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9일 화요일

복음에 합당한 삶 (빌립보서 1장 22절-30절 / 20.10.06)

빌립보서 1장 22절-30절

22절 :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절 :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절 :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절 :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절 :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절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절 :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절 :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절 :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제목 : 복음에 합당한 삶


서론 : 본론으로 들어가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이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계획들과 함께 빌립보 교회에 대한 기대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말씀들은 인삿말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의 첫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말씀부터 바울이 진정 빌립보 교회에게 전하고자 하는 편지의 본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에서는 사도 바울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 그에 따른 빌립보 교회에 대한 권면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서 로마 황제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판의 결과는 아무도 모르지만 바울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습니다. 자신의 미래가 이렇게나 불투명한 상황 가운데서도 바울은 처음에 했던 기뻐하라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무엇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기쁘게 만들었고 기뻐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게 했는지 본문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의 고민 (22절-24절)


사도 바울은 육신으로 사는 것이 자신의 일의 열매라고 이야기 합니다. 성경에서 열매라는 단어가 나온다면 식물의 열매를 제외하고는 모두 결과라는 단어로 바꾸어서 생각하면 쉽습니다. 열매를 결과라고 생각하고 다시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살아가는 일이 사도의 직무를 맡은 결과로 살아간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도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존재가 있는 후에야 사역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먼저 사역이 있고 사역에 따라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감옥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살아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황제 앞에 서고 난 뒤의 상황,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으며 황제에게 복음을 전한 이후에는 자신이 살게 될지, 죽게 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황제 앞에서도 복음을 진술해야 할 것이라는 주님의 뜻을 알고 있었기에 황제 앞에 복음을 진술한 뒤, 자신의 사명이 끝이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옥 중에 편지를 보낸 빌립보 교회와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를 볼 때에 아직 자기의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서에서 로마 교회에게 부탁한 서바나 선교도 감당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죽을지, 살지 전혀 모른 채로 그 둘 사이에 껴 있었습니다. 죽는 것도 사도 바울에게 유익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 함께 천국에서 지상에서 누릴 수 없는 완전한 교제를 누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낙원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며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바울의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육신에 거하는 일이 더 빌립보 교회에게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더 좋은 일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교회의 필요를 따라 사역해야 하는 자신의 직무를 알고 육신으로 있는 것을 택하였습니다.

바울의 확신 (25절-26절)


바울이 육신으로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육신으로 있어 교회를 세우고 돕는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자신의 삶을 지속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와 함께 거할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자신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될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를 위해 사는 바울은 낙원에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한 교제를 바라고 원했지만,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그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땅 위에서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위해서 살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를 위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와 함께 있는 이유는 빌립보 교회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 입니다. 이 믿음의 진보와 기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 교회의 자랑이 사도 바울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께서 로마 황제의 재판 가운데 살려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에 자신이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앞서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육신으로 사는 것은 일의 열매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그 일대로 살아갈 것이며 지금 보내는 빌립보서도 바울의 확신 가운데 기록되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빌립보 교회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너희의 할 일 (27절-28절)


빌립보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생활이라는 말은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사는 삶을 뜻합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도시였기 때문에 빌립보에서 태어나는 자는 모두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으로 태어난 자는 시민으로서 감당해야할 의무도 있었지만 권리도 무궁무진했습니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시민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 천국의 시민입니다. 천국 시민으로 사는 삶, 그 생활은 천국 시민으로 누려야 할 권리도 있겠지만 의무도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말하면서 천국 시민으로 누려야 할 것 뿐만 아니라 의무도 잘 수행하며 바람직한 천국 시민으로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가 있던지 떠나 있던지 빌립보 교회가 한 마음으로 서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한 마음으로 서 있다는 말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의 마음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 하나님 한 영으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이야기 합니다. 교회는 사람이 모여 만든 사람의 공동체처럼 보이지만 각 사람에게 임하신 동일한 한 성령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가 된 성령 하나님의 공동체 입니다. 바울은 한 성령 하나님을 품고 서 있는 구체적인 모습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전체가 복음을 믿는 신앙에서 서로가 떠나지 않도록, 낙심하지 않도록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이것을 복음 설교와 치리로 이루어 갑니다. 두번째 모습은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일 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최후 승리를 말합니다. 교회는 지금 괴롭고 힘들며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이루실 승리를 기대하는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굳게 믿음을 지키고 한 마음으로 서있는 그 모습은 대적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되고 교회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주신 목적 (29절-30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빌립보 교회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 은혜는 그리스도를 믿게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시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우리는 은혜가 없이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하여 완전히 일그러진 인간은 하나님을 찾을 수도 느낄 수도 없고 받은 은혜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갈 때 우리에게는 고난이 따릅니다. 악한 마귀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믿는 자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마귀는 신자를 고난 가운데 빠지게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고난 받길 원하십니다. 고난 가운데에서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깊이를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고난을 통해서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가며 더욱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도 바울이 겪은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 일은 싸움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험악한 일 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이 로마까지 오면서 겪었던 일들은 싸움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바울과 그것을 방해하려는 세력들의 힘겨루기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비록 사슬에 매여 있었지만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사슬에 매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사람이 왕이든지 총독이든지 자신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든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총독 앞에서 자신의 매여 있는 처지를 제외하고는 당신도 나와 같이 복음을 믿는 생활을 하였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학문으로 인하여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에게는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싸움과 고난은 복음을 전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에 당연히 겪게 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이런 싸움과 같은 힘든 상황을 보고 들을 때에 각오를 다지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 : 복음에 합당한 삶


사도 바울은 자신이 앞으로 처하게 될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자신처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빌립보 교회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과는 반대로 복음을 전하고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할 때에 고난을 겪게 되고 대적이 나타나 우리를 방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런 일들을 싸움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은 육신으로 있으면서 함께 그것들을 감당하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로마 시민으로만 살아갈 때는 겪지 못할 일들이 천국 시민으로 살아갈 때에 일어납니다. 로마 시민으로 살 때에는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이 천국 시민으로 살 때에는 문제가 됩니다. 그런 일이 바울에게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접하고 천국 시민으로 살아갔고 지금 사슬에 매여 황제의 심판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그들의 상황도 바울과 유사했습니다.

로마 시민이 천국 시민으로 살 때에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할 때에 대적하는 자들이 나타나 로마 시민 때 누리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싸움을 해야 할 때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일을 택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을 택하며 형제, 교회를 위한 일을 택하였습니다. 천국 시민으로 사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 성령이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므로, 바울이 어려운 선택을 했을 때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고난을 이겨낼 만한 힘을 주신 분이 우리 가운데 계시므로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증거이고 대적들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런 복을 알고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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