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30일 일요일

주님을 닮은 생활 (골로새서 3장 18절- 4장 1절 / 21.05.31)

골로새서 3장 18절- 4장 1절

18절 :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절 :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20절 :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절 :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22절 :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절 :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절 :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절 :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1절 :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제목 : 주님을 닮은 생활


서론 : 배경과 문맥


 사도 바울은 앞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으므로 새 사람이 되었고 새 사람으로 살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새 사람은 하나님이 택하셔서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교회를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교회 속에 풍성하게 거하도록 하여 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함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앞선 권면들이 새 사람인 성도 개개인과 개개인이 모여 만든 교회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이야기 했다면, 오늘 함께 읽었던 본문에서는 가정이라는 또 다른 공동체 안에서 새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앞서 기록한 교회에 대한 권면의 결론으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는 원리를 가정 생활에서도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영역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심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기도 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결혼과 가정 생활을 소홀히 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영역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경건이라는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새 사람이 이루는 가정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본론 1 : 아내와 남편 사이에서 (18-19)


새 사람이 이루는 가정은 남편과 아내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그리스-로마 사회는 남성 가부장이 중심이 되는 사회였습니다. 가장에게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었으며, 남편과 아버지, 주인은 책임있는 도덕적 주체로 대했지만 아내, 자녀, 종들은 도덕적 권면에 대상으로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남편과 아내 중에 아내를 먼저 부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무조건 남편에게 지배 당해야 마땅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먼저 아내들을 부르는 것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남편보다 아내를 먼저 부르는 것에 반해서 아내에 대해서 하는 말은 너무나 진부한 말입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가부장적인 남성 가장 중심의 규범을 그대로 따르는 듯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다른 성경인 갈라디아서에서 에서 남편이나 아내나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한 지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인종과 종교와 문화와 신분과 성별에 의한 차별은 없다고 선언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남편과 아내는 동등한 존재였습니다. 동등한 존재와 관계 속에서 사도 바울은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안에서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그저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와 원리들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질서 있게 유지하기 위해서 가정을 대표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누군가에게 부여하셨는데, 그 역할을 남편에게 부여하셨습니다. 따라서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이 복종은 남편의 모든 요구를 맹목적으로 동의하거나 강제적인 굴종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복종은 자신을 남편 아래에 두지 않을 선택에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남편 아래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내들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질서와 자신과 동일한 영광을 지니신 성부 하나님 아래 두시며 보여주신 모범에 따라 남편 아래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두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새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남편들은 이런 아내들을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로마 사회의 남편은 지배하는 자였지만 그리스도로 인해 새 사람이 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자 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주어야 할 사랑은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이타적인 사랑,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그 사랑입니다. 남편은 자신을 자기 신부인 교회를 위해 내어주신 예수님을 따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 또한 가정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면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춰 남편 아래에 자신을 둔 아내가 자신과 동등한 새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에게 모질게 대하지 말고 자신을 주어 사랑해야 하며, 자기 기쁨보다 아내의 기쁨을 더 생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론 2 : 자녀와 부모 사이에서 (20-21)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이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다룹니다.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자녀들은 인격적인 존재로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절대적인 가장 아래에서 종과 같은 취급을 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녀를 공중 화장실에 버리거나 물에 던져 죽일 수 있었으며, 건강한 자식은 종으로 팔아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아주 일반적이었습니다. 자녀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도 바울은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 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자녀들을 부릅니다. 자녀들아 라고 부르는 대상은 골로새 교회의 어린 아이들을 명확하게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어린 아이들도 교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야 하는 새 사람이라고 인정합니다. 새 사람인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 명령은 십계명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법으로 정하셨고 어린 아이들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 법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정하니 법을 따르는 자녀들을 보면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순종은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행하며 주님을 믿는 믿음을 표현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순종을 기쁨으로 받으십니다.


