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일의 의미
서론 : 고독한 항해
각 대학에서 정한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우리 졸업예비자 운동원들을 앞에 서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이제 여러분 앞에는 취업이라는 관문이 남아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여러분 나름 노력을 해왔고 그것에 결실을 보고 있는 운동원도 있을 것이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운동원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일이라는 것이 어떤 경험 쌓거나 이나 여유 자금 마련을 위한 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일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가수 김동률은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기가 가수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것들을 많이 노래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근에 나왔던 노래라는 노래와 멜로디, 동행, 콘서트 같은 노래들이 가수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독한 항해라는 노래를 통해서 가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음악이라는 일을 하는 김동률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오늘 강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고독한 항해라는 노래는 김동률이 전람회에서 독립하고 난 뒤 1998년 맨 처음 세상에 내놓은 1집의 수록곡입니다. 2009년에는 라이브 앨범에 전면적으로 편곡하여 다시 수록하였습니다. 그리고 2020년 오래된 노래라는 제목의 라이브 앨범에도 다시 수록하였습니다. 근 10년 주기로 지속적으로 내놓는 노래인 것을 보면 고독한 항해라는 노래가 굉장히 김동률이라는 가수의 인생에서 특별한 노래이지 않나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노래의 분위기는 매우 쓸쓸하고 고독합니다. 가수라는 직업이 성공한 몇몇 만 살아남는 직업이라 함께 출발했던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가고 음악을 시작했던 풋풋했던 마음도 이제는 너무 멀어져서 기억나지 않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이 불안정한 수입에 매일 매일이 힘들고 어려운 삶 입니다.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부질 없는 꿈을 쫓고 헛된 미련을 쫓는다고 이야기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지켜주던 별을 의지하며 그 언젠가는 닿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불타는 태양과 거친 바람에 버거워도 험악한 바다조차도 노래로 바꾸어 노래하며 항해를,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이 고독한 항해의 내용입니다.
김동률이라는 가수는 꽤나 성공한 대중음악 가수로 자기 생각과 감정을 노래로 잘 표현해 내며 대세보다는 자기 음악 세계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이런 먹고 사는 문제와 자기 이상과의 갈등이 있다고 하는 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다는 점, 결국 자신의 최종 목표에 다다르는 것에 대한 불확정성을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한다는 점을 보았을 때 누구도 자기 직업에 온전히 자기 이상을 실현하거나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의지하며 일을 해야 할까요? 당연히 답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살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자기 실현이고 행복이 됩니다. 함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본론 1 : 문화 명령 관점에서 본 일
우리가 처음 살펴볼 말씀은 창세기 1장 28절 말씀입니다. 함께 말씀을 읽어보도록 합시다.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흔히 문화 명령으로 알려진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시고 땅을 정복하며 피조물들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되 모든 만물보다 귀하게 지으시고 모든 만물 위에 있도록 하셔서 모든 만물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되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지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모든 만물보다 귀하고 모든 만물 위에서 만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물을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지으신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세상 모든 만물 위에 있으며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사람에게 문화 명령이라는 말씀을 주시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사람으로 하여금 일하게 만듭니다. 사람이 명령을 지키는 것을 사람에게 일이 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명령은 세상의 법칙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밤이 오고 낮이 되는 것, 밤이 되면 동물들이 자기 굴에서 나와 활동하는 것, 낮이 되면 다시 자기 굴에 들어가서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낮이 되면 나와서 일하고 저녁까지 수고합니다. 시편 104편 19절에서 23절에서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의 질서라는 것을 노래 합니다.
19절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때를 알았도다
20절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
21절 젊은 사자들은 그들의 먹이를 쫓아 부르짖으며 그들의 먹이를 하나님께 구하다가
22절 해가 돋으면 물러가서 그들의 굴 속에 눕고23절 사람은 나와서 일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대로 달이 시간에 따라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보름달에서 그믐달로 위상을 변화듯이 인간이 일하고 수고하는 것도 자연 법칙의 일부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 명령대로 일을 하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고귀한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하여 자연 법칙과 같이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에 섭리하신 결과라는 것을 앞서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맡겨진 일,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하고 정복하며 다스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스림을 모든 피조 세계에 전달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스림이라는 것은 인간이 마음대로 피조세계를 지배하고 정복하여 자연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스림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하게 하는 다스림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시고 지으신 것들이 하늘에 바다에 땅에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오셔서 섬김과 고난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우리 눈에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따라 섬김과 고난으로 피조세계가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하도록 다스려야 합니다. 지배와 다스림은 생육과 번성과 충만의 결과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명령을 개인에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돕는 베필을 주시고 그들이 이룬 가정에게 이 일을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문화 명령은 각자의 주어진 은사에 따라 분담하여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다양해서 그 다양한 은사들은 다양한 직업을 낳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고 지배하며 정복하는 문화 명령의 모호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직업 안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스림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우리의 주어진 은사로 능히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권능을 가진 말씀으로 이 명령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 이 명령을 수행할 능력과 마음이 창조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은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람 가운데 명령으로 주어져 그 명령을 수행할 마땅한 능력과 힘이 되어주지만,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일할 밭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이라는것이 하나님의 저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에게 명령되었고 순종해야 할 것이었는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힘든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은 결코 아담과 하와 이후에 주어진 저주가 아닙니다. 범죄 이전에도 일은 있었습니다. 범죄 이전에는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으로 일을 감당할 수 있었지만 범죄 이후에는 일이라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워진 것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은 철회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는 고난과 고통이 뒤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일은 저주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죄의 결과로 인하여 우리가 수행해야 할 일에 대하여 방해를 받게 되었을 뿐입니다.
