. 그래서 “~이다.”와 “~아니다”를 포함한다. 은유된 대상과 은유하는 것 사이에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서로는 절대 같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문장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아들을 보내시고 죽기까지 하셨기 때문에 사랑이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님이 아니다. 사랑으로 하나님을 정의할 수 없다. 그는 사랑만으로 한정지을 수 없는 무한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미워하기도 하시고 질투하시기도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묵상은 기억력을 활용하는 활동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므로 말에 집중하여 말이 전해진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단편에 집중하지 않고 큰 흐름, 전체의 흐름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성경을 조합 가능한 명언 모음집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문맥과 배경이 어떤 성경 구절에서도 적용된다.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배경, 언어적 배경도 중요하겠지만 묵상에서 최소한 갖추어야 할 것은 문맥 파악이다. 전체 성경, 그리고 각 권의 성경의 문맥을 항상 염두해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묵상할 때 주의 해야 할 점은 문맥과 배경 속에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어 묵상하는 말씀에 침투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가 묵상하는 말씀의 결론은 거의 대부분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주제로 놓고 말씀을 반추하고 그 말씀에 참여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이 나에게 하는 말씀임을 깨달을 때에 응답으로 나오는 반응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말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말로 자신을 계시하셨듯이 우리 또한 말로 하나님께 우리를 알려드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들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끌어들인다. 우리의 모든 감정과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며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성품들에 접근해 나갈 수 있기 대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인간적인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 토하여 내고,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성품으로 토하여낸 자리를 채워 달라 요청함으로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끌어들인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문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죽고, 우리는 실패한다. 죄를 짓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살리시고, 항상 선하신 그 뜻을 이루시며, 선을 행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기 위하여 기도한다. 기도는 하나님께선 주신 말에 대한 정당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살기이다. 이는 옛날 말로 관상이라고 하였다. 관상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하나님을 대상화하여 관찰한다는 말이었으나,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성경 묵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성경 묵상은 성경을 읽고 그것 대로 살고 그것 대로 생각하고 그것대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관상은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서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고백한 마리아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 앞에 고백하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다.

마리아의 이야기를 좀 더하자면, 천사가 찾아와 수태고지를 할 때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고백한다. 그 때 성령께서 마리아 안에서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셨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대로 내 삶에 이루어지이다 라는 고백, 기도가 있을 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된다. 전략이나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 입맛이 바뀌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름답다. 아름답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끌릴 수 밖에 없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입맛이 바뀐다. 존재가 바뀐다. 삶이 바뀐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치롭게 여기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한다. 렉치오 디비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 말씀에 깊이 잠기며, 말씀을 말씀대로 읽고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말이 되게 한다. 성경을 고대의 문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 삶을 바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대한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숭상하며 숭앙한다. 우리는 이 방법, 양식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 전략이나 규칙, 기술이 아닌 살아내는 습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의 말씀대로 하옵소서. 라고 고백한 마리아의 고백의 결과처럼 우리 안에 성령으로 그리스도가 잉태될 것이다.

<소모임 진행 예시>
1. 성령께서 오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바친다(2~3 사람 정도 차례대로 짧은 기도로).
2. 한 사람이 성경 본문을 천천히 읽는다. 그 후 5분 정도 침묵한다. 다른 사람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는다(들을 때에는 등장인물, 움직임, 동사에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
3. 마음에 와닿는 단어나 구절을 세 번씩 소리내어 기도하듯 외친다. 외치는 사이에는 잠시 침묵을 지킨다.
4. 다시 한 번 본문을 읽는다. 5분 정도 침묵하고 메세지를 발견하고 나의 삶에 어떻게 받아들얼 것인가 묵상한다.
5. 마음 안에 들려온 말씀에 대해 나눈다.
6. 침묵한다. 나눈 것에 대해서 묵상한다.
7. 각자가 돌아가며 기도를 짧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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