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7일 월요일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야고보서 1장 19절 - 27절 / 21.09.27)

야고보서 1장 19절 - 27절

19절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절 :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절 :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절 :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절 :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절 :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절 :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절 :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절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제목 :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서론 : 문맥


야고보서 1장 1절-18절은 믿음의 시련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심한 박해로 인해서 삶의 터전이었던 예루살렘에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성도들을 위한 위로의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시험에 있다고 하더라도 성도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에 대한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말씀을 듣는 것과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본론1 : 성급한 말 (19절-20절)


19절에서 20절 말씀은 새로운 주제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하고 부르면서 편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앞서 이야기 한 것과는 연관되어 있지만 조금 주제를 가지고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9절은 세 가지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듣기를 속히 하라, 말하기를 더디 하라, 성내기를 더디하라.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에 대해 성내는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명령들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떤 말을 듣든지 속히 들어야 하고 어떤 말을 말하든지 더디게 신중하게 말해야 하며, 어떤 말을 듣더라도 성내는 것과 같이 감정을 표출하는 일에 대해서 절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 명령은 이런 일반적인 생활의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지혜이고 처세술이지만 이 모든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는 타고난 성품 아래에서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20절에서는 왜 성내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도덕적인 순결함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함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말은 사람이 성내는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일을 행한다는 말입니다. 성내는 것은 감정적인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살인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죄의 행동과 연결되고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행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성내는 것을 더디 하는 일은 이런 다양한 죄의 행동을 자제하는 일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일을 행하게 되며 좋아하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성내기를 더디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본론2 : 말씀에 순종하라 (21절-27절)


21절에서는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로 시작되는데, 이 접속사는 앞선 단락인 19절-20절 단락이 아니라 18절 말씀을 이어주는 접속사 입니다. 19절과 20절의 말씀은 그저 삽입된 작은 단락일 수도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2절~18절 단락과 21절~27절 단락을 약하게 이어주는 단락입니다. 18절에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는 선언 이후에 새롭게 태어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제시를 하고 본격적으로 진리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대해서 21절 이후에 다루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로 우리의 새로운 탄생을 표현해야 합니다.


21절에서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은 우리가 직면하는 죄가 얼마나 다양하고 풍성한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악과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죄는 그 다양함과 풍성함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벗어버리고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심어진 말씀은 우리가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 부터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어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어떤 것도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어주시는 말씀을 온유하게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코 내가 잘해서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으신 말씀이 우리 영혼을 구원 받을 자리로 옮겨 주실 것입니다.


22절에서 25절에서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받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밝힙니다. 말씀을 받는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단지 듣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까지 말합니다. 심어진 말씀은 우리를 자동적으로 말씀을 행하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심어진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한다면 스스로 심어진 말씀과 새로워진 마음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말씀을 받은 자는 반드시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고도 자기 모습을 잊어버리는 자와 같습니다. 거울을 들여다 보는 이유는 단순히 자기 얼굴을 보기 위함도 있지만 내 얼굴이 더러워졌는지 옷차림이 단정한지 뭐가 묻은 것이 없는지를 보기 위해서 거울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거울로 자신의 거룩함이나 의로움을 확인하지만 희미하게 보이기 때문에 제대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희미한 거울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린 다면 결코 자신을 단정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들여다 본다는 말은 앞서 거울을 본 사람과의 대조를 나타냅니다. 거울로는 사람이 자신을 단정하게 할 수 없지만, 율법으로는 자신을 단정하게 할 수 있도록 확실히 자기를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았던 그 율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완성한 율법,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가리킵니다. 이 율법은 새언약이며 마음에 심어진 말씀입니다. 이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본다면 율법을 잊어버리지 않고 실천하게 되며 그 행하는 일에 따라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26절-27절은 심어진 말씀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 말씀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며,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율법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은 세 가지로 구성되는데 첫째는 혀를 제어하는 일이고 두번째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이고 세번째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은 경건과 관련되어 있는데 경건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만큼 거룩한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경건을 엄밀하게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최소한의 것이 포함되지 않는 다면 경건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경건하다고 말하면서 혀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헛되게 경건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고아와 과부 같이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도와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닮아가길 권면합니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는 세속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결론 :  말씀을 듣고 행하라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행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받는 다는 것은 듣고 행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흐릿한 거울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아 잘못된 점을 수정하고 올바른 자세로 참된 경건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우리를 들여다 보시고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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