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9일 일요일

조상들을 뛰어넘으려면 (예레미야 22장 13절 - 19절 / 21.09.19)




예레미야 22장 13절 - 19절

13절 :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4절 :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절 :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절 :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절 :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18절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9절 :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제목 : 조상들을 뛰어넘으려면


서론 :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마지막 선한 왕인 요시야 시대부터 유다 왕국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 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요시야 왕을 도와 유다 나라와 앗수르에 망했던 북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을 모아 함께 유월절을 지킬 때에는 누구도 유다 왕국이 멸망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내리신 경고도 저먼 옛날 이야기 같았습니다. 요시야 왕과 같은 사람이 계속 왕이 된다면 유다 왕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에 따라 영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요시야 왕의 통치는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요시야 왕이 애굽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으로 인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유다였지만 요시야 왕이 죽고 애굽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자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요시야 왕 뒤로는 어떤 한 왕이 길게 유다 왕국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 왕의 아들들이 그 순서대로 왕 직위를 물려받으며 유다 왕국을 다스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에 등장하는 여호야김도 유다의 마지막 선한 왕이었던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야김 왕에 대한 고발과 저주와 형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자기 아버지 요시야 왕 만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았고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따라 잘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세상의 기준과 같이 다른 나라 왕이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인 유다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야김 왕이 저지른 죄와 그 죄에 따른 형벌을 선포하십니다. 여호야김 왕에게 주신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전하고 싶으신 뜻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1 : 여호야김의 악행(13절 - 14절)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야김의 악행을 고발하십니다. 여호야김은 나라가 애굽의 침략과 바벨론의 침략에 의해서 어려운 가운데 있지만 자기가 거할 집, 그러니까 궁전을 지었습니다. 유다 왕들이 살전 궁전은 솔로몬 시대에 지었는데, 시온산 기슭에 궁전을 지었고 그 꼭대기에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왕궁이 성전 아래에 위치했다는 말입니다. 왕궁이 성전 아래에 위치한 이유는 왕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대리하여 다스린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여호야김의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여호야김은 자기가 왕이 것을 뽐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다른 인간 나라의 왕처럼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자신의 권위를 높히 세우고 싶어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호야김은 솔로몬이 지었던 궁전을 고치기 시작합니다. 지붕을 높히고 방을 넓힙니다. 궁전 보다 높은 지대에 있는 성전을 따라잡으려는 듯 왕궁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는 애굽과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해 매우 가난하고 부족했지만 공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리한 공사를 진행하는 탓에 여호야김 왕은 공사에 동원되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정한 대로 주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강제 노역을 시켰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인간 왕과 백성의 관계는 주종관계 섬기고 섬김받는 관계가 아니라 이웃 관계 입니다. 모두 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같은 조상을 가진 형제입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나머지 형제와 이웃들에게 가르치고 그것을 지키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호야김은 자신의 생각과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지키는 모범을 보인 것이 아니라 형제와 이웃을 강제로 노역하게 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자기 형제에게 합당한 삯을 주지 않고 강제로 일을 시키는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엄히 금하신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 오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가혹한 노동과 학대를 받던 종살이를 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시고 종이었던 이스라엘을 사셨고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을 자유인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 할 이스라엘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가 그들에게 일을 시킨다면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는 심각한 일입니다. 여호야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겼던 그의 아버지 요시야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본론2 : 요시야와 비교되는 여호야김(15절-17절)


백향목은 이스라엘 왕궁을 지을 때 사용된 고급 목재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왕궁을 지을 때에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지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했듯이 예루살렘에 있는 왕궁은 백향목 숲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백향목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은 왕궁을 개조하고 확장할 때에 백향목을 사용하였습니다. 자신도 다윗과 솔로몬처럼 위대한 왕인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여호야김 왕이 백향목으로 궁궐을 짓는다고 해서 다윗과 솔로몬같은 뛰어난 왕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여호야김은 다윗과 솔로몬은 고사하고 자기 아버지 요시야를 따라 잡기에도 한참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여호야김과는 달리 좋은 음식을 먹거나 마시며 사치를 부리지 않았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형제들에게 합당한 삯을 지불하며 나라의 일들을 해 나갔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간 왕으로 해야 할 일을 모두 잘 지켜 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시야 왕을 크게 기뻐하셨고 요시야 왕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요시야 왕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이 돌보았던 대표적인 사람들이 북 이스라엘 의 유민들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난 뒤, 앗수르도 바벨론에 망하게 되면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떠돌게 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이 때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진 이후에 다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유민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잃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였습니다. 요시야 왕은 가나안 땅을 두루 다니며 여로보암 왕이 지었던 우상들을 철거하였고 남겨진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함께 유월절을 보내면서 다시 하나 된 이스라엘로 회복하였습니다.


