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9일 금요일

나의 힘이신 여호와 / 시편 18편 1 - 10절

시편 18편 1 - 10절

1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7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들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8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9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10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


구원


우리가 받은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일반성도 뿐만 아니라 성경을 기록한 사도와 선지자에게도 문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위해 로마서를 기록했고, 구약의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애굽에서의 구원과 바벨론에서 돌이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깁니다. 구원의 은혜를 가르치고 일깨워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이 은혜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시편 18편은 구원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시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여러 방법과 방식으로 우리에게 구원이 얼마나 기쁘고 소중하며 은혜로운 것인지 알려주십니다. 함께 시편 18편을 묵상하면서 구원의 기쁨이 얼마나 큰 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의 구원


시편 18편은 다윗이 모든 대적에게서, 특히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로 벗어나 평안을 얻은 후에 지은 노래입니다. 다윗이 노래하는 구원은 어떤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정말로 피부에 와닿게 직접 경험한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정말로 힘이 되어주셔서 다윗이 처한 모든 두렵고 힘든 상황들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능력과 역사를 여러가지 사물에 빗대어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반석이셨습니다. 반석은 건물을 지을 만한 크고 평평한 넓은 바위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반석 자체가 큰 돌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요새이십니다. 요새는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건축물입니다. 그래서 환란이 찾아올 때 피할 곳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할 곳으로 그치지 않고 건지시는 분이 되십니다. 다윗은 반석, 요새, 건지시는 분이라는 세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는 환란에서 견디는 자, 환란을 피하는 자, 환란 속에서 구해져 그 환란을 겪지 않는 자라는 것을 점층적인 비유를 통해 노래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것이 동어반복처럼 보아지만, 다윗의 삶을 걸고 경험한 하나님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알기만 했던 관념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피부로 느끼며, 정말로 환란 가운데서 구원 받은 경험 때문에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다시 하나님을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라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다윗이 피할 바위가 되어 주셨고 칼과 창과 화살을 막는 방패가 되어 주셨고, 구원을 이루실 능력의 뿔이 되어 주셨고, 산성이 되셔서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기 까지 다윗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죽음에 이를 뻔한 고난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떤 고난에서 자신을 구하셨는지 묘사합니다. 사망의 줄이 자신을 얽매고 불의의 창수가 다윗을 두렵게 하였습니다. 줄로 사람을 묶는 행위는 그에게 어떤 자유도 허락하지 않기 위한 행위입니다. 거기다가 물이 넘쳐 흘러 다윗을 덮을 정도였습니다. 다윗은 그 넘치는 물을 불의라고 비유합니다. 불의는 불합리한 이유라고 풀어 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다윗은 자신을 그렇게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며, 그 위기를 줄에 묶인 것처럼 꼼짝없이 당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스올의 줄이 다윗을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다윗을 가두려고 했습니다. 스올은 사람이 죽으면 가는 지옥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옥으로 이끄는 줄이 나와서 다윗을 이끌어가는 것을 묘사합니다. 사망의 올무는 사망이라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옮아매는 덫입니다. 다윗이 겪었던 고난과 환란은 어떤 방향으로 저항하더라도 죽음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빠져나갈 수 없는 올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찬송 받으신 바와 같이 다윗을 흔들리지 않도록 붙드시고 피할 수 있도록 지키셨으며, 그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신 방법


다윗은 자기에게 닥친 고난과 환란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지금이야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 찬송할 수 있었지만, 고통 중에 있는 동안에는 결코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와 아름다운 노랫말로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처절한 기도만이 있었을 뿐일 것입니다. 어떤 형식도 관례도 갖추지 못한 비명과 같은 기도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를 그 성전에서 들어주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다윗 시대에는 성전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상상하며 성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기에 어떤 것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다윗의 비명과도 같은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이 때 산이 흔들리며 땅이 진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입니다. 코에서는 불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만큼이나 진노하신 이유는 다윗이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특별한 이유는 그가 왕으로 선택받은 자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당사자, 언약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만민과 족속 중에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을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약속한 복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백성 중의 일원이었으며 언약을 벗어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자기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겠다는 그 약속을 온전히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하기 위하여 하늘을 밀어 제끼고 직접 강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영광의 구름이 그 주변을 가득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발 아래는 빽빽한 구름으로 인하여 어두컴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룹을 타고 다니십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곁을 지키는 근위병으로 사람이라면 그를 보기만 하는 것으로 두려워 떨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강력한 존재를 부리시는 존재이시며 그 능력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다윗을 구하러 오신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이 묘사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하러 내려오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윗이 등장하는 사무엘상하와 열왕기, 역대기에는 그런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직접 도우신 정도의 구원을 경험하였습니다.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죽이려 덤벼드는 대적들의 손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다윗과 함께하셨습니다.


구원은 정말로 있다!


지금까지 구원 얻은 다윗의 놀라운 찬송을 함께 묵상해보았습니다. 다윗에게 구원은 죽음으로 밖에 결론 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을 수 밖에 없는 불합리함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마치 강림하셔서 그 크신 능력으로 모든 고통과 고난의 원인들을 없애 버리신 일이었습니다. 극적이며 감동적이지만 결코 내 삶에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경험했던 구원,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하신 구원은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사무엘하 22장에만 기록하시지 않고 시편 18편에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아름다운 창조세계를 살아갈 때에 함께 부를 노래들을 모아둔 성경입니다. 다윗의 특별한 경험을 노래했던 사무엘하의 맥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보며 노래할 수 있는 시편의 문맥에도 이 노래를 두셨습니다. 다윗에게 베푸셨던 그 역사가, 그 구원의 일들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직접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노래한 것처럼 우리 또한 다윗에게 베푸신 구원 사역을 직접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윗이 노래한 노래로 함께 찬송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노래가 우리 모두의 찬송이 될 수 있게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증명하셨습니다. 죽음으로 밖에 결론 날 수 없는 고통과 고난 가득한 삶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늘을 제치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다시 오심은 힘센 그룹도 이룰 수 없는 완전한 구원입니다. 우리는 이런 구원을 이미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찬송을 다윗의 기쁨과 환희보다 더 크게 누리며 찬송할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의 기쁨과 은혜를 함께 찬송하며 누리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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