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2일 월요일

룻기 3장 1절 - 9절 (21.11.23)

룻기 3장 1절 - 9절

1절 :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절 :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절 :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절 :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절 :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절 :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7절 :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절 :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절 :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제목 : 나오미의 결단


문맥과 배경


모압 땅으로 갔던 엘리멜렉의 가족들은 나오미와 룻만 남아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지만 당장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룻은 나서서 추수하는 밭에 가서 추수하다가 흘린 이삭을 줍기로 하였습니다. 룻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유력한 사람 보아스의 밭으로 가게 되었고 보아스를 통해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보리 추수가 끝나고 이어지는 밀 추수가 끝나던 시기가 되었습니다. 룻이 이삭을 줍기 시작한지 3개월 정도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나오미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룻에게 권면합니다. 이 권면 속에는 나오미라는 한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찬찬히 읽어나가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본론1 : 나오미의 권면 (1절 - 4절)


1절은 보리 추수가 끝나고 이제 밀 추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즈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추수가 끝나면 이제 이삭을 주워 하루하루 살아가는 생활이 완전히 멈추게 됩니다. 나오미는 이 날이 오기 전에 막중한 결정을 내립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가깝게 정말 딸로 여기는 마음으로 룻을 위해서 룻이 안식할 곳을 구하여 복되게 하기 위하여 룻에게 말을 꺼냅니다. 룻과 같이 어린 여자의 몸으로 특히 남편을 잃은 과부의 몸으로 고대 중동 지역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라는 안식할 곳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남편을 구해주기 위하여 큰 결단을 내리고 그 뜻을 전합니다.


2절에서는 보아스에 대해서 다시 설명합니다. 룻은 보아스가 은혜를 베푼대로 시녀들과 함께 머물며 그들과 함께 지내며 베들레헴 생활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그 은혜를 베푼 보아스가 우리의 친족인 것을 다시금 룻에게 깨닫게 합니다. 보아스는 기업을 무를 자 입니다. 엘리멜렉이 모압 땅으로 가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땅을 팔아서 이주할 자금을 마련하였는데, 보아스는 빈털털이가 되어 돌아온 나오미와 룻에게 엘리멜렉이 가졌던 땅을 다시 사들여서 돌려주어야 할 의무를 가진 기업 무를 자였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충분히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다해줄 수 있을 것을 확신 하였고, 이 의무를 행하는 것은 룻과 결혼하면서 부터 시작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와 만나길 명령합니다.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는 보아스에게 찾아갈 것을 명령합니다.


3절에서는 룻이 보아스를 만나기 전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합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나기 전에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어야 합니다. 이 때까지 룻은 보아스를 항상 초라한 모습으로 일하느라 흘린 땀과 밭을 돌아다니며 이삭을 주워서 흙먼지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항상 보아스를 대하여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요구하려는 이 시간에는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보아스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추수를 축하하는 모든 시간이 마칠 때 까지 보이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요구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는 나오미의 요구 입니다. 


4절에서는 룻이 모두가 잠든 시간에 해야 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아스가 잠자려고 누울 때에 룻은 보아스가 눕는 곳을 잘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워야 합니다. 이 행동은 너무나 천박한 행동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룻의 요구를 너무나 명확하게 잘 전달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을 아내로 삼아서 아이를 낳게 하고 죽은 친족 엘리멜렉의 기업을 물러서 그 아이를 통해 엘리멜렉의 이름이 끊기지 않도록 해달라는 명백한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자였지만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어서 보아스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룻을 거둘려고 해도 우선권이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잘 알고 율법에 순종하며 살았던 보아스에게는 룻과 나오미를 거두지 못할 커다란 장애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나오미와 룻을 따뜻하게 돌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추수로 바쁜 시기에 결혼식을 진행할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긴 잔치이기 때문에 추수 때에 마을 사람들과 또한 자기 일꾼들을 혼인 잔치에 동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추수도 끝나가는 시점에서 명확히 자신에게 기업을 무를 것을 요구하는 룻에게 즉각적인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의 과감한 행동을 통해서 룻이 요구하는 바를 깨닫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룻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줄 것입니다. 


