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2일 월요일

마가복음 5장 7절

마가복음 5장 7절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본문을 읽으면서 귀신이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생각난다. 전능자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 귀신 앞에 섰다. 귀신은 군대라고 스스로를 이름 짓는 귀신이며, 거라사에 사는 한 사람에게 붙어 그를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자기 몸을 상하게 하고 소리를 지르며 산과 무덤 사이에서 돌아다니게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무서워 하여서 쇠사슬로 통제하려고 하였지만 그는 그 쇠고랑과 쇠사슬을 끝고 고랑을 깨뜨렸다. 귀신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두려워 하는 사람의 경외심을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숭배하게 하지는 못했다. 아무도 두려워서 그 사람에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된 습성은 불가해한 힘, 불가해한 존재를 이해하려고 하려는 교만함이며, 그것을 이용하려고 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잘 드러난다. 옛부터 신을 섬겼다고 하지만, 신을 섬기는 것은 허울일 뿐 제물과 신이 기뻐하는 일을 함으로 신이 인간에게 유익한 일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앞섰다. 인간은 자신을 지독히도 사랑하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이 움직이길 바라는 이기적인 존재이다.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군대 귀신은 그저 두려움의 대상이고 내버려두어서 자신에게 피해가 없도록 거리를 둘만한 상대일 뿐이다. 군대 귀신은 자신을 숭배하거나 이용하게 하여 그들을 다른 길로 이끌지 않았다. 그저 씌인 그 사람을 괴롭힐 뿐이었다.

거라사 귀신의 경우, 다른 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못했다.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가 만난 귀신은 예언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었다. 그러니 귀신을 쫓아내었을 때,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거라사의 귀신은 두려움만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쫒겨날 때에도 돼지를 이천 마리나 수장시키는 피해를 끼쳤다. 이 귀신은 자신의 어떤 유익을 원하지 않았던 것만 같이 행동했다. 그저 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 이 사람을 통해 자신을 무서워 하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다. 그를 괴롭히는 것으로 얻을 어떤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이 귀신은 죄인을 넘어서 자신의 악독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

한 가지 유익이 만들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유익을 이루셨다. 귀신을 제거하심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유일한 구세주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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