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6일 화요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빌립보서 2장 1절-11절 / 20.10.13)


빌립보서 2장 1절-11절

1절 :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절 :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절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절 :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절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절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절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절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절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절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제목 :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서론 : 한 마음을 품으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 것을 당부하면서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은 모두 구원 받은 빌립보 교회 자신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되고 빌립보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이 정말 진리이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대로 이 세상이 운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형벌이 내려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2장 부터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모습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합니다. 그 첫번째로 복음에 가장 합당하게 사셨던 분,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것만 같지만 자기를 낮추시고 낮추셔서 우리와 같이 되셨고 우리 가운데 성령을 보내셔서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말씀을 찬찬히 살피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합시다.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 (1절-4절)


빌립보 교회는 여러 면에서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복음 전도자들을 돌보는 일에 솔선수범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조그마한 분쟁과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는 사도 바울은 그 다툼과 갈등을 극복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빌립보 교회에서 모든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은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와 같이 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 베푸시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의 교제나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권면과 사랑의 위로와 성령의 교제와 긍휼과 자비가 없었던 교회가 아니라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갈등과 다툼이 있어서 마음을 같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마음라는 말은 감정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같은 생각을 품으라는 것을 뜻합니다. 생각하고 추구하는 목표가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자가 권면과 사랑의 위로와 성령의 교제와 긍휼과 자비를 베푼다고 해도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목표하는 바가 다르다면 결국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도 작은 마찰과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가 주신 말씀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하나로 묶여야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한 마음, 한 뜻이 된 성도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기심과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일은 다툼을 일으킬 뿐입니다. 성도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은 행동에 있어서 인사를 잘하고 말을 부드럽게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낮은 곳으로 향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자세 입니다. 이 일은 어느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사람이 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서로서로에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여긴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남이 나보다 못한 것으로 보이거나 실제로 못하더라도 상대방을 나보다 낫게 간주하라는 말입니다. 객관적인 평가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낫다고 여겨주며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 일을 잘 돌보아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일을 잘 돌보고 그 다음에 다른 약한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은 사도 바울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 기쁨이 충만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바울이 받는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5절-8절)


바울은 이제 겸손한 마음의 모범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지셨던 겸손함을 우리가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과 같은 것은 가질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그와 같은 마음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배우며 그와 같은 마음을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점검하기 위한 표준, 기준이 되어 우리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목표해야 할 것을 찾게 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셨습니다. 본체라는 라는 말은 신분, 지위, 존재를 뜻합니다. 사람과 구분되는 신이신 하나님으로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과 동등된 것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된 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포기하시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이며 자기 비하 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세와 영광이 있으셨지만, 오히려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종의 형체라는 말은 앞서 나왔던 하나님의 본체와 대비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과 구분되는 신이셨지만, 사람이 되셨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저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기 위한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군가에게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를 섬기기 위하여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섬김에는 멸시와 고난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지만 완전히 사람은 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죄를 짓고 부패한 본성으로 살아가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죄가 없고 거룩한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전히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편하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인내하시고 받아들이셨다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의 낮추심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자기를 낮추시고 순종하신 최고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높히심 (9절-11절)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 그 겸손한 마음을 우리가 꼭 따라야 할 이유는 겸손하신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낮추시고 순종하신 것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모든 이름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존재, 인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름 안에는 그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 권세, 명예 등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름보다 더 크고 높은 이름으로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이유는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이나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두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 꿇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서 하늘에 있는 자, 땅에 있는 자, 땅 아래에 있는 자라는 표현은 어떤 특정한 존재들을 특정해서 가리키기 보다는 온 세상에 있는 존재,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를 가리킵니다.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는 예수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예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이름 앞에 굴복하는 의미로 무릎을 꿇는 것을 나타냅니다. 참된 경배는 아니지만 모든 피조물들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신 예수님 앞에 굴복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앞에 굴복한 자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됩니다. 주라는 표현은 주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까지 주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께 붙혀진 칭호였고 특히 로마인들에게 주라는 호칭은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칭호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인 예수라는 사람이 그리스도이시며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라는 의미로 주라는 칭호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로마인들에게는 황제가 아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인인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은 반역죄에 해당하는 위험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시므로 주가 되셨고 모든 입이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행위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일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 겸손과 순종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은 어떤 감정이라기 보다는 어떤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비하하여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따르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온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따라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순종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 그를 섬기는 태도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해 예수님의 겸손함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생각이 예수님의 겸손함을 닮으려는 생각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여러모로 모범이 될 만한 교회였고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작은 갈등과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썩 괜찮아 보인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의 절대 기준이신 예수님을 향해 생각의 초점을 맞추고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겸손함, 우리의 부족한 순종이 발견하고 우리 스스로를 비워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가, 이런 생각이 우리에게 예수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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