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6일 일요일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2장 16절-23절 / 210517)

골로새서 2장 16절-23절

16절 :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절 :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절 :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절 :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20절 :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절 :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절 :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절 :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제목 :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서론 : 배경과 문맥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앞선 단락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제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거짓 선생들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비판하며,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과 판단과 정죄를 거부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거짓 교사들의 교훈을 받아들인 일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도 경고하며 그들이 가르치는 것이 조금도 유익이 없다고 못박습니다.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특별히 본 신비한 환상에 의지해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미혹하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유대교 안에 신비주의를 따르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거나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은 경건한 유대인은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천사들이 예배하는 모습, 천사들의 예배를 보는 일은 자신이 얼마나 경건한 자인지 알려주는 척도, 기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생각한 경건한 사람은 모세의 율법을 따를 뿐만 아니라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금욕적인 생활이라는 말은 금식이나 몸을 괴롭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을 지키고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서 천사들이 예배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교훈을 지적하고 그것을 단호히 끊어낼 것을 이야기 합니다.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바울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본론 1 :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6-17)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구원을 위해서 혹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더 추가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이야기하며 더 나아가 비판하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비판하였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가 먹고 마시는 것으로 구약 율법 중 음식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먹는 것에 대한 규정으로는 돼지고기 같은 부정한 음식에 대해서 금하는 규정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을 때, 나실인이 정한 기간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규정만 있을 뿐 별다른 규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골로새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구약 성경에서 규정한 것 외에도 자신들만의 규정을 만들어 만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손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천사들의 예배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경건한 행동이라 믿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비판했던 두번째 근거는 종교적인 절기, 초하루, 안식일 입니다. 절기는 대표적인 유대인의 절기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등을 가리키고, 초하루는 초승달이 뜨는 매월 첫째날을 가리킵니다. 이 날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며 나팔을 불어야 하는 거룩한 날이었습니다. 안식일은 매주 토요일을 가리키며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언약 백성이라면 지켜야 할 거룩한 날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날을 지키는 것은 경건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물론 환상을 볼 수 있게 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음식법과 절기를 지키는 일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비판하였습니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이 하는 비판은 근거없는 비판이며 성도들이라면 듣지 않아도 될 비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 교사들이 강조한 율법들은 모두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는 장차 올 것들에 대비되는 것으로 과거의 것,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모든 것들을 희미하게 보여줄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장차 올 것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이미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누리고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옛 시대에 속한 그림자로 장차 올 것을 온전히 그리고 충만하게 누리고 있는 골로교 교회 성도들을 비판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거짓 교사들의 비판을 거부해야 합니다. 

 

본론 2 :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18-19)


거짓 교사들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옛 시대에 속한 그림자로 비판했을 뿐 아니라 정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거짓 교사들의 비판을 거부하였듯이 정죄하는 일도 거부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거짓 교사들이 골로새 교회를 정죄하는 내용이 정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정죄하는 이유는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 입니다.


천사 숭배는 천사를 뛰어난 존재로 여기고 천사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이 하나님께 하는 예배를 가리킵니다. 천사들이 숭배하는 장면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되는 이유는 천사를 목적어적 속격으로 해석하지 않고 주어적 속격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거짓 교사들이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많은 경건한 선지자들은 환상으로 천군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과 같은 경건한 사람으로 천사들이 겸손히 자기 얼굴과 발을 가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환상을 보지 못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정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정죄하는 행위가 그들의 영적 교만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짓 교사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 천사들이 예배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면, 겸손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일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우월성을 이야기 하며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비판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며 온 성도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보다 자신들이 경험한 천사들의 예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온전한 성장, 공급함, 연합을 위해서는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본론 3 :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20-23)


사도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지적한 다음, 거짓 교사들에게 넘어간 일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 책망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 살아갑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구원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초등학문, 세상 가운데 널리 퍼져 있는 기초적인 원리들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전하시고 가르치신 복음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의 이야기에 넘어간 일부 성도들은 세상에서 사는 것과 같이 규례, 이미 지나가버렸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규례에 순종하였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받아들인 거짓 교사들의 규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붙잡지도 말라, 맛보지도 말라, 만지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음식과 음료에 관련된 규례로 부정한 것으로 지정된 음식이나 음료를 붙잡지도 맛보지도 만지지도 말라는 명령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렇게 하므로 자신의 정결을 지킬 수 있고 더 나아가 천사들의 예배 현장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그림자와 같은 일이며, 헛되고 과장된 것을 따르는 일이며,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는 일입니다.


거짓 교사들이 규정한 모든 규례들은 결국 사람이 규정한 것이며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유한한 사람이 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고 사람은 언젠가 판단도 생각도 흐려지게 됩니다. 영원한 것은 없고 오직 상대적인 것들만 남게 됩니다. 음식과 음료는 모두 배에 들어가면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것을 두고 엄격하게 규정을 정하고 지킨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 것들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겉보기에는 그럴 듯 해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규정들은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지혜 있는 모양만 있을 뿐입니다. 고대 헬라 사회에서는 적당한 금욕 생활은 지혜로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사회의 주류 사상이었던 스토아 학파가 그런 금욕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금욕주의적인 모습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의적 숭배라는 말은 스스로 만든 예배, 즉 환상 중에서 본 천사의 예배를 본따서 자신들의 예배 형식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사의 예배를 따라한다는 것은 지혜롭고 경건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예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뜻과 생각에 따라 만들어진 예배일 뿐입니다. 


거짓 교사들을 지혜롭게 보이게 만드는 요소는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특정한 음식과 음료를 금지하고, 긴 시간 금식하고 일부러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몸을 괴롭게 했습니다. 이런 행동들을 통해서 천사들의 예배를 볼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것들이 조금도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지혜로워 보이는 행동들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도 경건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도 어떤 유익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짓 교사의 가르침은 육체를 따르는 것을 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결국 육체를 따르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육체라는 말은 구원 받기 전 옛사람을 가리킵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옛 사람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르침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조금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결론 : 겅건과 금욕과 착각


우리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미혹하였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혹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베푸신 구원이 충만한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세상의 초등학문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부족함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만든 규정, 스스로의 만족과 안정을 위해 만든 규정에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진정한 머리이신 분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되신 분만이 우리에게 공급하시며 우리를 성장하게 하십니다. 금욕의 착각에 빠지지 말고 경건의 근원이시자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예수님을 의지합시다. 우리의 착각이 우리를 바판하지 않도록 정죄하지 않도록 우리의 절대 기준이신 그리스도만을 의지합시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복이 됩니다. 이 복을 누리며 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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