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5장 8절-13절
8절 :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9절 :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10절 :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절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절 :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13절 :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
제목 :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가라
서론 : 이생망?
이생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의 줄임말이죠. 별거 다 줄이네 생각이 들었는데 이생망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생이라고 하길래 참 독특한 표현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번 생이 있으면 저번 생도 있고 다음 생도 있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마치 불교의 전생, 현생, 후생의 개념을 나타내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에 잘해보려는 기대가 담겨있는 말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불교를 진지하게 믿고 있지 않습니다. 전생이니 후생이니 그런 생각을 담고 이런 말을 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정말로 이번 생은 망했다. 어떻게 해도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농담 아닌 농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꿈꾸는 것 어느 것도 이룰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비참한 신세를 한탄하는 말입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에는 희년이라는 제도를 말합니다. 희년은 모든 것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을 하는 기간입니다. 종이 되었던 사람도, 돈이 없어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판 사람도 모두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년이 되면 이생망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게 됩니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일까요? 그래서 기쁠 희 를 사용해서 희년이라고 이름을 붙혔고 기쁜 한 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년 제도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소유하고 계시다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희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법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 자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세워지는 훈련과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도 없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땅에 먼저 살고 있던 가나안 족속과 전쟁을 치루고 그 땅을 차지해야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차지하도록 허락하시고 도우시고 함께 싸워주시지만 당장 내 옆의 친구와 형제 동료들이 전쟁으로 인해 힘들어 하거나 죽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차지한 가나안 땅의 자신의 땅이라 착각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으셨다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의 뜻을 희년 제도에 담아 말씀하여 주십니다.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 보도록 합시다.
본론1 : 안식년 중의 안식년
희년은 칠 년에 한 번씩 안식하는 안식년이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에, 그 다음 해가 희년입니다. 안식년은 칠 년 마다 돌아오는 기간으로 한 해를 안식일과 같이 지내는 해 입니다. 한 해 전체를 365일은 안식일처럼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안식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거룩하게 지킵니다. 그 날 하루를 거룩하게 쉼으로 세상 일들과 오락을 그만 두고 부득이 하게 해야 할 일들과 자비를 베푸는 일을 제외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하루를 온전히 사용하는 것 입니다. 이 일을 365일 동안 하는 것이 안식년 입니다.
희년은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내고 그 다음 해를 가리킵니다.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다는 것은 칠 곱하기 칠, 49년을 가리키고 그 다음 해를 희년이라고 하니 희년과 다음 희년 사이에는 5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6일 만에 완전히 창조하셔서 더 이상 일할 것이 없으셔서 일곱째 날에는 쉬셨습니다. 일곱째 날에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7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그 일을 가리키는 숫자이기도 하고 일곱째 날에 창조 사역을 완전히 마무리 하셨기 때문에 7이라는 숫자는 완전함, 완벽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희년은 일곱째 해가 일곱 번 반복되고 난 뒤에 맞는 첫 해이기 때문에 희년이 안식일 중에 안식일이며 안식년 중에 안식년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희년은 칠 년마다 찾아오는 안식년에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더 특별한 것을 지켜야 했습니다.
본론2 : 해방의 해
희년이 된 해, 7월 10일에는 전국에서 뿔나팔을 불게 됩니다. 이것이 희년의 시작입니다. 그날은 속죄일로 희년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울립니다. 그 나팔 소리가 들리는 이스라엘 땅에서는 자유가 공포됩니다. 자신의 형편으로 종으로 남의 집에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됩니다. 조상의 땅을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했던 비참한 사람들도 팔았던 땅을 다시 찾게 됩니다.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나안 땅을 분배 받았을 그 때 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온 땅을 각 지파와 가족 수대로 나눠주신 그 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희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땅 위에서 살아가는 자이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자기 백성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오는 순간, 이스라엘의 주인은 애굽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종이었지 다른 누구의 종이 아닙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 자신들의 왕을 세우는 일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다른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되거나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뜻을 희년 제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억하길 원하셨습니다.
본론3 : 하나님께서 먹여주시는 삶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년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알 수 있었지만 희년을 실제로 시행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실제적으로 희년이 안식년을 지내고 난 뒤에 있기 때문입니다. 밭을 경작하지 않고 2년이나 지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저장할 수 있는 좋은 기술이 개발되어서 냉장고나 냉동창고 등에 보관할 수 있고, 농업 기술의 발전과 품종개량을 통해서 많은 양의 수확물을 거둘 수 있게 되었지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하던 때에는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장 일 년 농사 지어서 겨우 일년 먹고 다음 해는 다음 해에 나는 것을 먹는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칠 년에 한 번씩 안식년을 지키라 하셨고 오십 년에 한 번씩 희년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2년이나 일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시는 게으르고 제멋대로이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과 희년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먹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갈 가나안 땅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가 불가할 정도의 땅이었습니다. 비가 제 때 내려주어야만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비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책임진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년이 되기 전, 6년 째 되는 해에 풍년을 주셔서 희년까지 버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하게 들에서 자란 것들로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을 주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먹을 것을 친히 챙겨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자신이 먹을 것을 자신이 해결한다고 할찌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고 알려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희년과 안식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키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결론 : 정말로 이루어 졌을까?
우리는 희년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희년이 잘 지켜졌을까? 입니다. 사실 성경 어디에도 희년이 지켜졌다는 것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안식년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희년과 안식년이 이스라엘 역사 상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켜지지도 않을 희년과 안식년의 법을 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었을까요?
희년과 안식년은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여주시며 돌보아주신다는 것을 짧게나마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있을 때에 경험하였던 삶을 죄와 악이 가득한 이 땅 위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는 밭을 갈지 않으면 밭에서 나오는 것들을 먹지 못하도록 저주하셨습니다. 그 뒤로 인간은 땀을 흘리며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희년과 안식년은 옛날 죄도 악도 없던 에덴 동산의 삶, 장차 오실 메시야가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꿈꾸도록 하게 하였습니다. 실제로 현실의 삶에서 희년과 안식년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께서 오셔서 에덴 동산의 삶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희망과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이사야 61장 1절에서 3절까지 이렇게 노래합니다.
1절 :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절 :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절 :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이사야가 노래하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 오늘 레위기 말씀에서 등장하는 희년입니다. 희년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하시고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악한 무리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고 기다리는 그 날 입니다.
찬양 : 희년의 때, 마지막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희망과 소망은 예수님께서 끝내 이루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7절에서 21절은 예수님께서 희년과 안식년을 통해 약속된 회복의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17절 :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절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절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절 :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절 :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주의 은혜의 해를 이루시는 바로 그 분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희년이 속죄일을 알리는 나팔소리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죄부터 속죄해야 합니다. 그 속죄를 예수님께서 이루셨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해방되어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에게 주셨던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더럽고 추악한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 하나님과 사랑하며 교제하는 자리,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크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예수님께서 베푸신 희년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 친구들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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