여호야김 왕의 눈에는 아버지 요시야 왕이 치룬 성대한 유월절 의식이 왕의 권위를 높히는 수단으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인간 왕으로 마땅히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높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나뉘었던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로 만드시고 다시 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 일에 대한 찬양을 드리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야김 왕은 자기 마음대로 아버지가 준비한 유월절을 받아들였습니다. 왕의 권위를 높히기 위해서, 다윗과 솔로몬보다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삐뚤어진 탐욕에 사로잡혀서 무죄한 피를 흘리기도 하고 백성들을 압박하고 포악하게 다루어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여호야김은 명백히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습니다.


본론3 : 여호야김이 당할 운명 (18절-19절)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시며, 여호야김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죄인 여호와야김을 처벌하실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요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대로 이용하지 않았고 순종함으로 형통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은 성대한 유월절 의식을 치룬 자기 아버지를 따랐고 다윗과 솔로몬 왕의 뒤를 따랐다고 마음대로 착각하고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김에게 그 죄에 합당한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백성들에게 명령하십니다. 형제 여호야김을 위해서 슬퍼하지 말고 통곡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형제가 죽으면 다른 형제들은 그를 위해서 울어주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와의 관계가 어찌 되었던 형제라는 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형제를 위해서 울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능성을 지우십니다. 여호야김을 형제로 여기지 말라는 이야기 입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가 되는 사람이었고 영광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으로 대접하지 말고 그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통곡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야김은 완전히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형제도 왕도 아닌 완전히 무관한 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은 끌려가서 예루살렘 문 밖으로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 문 밖으로 던져지게 된다는 것은 다윗 왕가의 일원인 여호야김에게는 무척이나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역대 왕들이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가 있었습니다. 다윗 왕을 비롯하여 자기 아버지 요시야까지 함께 묻혀있는 왕의 묘지였습니다. 예루살렘 문 밖으로 던져진다는 것은 여호야김이 그토록 세우고자 했던 왕의 권위가 모두 없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야김은 나귀처럼 묻히게 될 것입니다. 왕과 같이 무덤을 만들어 귀하게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죽은 나귀를 급히 땅에 묻어버리는 것처럼 이 무덤의 주인이 나귀인지 왕인지 모르게 될 정도로 여호야김은 아무 의미 없이 죽고 아무 의미 없이 묻히게 될 것입니다.


결론 : 착각과 탐욕과 죽음


지금까지 여호야김 왕에게 내려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자신이 왕이 된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권위를 높히기 위해 궁전을 확장하고 개조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반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착각하고 탐욕을 부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에 합당한 값을 치르게 하기 위하여 여호야김 왕이 왕으로 죽으며 장사지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닌 자처럼 죽고 나귀처럼 묻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어떻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지 알려주십니다. 여호야김은 분명 아버지를 뛰어넘고 다윗과 솔로몬을 뛰어넘는 위대한 왕이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탐욕은 착각 가운데 그를 내몰았고 결국 비참한 죽음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찬양 : 포기하신 예수님, 높아지신 예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야김 왕과 같이 스스로 위대해지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이시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종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이셨지만, 거룩한 성전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않으시고 세리와 창기들과 함께 마시며 먹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이시지만, 스스로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스스로 드려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자신을 비우셨고 비우셔서 어느 누군가의 손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가장 비참하고 참혹한 배신과 혐오와 거부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이 세상 모든 죄에 대한 저주를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부활을 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일은 예수님 스스로 자신을 높히신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포기하시고 비우시고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높히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셨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계시며 모든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셨습니다. 여호야김은 자기에게 맡겨진 왕의 역할을 다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형통하게 하시길,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히시길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야김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예루살렘 성 밖에 던저져 나귀처럼 묻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장사된지 삼 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모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으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장차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주님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되신 예수님의 길을 따르며 여호야김과 같은 착각과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포기하시고 비우시고 낮아지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 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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