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교회 : 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는 에베소라는 도시에 위치해 있습니다. 에베소는 아시아 속주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에베소에는 터키 서부 해안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은 항구 기능을 소실하였지만, 케이스터 강이 바다까지 이어져 있어서 항구도시로 유명하였습니다. 에베소는 옛날 로마 제국과 중국 한 제국 간의 무역로인 실크로드의 종착지였습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디옥에 이은 로마 제국 내의 큰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로마 시대 때에 에베소에 살았던 인구는 이십 만명 에서 이십 오만명 정도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에베소는 기원전 10세기 경 고대 아테네에 의해서 건설된 헬라 도시였습니다. 기원전 560년 경에는 리디아의 왕 크로이수스가 에베소에 아르테미스를 위한 신전을 지어 봉헌했습니다. 이 신전을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큰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334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어 에게 해,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있는 바다에서 중요한 항구 도시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후 버가모 왕국에 소속되어 있다가 버가모 왕 앗탈루스 3세가 로마 제국에 자신의 왕국을 바칠 때에 에베소는 로마 제국의 도시가 됩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에베소는 아시아 속주의 수도가 되었고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소아시아 서부 지역에서 가장 번영하는 상업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피온산 기슭에는 2만 5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반원형의 연극장이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아르테미스 은 신상을 만드는 데메드리오가 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켈수스 도서관은 당시 1만 6천 개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보관할 수 있는 큰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이 규모는 당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버가모 도서관에 뒤를 이은 규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버가모 도서관은 기록으로 알 수 밖에 없지만 켈수스 도서관은 일부가 남아있어서 중요한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베소에는 최신식 시설의 로마식 목욕탕과 대리석 도로, 가로등까지 찬란했던 지중해 연안 항구 도시의 면모를 잘 드러내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유독 로마 시민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로마 시민이라는 말은 로마 제국의 일반적인 주민과는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이야기 합니다. 로마 시민은 채찍으로 때리는 형벌을 면제 받았고 드러나는 죄목없이는 체포할 수 없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또한 억울한 일이 있으면 제국의 최고 재판관인 황제에게 직접 상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 법적인 특권이 보장되었지만 가장 최고의 특권은 세금을 면제 받는 권한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은 자신이 누리는 특권만큼 황제와 로마 제국에 변하지 않는 충성심을 표현해야 했습니다. 로마 시민 비율이 높았던 에베소에는 많은 만큼 황제 숭배를 위한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마식 건축물인 도미티아누스 황제 신전이 에베소에 세워져 있었고 그 외의 황제들의 신전들이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 뿐만 아니라 로마 시민이 아닌 에베소 주민들은 로마 제국의 총독의 지배를 받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회, 자문 위원회, 상관, 관원 등이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이 아닌 에베소 주민들은 민회를 통해 결정된 사항들을 총독에게 가서 건의할 수 있었고 총독에게 가서 재판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들의 자치기구인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주민들은 자치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총독 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에게 잘 보여야 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도 그 때문에 지어졌습니다. 에베소에는 일상적으로 황제를 숭배하는 의식이 있었고 일을 하거나 상거래를 할 때에도 황제 숭배 의식이 드려져야 했었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 인들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감수해야할 손해는 경제적 손해로 그치지 않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는 심한 핍박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로마 제국 시대에도 아르테미스 숭배는 계속 되었습니다. 에베소에 지어진 아르테미스 신전은 그 규모와 아름다움 때문에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에베소 주민들은 자신 스스로를 아르테미스 신전의 관리자로 여길 정도로 아르테미스 신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으며, 신전 안에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여겨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에베소의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본토에서 섬겼던 제우스의 딸이자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보다는 키벨레 여신과 결합되어서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특히, 3월과 4월에는 아르테미스 축제가 열렸는데 많은 순례자들이 에베소에 몰려들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아르테미스 은 조각품을 많이 사갔고 그것은 에베소에 큰 이익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아르테미스 뿐만 아니라 디오니소스도 섬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포도주를 만든 신으로 유명합니다. 디오니소스를 예배하는 의식에는 와인이나 대마초를 흡입하여 일종의 광란 상태에 빠진 채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행위가 포함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를 잠시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사역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에베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때 고린도에서 함께 사역하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에베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 아볼로가 그 때 당시 에베소에 있었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전도를 받아서 고린도 교회를 섬기러 갔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본격적으로 에베소에서 사역을 시작한 것은 3차 전도여행 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비시디아와 밤빌리아 교회를 돌아보고 갈라디아 교회를 돌아본 후 2차 전도여행 때 성령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셔서 들어오지 못했던 아시아 속주에 들어와 수도인 에베소를 중심으로 아시아 속주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 간 사역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에베소에 있는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전하는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마음이 굳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비방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당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못했고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서 날마다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는 아시아 속주의 수도였고 수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도 헬라인도 모두 복음을 들었으며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능력을 베푸셨는데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낫고 악귀도 떠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에베소에서 돌아다니며 마술을 보여주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몇 사람이 사도 바울이 하는 것처럼 따라하다가 악귀에게 봉변을 당하던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 하나님이신 줄을 믿게 되었고 마술을 하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마술이 쓸모 없음을 알고 마술하는 방법이 담긴 책들을 모아 불에 태워버렸습니다. 그 책의 양은 돈으로 환산했을 때, 은 오만 드라크마 였다고 합니다. 은 한 드라크마가 일꾼의 하루 품삯인데 8만원으로 잡고 환산하면 40억 원에 달하는 책들을 그날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에베소에 이렇게 주의 말씀이 힘을 있고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습니다.
