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 1절
1절 :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제목 : 야고보서를 읽기 전에
서론 : 주목받지 못한 성경
야고보서는 초대 교회 시절부터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던 성경이었습니다. 주로 로마 제국의 동쪽에서만 읽혀지던 편지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 서쪽에 있는 성도들은 야고보서의 존재는 알았지만 야고보서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종교개혁 시대에는 독일의 마틴 루터가 야고보서에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잘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하며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고보서를 비롯한 히브리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 일이삼서, 유다서는 편지이긴 편지인데 특정한 수신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신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공동으로 읽는 편지라고 하여서 공동서신이라고 묶어 부릅니다. 바울 사도가 보냈던 편지는 명확한 수신자가 있어서 수신자의 이름을 따서 성경의 이름을 정했지만, 공동서신의 경우에는 편지를 쓴 사람의 이름을 따라서 성경의 이름을 정했습니다.
야고보서가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경우에는 저자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방대한 양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베드로 전후서, 요한 일이삼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야고보서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저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또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도 바울이 가르친 교훈과 반대되는 교훈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였기 떄문입니다. 이번 학기 야고보서를 함께 살펴보면서 이런 오해들을 함께 풀어나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을 첫 시간으로 야고보서의 배경과 야고보서의 중요한 교훈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자 : 주의 형제 야고보
야고보서의 저자는 야고보 입니다. 야고보라고 하면 성경에 4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야고보서의 저자 후보를 성경에 등장하는 4명의 야고보로 줄이는 것은 성경을 기록할 정도의 사람이면 성경에 등장하였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측에서 기반합니다. 이를 사도성의 원리라고 하는데 예수님께 직접 배웠던 열 두 제자를 비롯하여 열 두 제자에는 들지 않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던 사람들을 사도적 인물들이 성경을 기록하였다고 믿는 원리입니다. 사도와 사도적 인물들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초대 교회에서는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맨처음 등장하는 야고보는 사도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 입니다. 사도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기록했다고 볼 수 없는데 왜냐하면 너무 빨리 순교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교회가 자리 잡으려는 그 짧은 기간에 헤롯 왕에 의해서 순교합니다. 두 번째는 같은 12 사도 중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경우에도 야고보서를 기록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서도 알패오의 아들이라는 말이 항상 따라 붙었습니다. 시작할 때 읽었던 야고보서 1장 1절에 따르면 저자 야고보는 자신의 부모를 밝히지 않고 그저 야고보라고 소개합니다. 알패오의 아들 아고보가 저자였다면, 다른 교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알패오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반드시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세번째 야고보는 사도 유다의 아버지인 야고보인데, 사도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는 성경에 단 한 번 등장하고 사도 유다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록되었지 그 자신에 대한 기록이 전무합니다. 따라서 야고보서의 저자로는 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 야고보는 주의 형제 야고보 입니다. 주의 형제라는 말은 예수님의 육체적 형제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육체적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의 사이에는 예수님 이후에 다른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 중에 유명한 사람이 주의 형제 야고보와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 입니다. 야고보는 베드로가 예루살렘을 떠난 뒤에 예루살렘 교회를 맡아 사역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 선교 보고를 하고,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회의를 할 때에 회의를 진행하고 주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볼 때에 주의 형제 야고보는 충분히 야고보서를 기록할 만한 지식이 있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정통하였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야고보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 요셉 사이에서 난 예수님의 동생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자랐으며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 생전에는 예수님을 탐탁치 않게 여겼고 오히려 불만을 표시하였습니다. 아버지 요셉은 이른 나이에 죽었을 것으로 보는데, 아버지의 빈 자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으로 어머니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갈릴리에서만 사역하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었습니다. 유대에서 떳떳하게 사역하지 못할 거면 왜 저런 짓을 하는지 불만을 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에도 그 현장에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가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된 계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야고보 앞에 나타난 이후 입니다. 그 이후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던 기도회에도 참석하였습니다. 베드로가 핍박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나간 이후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초대 교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회의가 있기 전에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계하기 위하여 야고보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원후 62년에 산헤드린 공회에 소환되어 돌을 맞고 순교하게 됩니다.
수신자 : 흩어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보냅니다. 열 두 지파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신약 성경 곳곳에서는 열 두 지파를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 전체를 가리키며, 구원 얻은 성도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서에서는 전체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보기 보다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더 옳습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 전체를 볼 때에 유대인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만을 위해서 기록된 편지이기 때문에 야고보는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고 유대인들이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들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야고보서를 받는 열 두 지파는 유대인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중에서도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만 기록되었습니다. 야고보서의 전체적인 내용 가운데 편지를 받는 유대인들은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심하게 박해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자기들 손으로 죽인 예수를 메시야라고 믿는 자들 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교훈이 기존 율법을 뒤집는 가르침이었고, 결국 율법을 지키지 않도록 하는 가르침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오해를 받고 오해로 인해 핍박 받는 유대인 그리스리도인을 위하여 이 편지를 기록하였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유대인들에 의해서 팝박을 받았고 예루살렘의 총독과 유대의 분봉왕은 유대인들의 인기를 위해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사도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가 순교하였고 사도 베드로도 감옥에 잡혔다가 풀려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핍박으로 인하여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주변 지역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유대와 가까운 시리아나 소아시아 지역으로 흩어졌고 예루살렘에 남은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를 위하여 이 야고보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주요 내용 :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온전하라!
야고보서를 읽어보면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를 위해서 이 편지를 쓰면서 서로 거의 연관성 없는 권면들을 기록하였던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의 중심되는 주제를 찾는 것에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서가 뚜렷한 주제와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는 성경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야고보서가 우리의 삶과 생활에 중요한 기준이 되며, 우리 믿음 생활을 증진시키는데 부족함이 없고 오히려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야고보서가 주제 없이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 하는 성경은 아닙니다.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를 향하여서 그들이 살고 있고 처한 현실이 다양하겠지만 공통된 시련과 아픔, 그리고 시험을 이겨낼 것을 이야기 합니다.
야고보서를 읽어보면, 야고보서의 시작과 끝은 항상 시련을 주제로 이야기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는 모두 시련 가운데 있으며 이 시련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수신자들은 가난과 핍박과 압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판단하시고 갚아주실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믿음과 겸손과 율법을 이야기 합니다. 야고보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복음을 믿고도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편지하고 있습니다.
이 여러가지 주제는 두 마음을 품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는 전체에 걸쳐서 상반되는 두 가지를 제시하고 독자 앞에서 선택하라고 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할지 말지, 위로부터 온 지례를 따를지 말지,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추구할지 말지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를 통하여 세상과 타협하여 살지말고 스스로의 영적 상태를 속이지 말며 영적 온전함에 이르라고 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론 : 주목해야 할 성경
야고보서는 여러 권면들이 연속으로 되어 있어 그 자체로 놓고 보면 매우 쉬운 성경입니다. 매우 무시간적인 윤리적 권면들이 연속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놓고 그 말씀에 순종하길, 이 말씀이 내 삶에서 나타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많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약의 다른 성경과 부딪치는 점이 많다는 점입니다. 함께 공부하면서 이 부딪침이 진리를 깨부수는 부딪침이 아니라는 것을 차차 배워나갈 것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믿는 자가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무엇을 향하여 살아가야 하며, 무엇을 품고 살아야 할지 가르치실 것입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말씀이 말씀하시는 바를 주의 깊게 듣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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