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4일 월요일

위에 것을 구하라 (골로새서 3장 1절-17절 / 21.05.25)

골로새서 3장 1절-17절

1절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절 :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절 :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절 :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절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절 :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절 :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절 :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절 :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절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11절 :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12절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13절 :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절 :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절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절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절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제목 : 위에 것을 구하라


서론 : 배경과 문맥


오늘 살펴볼 본문은 골로새서라는 편지 가운데 본론 부분 중 실천적인 권면을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앞서 살펴본 본문에서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경고하고 그들의 가르침에서 멀어지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때까지 강조한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천사숭배는 무익한 것이며, 두 번째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받은 구원은 충분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불필요한 율법 준수와 고행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본격적으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따라야 할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서 다룹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삶이 아닌 정말로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하는 삶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하고, 죽이고, 옷을 입으라는 명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자세, 삶의 원칙을 가르칩니다.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과 그 명령을 통해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본론 1 : 구하라 (1-4)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앞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였던 바울의 주장이기도 하면서 진리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위라고 말하는 그곳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곳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계신 곳, 지금은 갈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함께 있을 그 곳을 가리킵니다. 위의 것을 찾는 일은 거짓 교사들이 말하는 율법을 지키는 것과 고행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과 고행을 오직 육체의 만족을 위하여 행하였습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위의 것을 생각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또한 땅에 있는 온갖 더러운 죄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속하신 그 나라의 것들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하늘에 보관하신 소망과, 성도의 기업,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날 영광입니다. 


우리가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므로 예수님과 함께 죽음을 경험하였습니다. 이 죽음은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고 세상의 초보적인 원리들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과 마귀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새로운 생명을 받았고 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의 생명을 감추시고 다른 어떤 악한 세력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감추시며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안에 우리의 생명을 감추어주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위에 속한 자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위에 속한 자입니다. 


우리가 위에 속한 자이기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그때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하며 소망하게 됩니다. 땅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그때를 두려워 합니다. 왜냐하면 심판만이 그 앞에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땅에 속한 자가 받을 심판의 끝은 죽음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위에 속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부활의 생명, 영생의 생명이 되셔서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부활과 영생의 생명을 우리 또한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누릴 영생의 생명은 우리에게 영광이 됩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가난과 질병 등으로 고통 당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땅의 것, 육신의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것, 그리스도를 구해야 합니다. 

 

본론 2 : 죽이라 (5-11)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위의 것을 구할 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들은 머리나 다리, 팔과 같은 신체의 각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옛 육체, 옛 사람과 같은 구원 받기 전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는 음행,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입니다. 모두 무절제하고 부도덕한 성행위나 욕망을 가리키는 말로 골로새 도시 가운데 음란한 문화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주변의 음란한 문화 가운데서도 거룩함을 지키며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더이상 골로새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영광스러운 존재들이며 의와 생명의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짐을 받은 백성입니다. 땅에 속한 지체를 죽여서 하늘에 속한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음행, 부정, 사욕, 정욕, 탐심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범하는 사람을 그때마다 진노를 베푸시며 벌하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는 그 날에 형을 확정하시고 그들에게 진노를 발하시며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실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도 전에는 영원한 형벌이 예정되어 있던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마지막 날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그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에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모든 것은 분노와 노여움, 악의와 비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해하려고 하는 폭력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교회라는 공동체로 부르심 받은 성도들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길 권면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우리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거짓말 하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은 구원의 새 질서 속에서 속하여서 전적으로 새로워진 존재입니다.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 즉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의 형상인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새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과 같이 되어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새 사람은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지식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아는 완전한 지식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없던 어둡고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 새 사람이 되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질 만큼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일에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 받은 사람이나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이나 야만인이나 스키타이 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차별 없이 모두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문화, 종교, 신분, 인종의 어떤 구분도 없이 하나님께 새 사람을 입었는가 입지 않았는가가 기준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며 새로운 인류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우리 안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며 만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게 됩니다.  


본론 3 : 옷 입으라 (12-17)


만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는 새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사람된 자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며 거룩한 자이며 사랑 받는 자입니다. 이 표현들은 모두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용되던 표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가리켜 말씀하실 때에 사용하던 표현들입니다. 이제 혈통적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은 모든 새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거룩하며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덕목은 모두 하나님께서 가지신 성품이며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보여주셨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서로 용서하는 일입니다. 이 용서를 예수님께서 일만 달란트 비유를 들며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명령은 서로의 죄를 허용하고 덮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형제나 자매의 죄가 드러났을 때에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의 죄를 교정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절차에 대해서 잘 설명 해주셨습니다. 먼저 그 죄를 발견한 사람이 먼저 가서 말하고 듣지 않으면 증인들과 함께 두 세명이 함께 가서 말합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 앞에서 말하는데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사람의 공동체를 죄와 불법의 공동체가 아니라 의와 화평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하여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미덕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이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 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구원도 은혜도 복도 없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새 사람의 옷을 입으면서 함께 사랑의 옷도 입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새 사람의 공동체를 하나로 매어서 온전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그리스도의 성품을 보여주며 사랑으로 하나된 공동체가 되게 합니다. 


사랑으로 온전히 매인 새 사람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주장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평강을 의미합니다. 당시 로마시대는 팍스 로마나라는 평화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로마의 단단한 군사력으로 이뤄진 일시적인 평화에 불과 했습니다. 군사력이 무너지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억지 평화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루신 평화는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온전하고 완전한 그리고 영원한 평화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행동의 동기가 그리스도의 평강이 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이 평강을 위하여 교회라는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이 부르심에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평강이 자신을 주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게 하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선포하신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된다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며,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가득하게 임할 때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의 이름에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주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마임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 새 사람의 삶, 감사의 삶


우리는 새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 새 사람의 양식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새 사람이 옛 사람과 같이 산다면 새 사람일 수 없습니다. 새 사람은 위의 것에 속한 자로 위의 것을 바라고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을 입게 될 사람입니다. 옛 사람의 존재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옛 사람의 기억은 우리를 관성처럼 이끌어서 옛 사람의 습성대로 살게 합니다. 우리는 이 옛 사람을 죽이고 벗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새 사람의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을 지키고 고행을 행하는 것을 천사들의 예배를 보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 일들은 그리스도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단지 육체의 자랑을 위해서 행했던 일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새 사람의 삶은 감사의 삶입니다. 새 사람으로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입니다. 동기가 다르며 그 결과 또한 확연하게 다릅니다. 거짓 교사들을 따르는 삶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지만, 새 사람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 날에 영광스럽게 변화를 약속받은 삶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시고 이 삶을 영위할 수 잇도록 우리에게 은혜 복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복과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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