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51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52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나이다
54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55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57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58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59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길을 돌이켰사오며
60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1 악인들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63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라
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 말씀의 시간
세상에는 우리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믿고 따르는 신앙과는 정반대의 가치를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성경이 엄연히 죄라고 지적하는 동성애 문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는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 각자가 자기 성향을 따라서 사는 것인데 무엇이 나쁘냐 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견을 인터넷이나 공개석상에서 개진하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작은 것도 관용하지 못하는 비상식인으로 낙인 찍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를 그대로 말한 뿐인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은 동성애 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조롱을 받게 만듭니다. 비슷한 예로 십일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것들이 하나님의 것이라 믿고 감사하며 우리 수익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나 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는 고사하고 우리의 신앙을 조롱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이해받기 힘든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볼 때에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말입니다.
오늘 읽었던 시편 말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때문에 비웃음과 조롱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비웃음과 조롱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있다고 말할 정도로 신앙을 지키는 일이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공격을 받는 하나님의 말씀을 시편 기자는 왜 붙들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는 이유는 첫번째, 우리가 소망할 수 있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49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때문에 자신이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뒤이어 50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 중에 위로가 된다고 고백하면서 주의 말씀이 자신을 살리셨기 때문에 위로가 된다고 하는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의 삶 중에 죽음에 이를 만한 고난이 있었고 그 고난 가운데서 위로를 얻었는데, 그 위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을 살렸다고 고백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습니다. 51절에서 말씀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 기준대로 살아가는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시편 기자를 심하게 조롱하지만, 시편 기자는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이것이 시편 기자의 고백입니다. 어떤 조롱과 비웃음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나를 살렸고 그 위로가 여전히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을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법을 떠나지 않는 시편 기자에게 56절과 57절에서 고백하듯 자신의 법을 지키는 것을 그의 소유로 삼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을 만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적절히 지킬 만한 환경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을 시편 기자가 소유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시편 기자는 자신의 소유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더욱 기도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으시고 더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는 두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상황이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지 못할 만한 상황이라고 묘사합니다. 61절 말씀과 같이 악인들이 줄을 두루 얽어 매었습니다. 자신 앞에 있는 고통에 가려서 도저히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상황이 자신 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이나 장소, 우리의 상태에 상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55절에서는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밤이라는 말은 문맥 상으로 의미를 살펴보면 앞이 캄캄하여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심한 고난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시간을 가리키는 의미도 함께 사용된다고 보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지만, 밤에도 기억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셔서 언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시편 기자는 마침내 62절에서 밤중에도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아까 언급하였듯이 밤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심한 고난 중이라도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 때문에 감사하고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 때문에 감사한다는 이중적인 의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되는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기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으셨고 우리를 결코 놓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주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