본론 2 : 대위임령 관점에서 본 일
두번째로 살펴볼 말씀은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20절 말씀입니다. 함께 말씀을 읽어보도록 합시다.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흔히 지상대명령으로 알려진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 명령을 선교적 명령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가서 제자를 삼으라며 다른 사람들을 가서 전도하고 세례를 주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하고 제자를 삼는 일이 예수님의 명령의 전부라고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해는 이 말씀에 대한 충분한 이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가서 제사를 삼아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명령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기 전에 이 말씀을 하시던 예수님의 상태를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영광스런 부활체를 입으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기에 합당한 영광을 입으신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이름을 받기에 합당하신 영광의 상태에 이르셨습니다. 온 세상과 온 만물의 주가 되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갈릴리로 도망치듯 가버린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20절 말씀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맨 처음 가라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가라 라는 명령이 온 세상과 온 만물의 주가 되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올 때에 이 명령은 온 세상과 온 만물을 향한 명령, 보편적인 사명이 됩니다. 가라 라는 명령 속에는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뜻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피조세계 보편을 향한 예수님의 권위에 알맞은 피조세계 보편을 향한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온 세상과 온 만물의 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명령하셨을 때에 제자들은 이어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제자들은 제자를 삼는데 있어서 구체적으로 세례를 주고 가르쳐야 했습니다. 세례를 준다는 것은 이 사람이 더 이상 다른 누구의 소유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에 속한 자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교리와 윤리가 하나되는 가르침, 배운 것과 행동하는 것이 동일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 삼는다는 의미는 세례를 주는 것, 가르치는 것 이 두 가지 모두를 이루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든 것을 다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든 것을 다 수행하는 사람이 제자라고 했을 때, 제자는 종교적인 혹은 신앙적인 문제에 있어서만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든 것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처음 명령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상태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온 세상과 온 만물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온 세상과 온 만물의 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단지 우리의 신앙적인 부분, 종교적인 부분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길 원하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믿음의 문제,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과 일상 생활 가운데 지녀야 할 마음의 문제까지 인간이 경험하고 맞닥들이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친히 교훈하시고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신앙적인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전 생애 나아가 온 세상과 온 만물과 관계된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제자가 되길, 제자를 삼길 원하셨습니다.
온 세상과 온 만물의 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제자는 정상적인 사람,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존재하였던 완전한 사람, 아까 문화 명령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문화 명령을 수행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제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을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대로 받아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권위가 아버지와 동일하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명령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됩니다. 이 명령은 한 제자 각자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문화 명령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에 맡겨졌는데 이번에는 제자 공동체 입니다. 이 제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직분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였습니다. 열 두 제자는 각각의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사도들로부터 제자 삼은 바된 사람들도 각자에게 주어진 직업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통해서 세상에서 하는 일은 죄에 대한 결과로 인해 주어진 저주도 아니고 생계 유지를 위한 밥벌이 수단도 아닙니다. 오직 온 세상과 온 만물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각 사람의 주어진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부르신 거룩한 소명이 됩니다.
본론 3 : 하나님 영광(나라) 관점에서 본 일
세번째로 살펴볼 말씀은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 20절 말씀입니다. 함께 말씀을 읽어보도록 합시다.
19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20절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문화 명령과 지상대명령을 통해 우리가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결코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문화 명령을 주실 때에는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스림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대명령을 주실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명령이 우리를 어디로 향해 이끄시는 지를 배울 차례 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 20절은 구원 받은 자의 몸이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인 것을 이야기 하면서 구원 받은 자, 성도의 몸은 자기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어 하나님의 것임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것이 된 성도는 이제 다른 무엇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몸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나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라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순종할 만한 우리가 할 수 있을 만한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시도하기 전에 어떤 일의 결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6장 20절 말씀은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고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통하여 죄와 사망의 포로가 되어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의 목숨이라는 값을 치르고 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값을 치르고 사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이 우리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만한 자로 세웁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가운데 성령을 모시며 성령의 전으로 세워집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으로 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몸을 통해 나타납니다.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며 우리 몸에 임하신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합한 자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셔서 그 뜻대로 일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명령 받은 일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몸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주권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곳에 임하셨다는 사실을 그리고 장차 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삶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몸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으로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문화 명령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을 수행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기도와 찬양, 성경 읽기와 묵상 같은 거룩한 경건 생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겉으로는 생계를 위해서 하는 모든 일, 우리의 은사를 따라 선택한 모든 직업들과 직분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에게 선한 소워을 품게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집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를 주장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로 살도록 도우십니다.
결론 :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일
우리는 이 때까지 세 군데 말씀을 보면서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을 통해서 받으시고 요구하시며 주시고 베푸시는 은혜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에 우리를 초대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스림을 전달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부르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우리를 값으로 사서 전혀 새로운 그리스도와 합한 존재로 세우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일은 그저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서, 나의 세속적인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며, 피조 세계 전체를 돌볼 수 있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대로의 모습 그리고 더 나아가 참된 성도의 모습으로 완성되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특별히 불러주시고 우리를 특별히 사용해 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은 저주가 아닙니다. 우리 밭에 나는 가시와 엉겅퀴는 우리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있다고 그 밭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밭을 갈고 얻을 결실이 더 아름답기 때문에 농부는 밭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또한 취업을 앞두고 있는 운동원 여러분. 각자의 부르심을 따라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거기에는 분명 가시와 엉겅퀴 같은 것들이 자라날지도 모릅니다. 고독한 항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삼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명령을 따라 일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우신 주님께서는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영광 받으신 주님께서는 영광으로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평생에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와 부르심을 비관하지 말고 성실히 그리고 정직하게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내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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