복음이 들어간 에베소는 잠잠하지 않고 더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에베소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유명했다는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에베소에서는 아르테미스 신상을 조각하여 판매하는 은 세공업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에베소에 복음이 전해지고 점차 사람들이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기는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되니 아르테미스 신상을 사는 사람들이 엄청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아르테미스 신상을 조각하여 판매하는 은 세공업자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에베소의 은 세공업자 조합원들을 모아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우리 사업을 위협한다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데메드리오는 아르테미스 신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에베소 주민들을 선동하여서 사도 바울의 사역이 아르테미스 신전이 무시 당하게 만드는 일이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아르테미스를 위하는 믿음도 약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에베소의 은 세공업자 조합원들은 분노하여 시위를 벌였고 피온산 기슭에 있는 연극장에 모여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서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시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곳에 들어가 사람들을 말려보려고 했지만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막아섰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소동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조금 진정 되어갈 쯤 에베소의 서기관이 나타나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아르테미스 신전에 대해 직접적인 해를 끼친 것이 없고 신고도 아니한 불법 집회를 총독에게 보고할 것이 없다는 말에 그 모임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 세공업자들의 소동으로 에베소를 떠날 일정을 당겨서 떠나게 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다시 성경에 등장하는 곳은 에베소서 입니다. 에베소서는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이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를 보낼 때에 함께 보낸 에베소 교회를 위한 편지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단이 들어와 어렵던 골로새 교회와 오네시모와 얽힌 개인적인 사정을 전하던 빌레몬서와는 달리 특별한 목적 없이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내용에서도 에베소 교회의 특별한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황제숭배 의무에 대한 태도, 아르테미스나 디오니소스와 같은 그리스 신들을 섬기는 일 등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생업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도전 받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구원 받은 사실과 은혜를 다시금 깨닫게 하고, 구원 받은 백성 받게 살도록 권고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분명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 답게, 새 사람 답게 살아가길 편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에베소서가 에베소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루살렘에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로마인과 유대인 사이의 종교적 분쟁이 큰 전쟁으로 변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로마 군대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되었고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 요한은 에베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왔을 때에 사도 바울은 두 번째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지내면서 아시아 속주의 교회들을 잘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나서 에베소 교회 뿐만 아니라 아시아 속주에 속한 교회들을 미혹하였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적그리스도라고 부른 사람은 케린투스라는 사람입니다. 케린투스는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을 주장했습니다. 영지주의는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가지고 영시고 선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가 평범한 방법으로 낳은 아들이었고 세레 받은 후에 그리스도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그 몸에 강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예수에게서 그리스도가 떠나갔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은 고난 받지 않고 완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과 육의 이분법적인 이해는 신앙과 생활을 분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과 같이 살지 않는 이상한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오직 지식만이 중요하고 영적인 상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런 케린투스를 대항하여 요한복음과 요한 일서를 기록하여 아시아 속주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읽히도록 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요한복음을 통해 나타내고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요한 일서를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도 요한은 뒤이어 기록한 요한 이서와 삼서에서도 형제를 사랑할 것을 말합니다.
세월이 흘러서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즉위하고 난 뒤, 로마 제국 내에 기독교 박해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미티나누스 황제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신으로 섬길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황제에게 잘 보여야 했던 아시아 속주, 특히 에베소에서는 황제숭배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황제를 숭배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다니는 기독교인들은 성가신 장애물이었습니다. 에베소에 있던 사도 요한을 밧모섬으로 유배를 보내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로마 제국에 의해서 핍박 받는 교회들을 위해 장차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게 하고 지금 겪는 환란과 고통 속에서 위로를 얻도록 하기 위하여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속에서 1세기 말의 에베소 교회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잘 전수하고 순종하여서 교회에 들어오는 적그리스도들을 잘 차단하였습니다. 이단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좋았으나 교회에 남아있는 성도들 간의 불신과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니골라 당이라는 새로운 이단 세력이 생겼기 때문에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습니다. 새로 전도되어 들어오는 사람에게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고 먼저 의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그토록 강조했던 형제 사랑이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처음 사랑을 어디서 잊어버렸는지 생각하고 다시 돌이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요한의 말을 듣고 돌아왔습니다. 사도 요한은 남은 여생을 에베소에서 보냈고 에베소에서 묻혔습니다. 사도 요한을 뒤이어 사도 바울의 제자인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의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디모데 다음에는 골로새 교회의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에베소의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 뒤로도 중요한 공교회 회의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네스토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회의가 에베소에서 열렸습니다. 현재 에베소 교회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리스-터키 전쟁의 결과로 시행된 1923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이후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이단의 가르침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진리를 지켜내었고, 형제를 사랑하였습니다. 에베소에는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과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방신과 황제에게 경배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행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행하지 않았습니다. 당장의 불이익과 핍박과 고난과 환란이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복음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2장 7절)
에베소의 불신자들은 디오니소스가 포도나무의 열매로 만든 술을 먹으며 또는 대마초를 피우며 환각 상태에 빠져 인위적인 쾌락을 즐겼습니다. 반면에,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세상 유혹과 핍박과 박해를 이기는 그 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그저 우리에게 던져진 약속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풍성함 안에서,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베풀어지는 교회 안에서 거뜬히 이루어지고도 남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서 1장 21절-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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