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2일 월요일

요나의 기도 (요나 1장 17절-2장 9절 / 21.04.13)

요나 1장 17절-2장 9절

17절 :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1절 : 요나가 물고기 뱃 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절 :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절 :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절 :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절 :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절 :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절 :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절 :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절 :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제목 : 요나의 기도


서론 : 문맥과 배경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순종보다 죽음을 택하였던 요나는 폭풍 속에서 자신의 뜻을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선지자 다운 행동을 취하였습니다. 요나는 배에 함께 탔던 선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했고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요나의 선지자 노릇으로 함께 배에 탔던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배를 위협하던 폭풍은 그쳤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깊은 물 속으로 빠진 요나가 하는 기도 입니다. 요나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립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정의로우심에 기대어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요나를 살려주십니다. 요나의 기도를 찬찬히 살피면서 요나가 처했던 상황과 그 상황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뜻을 함께 알아보도록 합시다.

본론 1: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  (1:17-2:1)

 
선원들에 의해서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익사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가 바다에 떨어지고 난 뒤에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요나가 물고기에 의해서 구조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삼킨다는 말은 파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물고기가 요나를 먹기 위해 삼켰다. 실제로 삼켜 넘겼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큰 물고기가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자신의 위장에 요나를 품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큰 물고기는 요나를 삼켜 버렸습니다. 요나는 차가운 바다 물 속에 던져졌고 이제 물고기에게 삼켜져 완전한 죽음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 자신이 이 때까지 살아온 선지자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폭풍이 불어 닥친 배 안에서 평안히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폭풍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한 채 잠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선원들이 죽음의 공포에 아우성 칠 때에도 그는 배 밑층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죽는 것을 택한 자였습니다.

사실 요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보다 죽음을 택한 것이라기 보다는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고자 하였습니다. 요나 스스로 니느웨를 살리시려고 하는 하나님을 불의하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을 심판하지는 못할 망정 선지자인 자신을 보내어 살리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떠나려고 했고 하나님과 단절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물 속으로 던져지고 또한 큰 물고기에게 삼켜지자 요나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보다 더 하나님과 단절되고 싶어한 요나는 언제 그랬다는 듯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으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자기 포기의 기도 입니다. 

본론 2 : 깊은 곳으로 던지신 하나님 (2-6)


요나는 기도하면서 바다에 던져진 요나가 큰 물고기에 의해 삼켜진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는 자신의 형편이 고난 받는 형편이라고 말합니다. 요나는 결코 큰 물고기에 의해서 구조된 것이 아닙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으며 큰 물고기에 의해서 먹이와 같이 삼켜져 버렸습니다. 요나는 죽음과 같은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어쩌면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릅니다. 산채로 큰 물고기 뱃속에서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난인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스올의 뱃속에 있는 것만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스올은 지옥을 의미합니다. 요나는 지옥의 한 가운데에서 고난을 당합니다. 

우리는 스올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올은 우리말로 지옥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는 곳, 여호와 하나님께서 더 이상 다스리지 않는 곳을 말합니다. 요나는 주께서 자신을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다고 말합니다. 요나는 정말로 하나님과 단절되길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배에 탔을 때에도 폭풍 속에서 자신의 뜻을 전하시는 하나님을 외면하기 위해 애써 잠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시고 하나님의 어떤 흔적도 어떤 뜻도 발견할 수 없는 큰 물과 파도와 큰 물결 가운데 있을 때에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 때에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경험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보내시고 그로 하여금 삼키게 하시며 요나에게 간섭하셨습니다. 하지만 철저히 요나와 단절하셨습니다. 요나와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과 단절된 괴로움을 표현합니다. 물이 자신의 영혼까지 감싸고 바다의 풀이 자기 머리를 감을 만큼 자신은 깊은 물 속으로 하나님께 전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내던져지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고 땅이 빗장이 되어 자신을 나오지 못하게 할 정도로 자신을 깊은 곳, 구덩이 속에 쳐박히게 하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삶은 오직 어둠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삶에는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환경, 큰 물고기 뱃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요나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요나의 음성을 들으시고 요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였을 때, 요나는 자기 생명을 끝도 없는 구덩이 가운데서 건지신 것과 같은 기쁨, 자신의 생명이 구원 받은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반항 밖에 하지 못한 자신에게, 자신이 이미 죽음까지 각오하고 도망쳤으나 고난과 괴로움에 견디지 못하여 다시 하나님을 찾는 나약한 자신에게 느낀 실망감보다 하나님께서 다시 받아주신 다시 건져 올리신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본론 3 :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7-9)


영혼은 육체가 아니기 때문에 피곤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요나는 극심한 고난의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영혼은 피곤함을 느낄 수 없지만 심한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영혼이 피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 죽음과 같은 어둠에 던져진 자의 고통입니다. 요나는 영혼의 피곤함에 몸부림치며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이 모든 상황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지금 현재 요나가 처한 물고기 뱃속에서 겪고 있는 죽음과 지옥, 하나님과의 단절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그것을 영혼이 피곤할 정도의 고난의 상태에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거짓되고 헛된 말을 숭상하는 모든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은혜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오직 거짓되고 헛된 것인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살아있는 듯 하지만 살아있지 않고 숨 쉬는 듯 하지만 숨쉬지 않으며 들어주는 것 같지만 들어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우상에 대해서 헛된 말들을 지어내지만 그 말들은 그야 말로 지어낸 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외에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들을 귀가 없으며 응답할 입이 없으며 우리를 도울 손이 없습니다. 그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뜻과 다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항상 들으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뜻이 다를 때 다정하게 설득하시며, 언제나 응답하여 주십니다.

요나는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기도를 들으시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던 선원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듯이 요나는 새롭게 알게 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며 서원을 올립니다. 우리가 진정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어떤 것들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서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내 손에 있는 것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께서 갚을 수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자연스레 내 손에 쥔 것들을 내려 놓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돌려드리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운명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직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의 모든 운명을 쥐고 계시지만 우리를 지배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요나는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의 구원 자신의 처분이 모두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기도합니다. 

결론 : 완전한 단절, 완전한 은혜


요나는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원하였고 정말로 완전한 단절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어두운 물 속이었고, 큰 괴물의 뱃속이었으며, 스올의 뱃속이었습니다. 영혼이 피곤할 정도로 고난과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요나는 고통과 고난에 짖눌려 있지 않고 항상 은혜를 베푸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다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이어집니다.

우리는 요나가 하나님과 단절된 상황, 완전한 죽음의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요나에 비유하셨던 예수님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가운데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경험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버리셨고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다다르지 않았고 설령 하나님께서 들으셨다 하더라도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며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셔야 했던 죄의 무게는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될 만큼 엄청나게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의 단절, 요나와 하나님과의 단절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한 슬픔이며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최후에 하신 말씀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입니다. 요나가 마지막에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고 기도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또한 자신의 처후를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으며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무덤은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그에 합당한 벌인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십자가는 죄에 대한 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아주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완전한 관계의 회복과 구원이 우리에게 베풀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며 빈 무덤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고통 가운데 예수님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영광의 예수님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은혜가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너무나 큽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원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