자녀들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따를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부모의 권위, 특히 아버지의 권위는 자녀들에게 절대적이었습니다. 로마의 법이 아버지의 권위를 보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통치를 따르는 자들,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사람된 자는 로마법을 뛰어 넘어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새 사람은 자기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엽게 한다는 것은 자녀들을 부당하게 체벌하거나 비난하거나 자녀들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므로 자녀들이 분노하게 되는 일을 가리킵니다. 가장의 절대적인 권한을 보장하는 로마의 법으로는 자녀에게 무슨 일을 하든 가능했으나 새 사람이 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자는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을 중단하고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노하게 되면 낙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낙심은 동일한 새 사람인 자녀들이 새 사람으로 살아갈 의욕을 잃게 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새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본론 3 : 종과 상전 사이에서 (22-4:1)


마지막으로 그리스-로마 사회 가운데 가정의 구성원이었던 종과 주인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로마 제국의 전체 인구 중 삼 분의 일은 노예였다고 합니다. 로마 제국 당시에는 노예 제도가 합법이었고 노예가 없이는 로마 제국이 그렇게 번영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노예 제도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회 전반에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 관계 속에서 동등한 새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노예도 주인도 모두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사람이 되었고 동등한 위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칩니다. 비록 지금은 비참한 노예의 신세이지만 그리스도로 인하여 종도 자유인도 하나가 되게 하신 그리스도의 능력과 복음을 알려줍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중에 있는 종들을 먼저 부릅니다. 노예도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사람이 되었고 주인과 동일한 교회의 공동체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로마 시대의 종은 사람이 아니라 재산과 도구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서 종들은 자유인들과 마찬가지로 새 사람이 되었고 자유인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의 말씀을 들을 대상이 되었습니다. 종들은 마치 자유인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책임감 있는 새 사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새 사람이 된 종들은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같은 믿음의 형제라고 해서 관용을 바라고 대충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는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일 뿐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항상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아야 하고 주를 두려워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주인이 본다고 해서 열심히 하고 보지 않을 때는 불성실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을 말하며, 숨은 의도 없이 순전하고 성실하게 육신의 주인을 섬겨야 할 것을 말합니다.


종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이것이 새 사람이 된 자들이 따라야 할 생활 원리입니다. 종들은 비록 육신의 주인이 시킨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이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라 생각하고 사람의 유익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 마음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는 기업의 상을 준비하십니다. 종은 기업을 물려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새 사람되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는 종은 기업의 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종들은 하나님 나라의 합법적인 상속자 입니다.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은 종들이 주 그리스도를 섬기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전한 복음을 받는 빈 손이기도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다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주님을 주님으로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불의의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정의로우신 재판관이십니다. 잘못한 것을 아시며 그것에 합당한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 앞에서는 성실한 척, 신실한 척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 앞에서는 반드시 불의에 대한 보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시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종들은 새 사람으로 살기를 신실하게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살아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된 종들이 주인을 성실히 섬겨야 했다면 새 사람이 된 주인들은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의는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의를 말합니다. 종들이 주인을 대하듯 주인도 종들을 대해야 할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에게는 복을 악을 행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새 사람인 종이 주께 하듯이 주인을 섬긴다면 주인도 주께 하듯이 종에게 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생각은 종을 도구나 재산으로 생각했던 로마 시대에는 매우 획기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이어지는 공평도 매우 획기적인 생각입니다. 주인들은 종들이 함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사람된 것을 인정하고 공평하게 대하며 하늘에 계신 주인 앞에서 동등한 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육신의 주인에게는 하늘에 계신 주인이 있습니다. 육신의 주인은 지금은 자신이 주인으로 있는듯 하지만 실상은 종과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신 주인 밑에서 똑같은 종의 자리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교회에서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종과 주인의 관계를 넘어 함께 그리스도의 종된 자로 살며 종은 주인에게 순종하고 주인은 종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합니다. 


결론 : 새 사람의 삶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서만 우리가 새 사람의 삶을 살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새 사람의 공동체, 가정에서도 여전히 새 사람으로 살길 원하셨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음식 규정과 절기 규정, 금욕으로 자신을 경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 새 사람된 그 존재로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참된 경건한 길이고 천사들의 예배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영역 가운데서 모든 것의 주인 되신 주님을 알고 느끼고 기억하는 것. 우리를 부르신 그대로 사는 것. 이것이 우리의 경건입니다. 주님께서 기쁘게 여기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부름 받았고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새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내게 주어진 모든 환경 가운데 교회와 가정 가운데 새 사람으로 살아냅시다. 이 은혜 가운데 살길 소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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