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9일 일요일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 (골로새서 2장 6절-15절 / 210510)

골로새서 2장 6절-15절

6절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절 :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절 :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절 :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절 :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였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절 :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절 :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절 :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절 :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절 :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제목 :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


서론 : 배경과 문맥


골로새 교회를 위한 편지는 이제 본론에 접어들었습니다. 특히 오늘 읽었던 부분은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혹은 영향을 끼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논증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 교사들을 향해 경고하고 있으며, 동시에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을 지키라 권고하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미혹당하지 않도록 계속 주의하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면서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인 것을 상기시키며 .예수님 안에서 계속 살아가길 바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거짓 교사에 대한 두 번째 경고를 시작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교훈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자세히 살피면서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본론 1 :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 (6-7)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다시 알려줍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주님이라는 말은 원래 여호와 하나님께만 붙혀진 칭호였습니다. 또한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예수님을 높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했다는 의미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이 믿음을 추상적으로, 신앙적으로만 가졌던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자신들을 다스리던 로마 황제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다스리며 이끄시며 가르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다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항상 함께 그분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면서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모습을 네 가지 표현으로 말합니다.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아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표현입니다. 모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신앙을 지키며 그리스도께서 주님을 확신하고 계속 그 분 안에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치 포도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린 것 같이,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 같이 굳건하게 서길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론 2 : 거짓 교사들에게 경고 (8-10)


그리스도 위에 굳건하게 서야하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방해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그들을 사로잡아가려고 했습니다. 사로잡아간다는 표현은 포로로 잡아가다는 표현이며 전쟁에서 진 사람들이 당할 형편을 말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단순히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유혹을 받는 일을 넘어서서 골로새 교회가 영적 전투에 임했으며 전투에 패배하는 순간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 절박한 상황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유혹하였습니다. 철학이라는 말은 헬라와 유대의 다양한 사상 체계, 인생에 대한 가르침, 인간의 지혜, 종교적 지혜 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고상하게 보이려고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철학을 헛된 속임수와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거짓 교사들이 말하는 철학은 내용이 없고 공허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은 사람의 전통을 따르며,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람의 전통이라는 말은 모세 율법에 대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의 해석을 가리킵니다. 거짓 선생들은 할례와 절기, 초하루와 안식일에 대한 전통을 지키길 요구했습니다.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는 말은 세상의 가장 초보적인 종교 원리를 가리키며 구체적으로는 거짓 선생들이 주장했던 금욕주의, 신비주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생들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공허하고 의미없는 것들을 따르라 요구하였습니다. 공허하고 의미없는 요구들을 철학이라는 고상한 말로 포장하고서 말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결단코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성도들에게도 충만하여 졌기 때문입니다. 신성의 모든 충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게 완전하게 거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하신 모습,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본성을 품고 계십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보유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거짓되고 공허하고 의미 없는 것들을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 안에서도 충만하게 거하십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할 때에 성도는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는 우리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충만해 질 수 있다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는다면 신성의 모든 충만을 얻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와 같을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본론 3 : 그리스도께 받은 충만 (11-15)


이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받은 충만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습니다.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라는 이야기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함께 참여한 것을 의미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받은 할례, 즉 죽음을 통해서 육체의 몸을 벗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었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할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타낸다면,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함께 일으킴을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장사되었던 일, 무덤에 묻였던 일, 완전한 죽음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빈 무덤을 남기신 일, 부활하셔서 많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 승천하신 일까지 의미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일, 이미 이루신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믿음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것,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일으킴을 받으신 것과 같이 우리 또한 함께 일으키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도가 경험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는 놀라움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 실제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첫 번째 영향은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일입니다.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 없던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자들, 하나님의 언약과는 무관한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실제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이방인이었고 하나님의 언약에 전혀 관련 없이 불의와 음란과 부정을 일삼으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그의 백성이 되지도 못한 자들은 결국 죽음의 상태에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보시고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우리가 지은 죄를 사하여 주시기까지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할례 받은 자이든지 할례 받지 않은 자이든지 하나님께서는 모두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법조문으로 쓴 증서라는 표현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 하나님의 긍휼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범조문으로 쓴 증서는 율법을 기준으로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그 작성자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지워지고 버려졌으며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모든 죄를 기록하며 증명하는 책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책은 사라지고 새로운 부활의 몸을 입으시므로, 우리 죄를 고발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우리에게 증명하셨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놀랍고도 기쁜 소식 입니다.


기쁜 소식은 죽음으로 우리는 지배하던 악한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는 패배의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영들인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그들을 드러내어 구경거리고 삼으십니다. 이는 로마 군대의 승리의 개선 행진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을 죽음이라는 강력한 도구로 괴롭히던 악한 권세들은 십자가의 승리로 인해서 무장 해제 당하여 전리품이 되고 구경거리가 되는 수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로 인하여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스도께 받은 충만은 구원으로 인한 기쁨의 충만이며 구원에 대한 감사의 충만 입니다.


결론 : 철학과 충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성의 모든 충만으로 채우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사실이 우리를 얼마나 복되게 하는지 어떤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철학이라고 포장된 헛된 속임수에 넘어갈 수 있는 아직은 완전하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한 승리로 우리를 위협하던 강대하고 거대한 악한 영들에게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악은 패배가 예정된 허약한 상대 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방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패배하여 포로로 사로잡혀갈 작은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가능성 조차도 허용하시지 않으시려고 하십니다. 그의 종들을 보내어 그가 하신 일들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가 주신 은혜들을 헤아려보게 하십니다. 적들은 철학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우리에게 유혹하지만 이미 우리 속에는 철학의 헛되고 의미 없는 가르침이 들어올 공간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로인하여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살아갑시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음을 잊지 맙시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깨달아 아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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