본론2 : 룻의 순종 (5절 - 6절)


5절과 6절에는 나오미의 말을 들은 룻이 그대로 나오미의 말대로 순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룻은 신실한 사람이었고 어머니의 말씀에 한 치도 벗어남 없이 어머니의 말씀을 잘 따라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보아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아스는 벌써 성실하게 밭으로 나와 일을 하던 룻의 모습이 안보이는 것을 보고 걱정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다른 일꾼들과 하녀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추수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룻을 걱정하여 찾거나 따로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충분히 룻과 나오미를 돌보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율법의 범위 안에서 나오미와 룻을 먹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어떤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룻 또한 어머니의 명령대로 행하였을 뿐 입니다. 보아스를 이성으로 여기는 다른 마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의 명령에 따라 그리고 결단에 따라 보아스를 남편으로 받기 위하여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본론3 : 보아스의 반응 (7절 - 9절)


7절에서는 보아스가 타작을 끝내고 함께 일하였던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보아스는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누워서 즐거운 마음으로 잠을 청하였습니다. 룻은 보아스를 지켜보다가 보아스가 눕는 곳으로 그의 발치에 덮인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웠습니다. 룻의 행동은 너무나 당혹스러운 행동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이성이 함께 이불을 덮는다는 것은 그리 일반적인 일이 아닙니다. 룻의 행동은 천박한 여자의 행동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간음을 행하는 여자라고 백성들 앞에서 고발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행동은 나오미가 룻에게 명령한 행동이며, 보아스를 남편으로 맞이하려 하는 룻의 마음이 담긴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행하라는 정당한 요구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매우 급진적이었던 점을 빼고서 말입니다.


8절과 9절에서 보아스는 밤 중에 자기 발치에 어떤 한 여인이 누워 있는 것을 느끼고 놀라 잠이 깨었습니다. 잠에서 깬 보아스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 여자에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자기 발치에 누워 있다는 것은 아까도 말했듯이 상당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발치에 누워 있는 여인을 범하거나 그를 사람들 앞에서 음란한 죄를 범했다고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여인이 누구이며 누구이기에 이 일을 행하는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보아스의 마음에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그 사람을 오해하는 일을 줄이려는 사려 깊고 배려심 있는 자세가 베어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의 이런 면을 알았고 룻이 발치에 함께 눕는 일을 하더라도 큰 일이 일어나지 않고 기업을 무를 자의 의무를 받아들이겠다는 사실을 예상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예상대로 룻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고 당황하였으나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룻은 먼저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을 여종이라고 말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자기 하녀들과 어울리도록 했습니다. 먼 이국 땅에서 친구를 사귀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친구를 만들 수 있도록 룻을 자기 하녀와 어울리도록 했습니다. 또한 룻에게 일부러 많은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여러 장치들을 해두었습니다. 비록 이 모든 일은 룻이 알게 모르게 진행되었지만, 룻은 보아스가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과 은혜를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 앞에서 자신을 여종으로 여기며 여종과 같은 낮은 자세로 이야기 합니다. 룻은 당신의 옷자락으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하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옷자락이라는 말은 앞에서 2장 12절에 등장하는 날개와 같은 의미입니다. 2장 12절에서는 보아스가 룻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 룻과 나오미를 보호하시길 축복하였습니다. 지금 3장 9절에서 룻은 보아스의 축복을 되돌려 하나님의 날개가 보아스의 옷자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나오미가 룻에게 가르쳐 준 것도 아닙니다. 보아스의 축복 기도를 받은 사람은 룻 혼자 밖에 없었습니다. 룻은 보리 추수와 밀 추수하는 시기를 지나며 보아스가 말했던 하나님의 날개가 보아스의 옷자락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해 자신에게 안식을 베푸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아스의 옷자락으로 룻을 덮는 일은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의 일을 감당 하면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오미를 통해 명령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고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가 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보아스는 자기 발치에 누워 확실히 자신의 아내가 될 것을 표현하며 기업 무를 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룻에게 적절한 대답을 줄 것입니다.


결론 : 모험 그리고 겸손


우리는 나오미의 과감한 계획과 룻의 무모한 순종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충실하여 자기 친족을 돌보는 보아스를 통해서 나오미와 룻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오미는 보아스를 통해서 안식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보아스 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지만 그가 아니라 보아스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통로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험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모험은 겸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뜻에 순종하며 그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험을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시지만 그 순종은 때로 우리에게 모험일 수 있습니다. 정숙한 여인, 죽은 남편의 시어머니를 따라 먼 이국 땅에서 온 신실한 외국인 과부라는 좋은 이미지를 가진 룻이 잠에 든 남자의 발치에 함께 눕는다는 것은 룻 자신에게 너무나 위험한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룻은 순종합니다. 룻에게 먹고 자고 사는 것 모두 자기의 이미지나 명성, 보여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끊임없이 겸손하게 하시며 자기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뽐내시려고 생색내시려고 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길 원하는 뜻 가운데 우리에게 자기 은혜를 드러내시고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은혜와 긍휼히 여기심을 보고 겸손하며 모험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험과도 같은 순종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긍휼히 여기심이 얼마나 깊은지 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날개 아래에 품으시고 보호하시며 복 주시길 끊임 없이 영원토록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와 복 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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