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6일 금요일

오직 의지할 분, 여호와 하나님 (에스겔 34장 1- 16절)

서론  : 의지할 곳 없는 우리

모든 것이 무너진 시대, 어떤 것도 소망할 수 없던 시대, 선지자 에스겔의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 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남유다 왕국이 무너져 가던 마지막 그 순간에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선지자 였습니다. 그는 바벨론 제국의 델아빕에서 선지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바벨론에 끌려온 포로의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남유다의 멸망은 이미 기정 사실이었지만 아직 남유다에 남겨진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에 대항할 수 있다는 이상한 확신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은 자기 조국과 민족을 보며 슬퍼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신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이며,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희망 없던 포로 생활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에스겔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자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자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까?


첫번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설명] 오늘 말씀 중 1절과 6절에 등장하는 목자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위임 받아 다스리는 이스라엘 왕을 가리킵니다. 에스겔이 34장 말씀을 예언할 당시의 왕은 시드기야 왕으로 우리가 알고 있듯이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과의 두 번째 전쟁에서 지고서 끌려간 여호야긴 왕을 대신하여 왕위에 올랐습니다. 눈 앞에서 자기 조카가 바벨론 왕의 포로로 잡혀가는 꼴을 보았지만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에 대항하기로 마음먹었고 애굽 왕이 주도하는 반 바벨론 연맹에 가입하였습니다. 


당시 남유다에서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시드기야 왕은 자기 생각과 뜻을 따라 썩은 갈대와 같은 애굽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마치 양 떼를 돌보지 않고 그들이 다치든지 상하든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는 목자와 같았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에게 대항하면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이나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그는 불성실하고 이기적인 목자였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자기 뜻을 따르지 않는 백성들을 포악으로 다스렸습니다. 포악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이방 나라 왕이 폭력과 학대를 사용하여 다스리는 형태를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사사기 3장에서 가나안 왕 야빈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포악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드보라와 바락을 보내셔서 그들을 쫓아 내셨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의 직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 같이 힘과 권력으로 백성을 찍어 누르며 이방 나라 왕과 같이 남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흩어지고 다른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방 신을 섬기는 자리인 높은 산과 높은 멧부리로 가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불성실하고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악한 목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악하고 이기적이고 불성실한 목자를 자기 양 떼를 위해 해고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목자가 돌보고 있던 양 떼는 목자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자를 고용하시고 그로 하여금 잘 돌보도록 하셨을 뿐이지 목자는 양 떼에 대해서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오직 양 떼에 대한 권리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증명) 하나님께서 자기 양 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실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구원하셔서 자기 양 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구원을 받았고 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가운데 완성되어 죄와 사망에서부터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기 백성 삼으신 은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크신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용서치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고 자기 아들을 버리시기까지 구원하신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우리는 가끔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나만 자기를 책임진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 되시고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소유권을 주장하기에는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자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까?


둘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설명] 하나님께서는 불성실하고 이기적인 목자 아래 있던 양 떼를 위하여 스스로 목자가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양 떼를 목자에게 맡겨 먹이게 하셨지만, 양 떼를 향한 시선을 놓지 않으시고 그들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 어디로 흩어져 버렸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모두 알고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 떼를 아끼시며 기억하여 주시며, 사랑하십니다. 자기 배 불리기에 급급하고 양 떼가 어디로 흩어지는지 관심 없는 이기적인 목자를 대신하여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목자는 로이라고 합니다. 로이는 먹이다 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인데, 말그대로 목자는 자기가 맡은 가축을 먹이는 역할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심판 받은 불성실하고 이기적인 목자는 목자의 기본적인 역할도 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 배만 채운 자였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계속 지켜보셨습니다. 양 떼가 당하는 고통이 어떤 고통인지 살펴보셨습니다. 목자들이 해주지 못한 일들을 하나하나 세셨고, 그 일들을 기억하여 백성들에게 해주길 원하셨습니다. 흐리고 캄캄한 날이 오더라도, 이방 민족으로 둘러 쌓여 있다하더라도 그들을 살피시겠다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 방법은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가 방치당하고 아픔 당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하시고 그 일들을 갚아 주실 것입니다. 목자들은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찾으실 것입니다. 쫓기는 자는 돌아오게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 떼를 골고루 그들의 먹을 만큼을 정의롭게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강하거나 살진 양이 있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양 떼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목자 아래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증명]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잊고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애굽 땅에서 고통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실 때에도 마찬가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보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먼저 들으셨습니다. 출애굽기 2장 2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 가운데 내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계획을 시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 떼를 주목하시고 돌보십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 목소리를 들으시고 우리 상태를 살펴보십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아픔과 고통을 모두 기억하시고 때가 될 때 그것을 모두 갚아 주실 것입니다. 악한 목자들을 벌하시기 위해 그들의 악행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과 결핍을 아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채우시기 위하여, 우리를 먹이시기 위하여 우리를 지켜보셨습니다. 악한 자보다 악한 자에게 괴롭힘 당하는 자기 백성에게 먼저 시선이 가 있으십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의지하며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자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까?


셋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설명] 하나님께서 불성실하고 이기적인 목자를 대신하여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십니다. 그리고 친히 우리의 결핍과 아픔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양 떼를 이스라엘 산 위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 시대는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망하여 앗수르에 의해서 온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또한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서 두 차례나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양 떼는 흩어졌고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참된 안식을 약속 받았던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들 사이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고통받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친히 목자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자기 백성의 고통과 괴로움을 갚아주겠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 양 떼를 이끌어 이스라엘 산으로 인도하여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시기까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구체적인 모습을 산 위에 누워 있는 양 떼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들은 배불리 먹고, 충분히 마시며, 어떤 위협도 없이 평안히 자기 자리에 누워 온전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양 떼를 인도해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양 떼는 흐리고 캄캄한 날에 만민 가운데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 떼를 사랑하는 목자로서 이 일을 반드시 해내실 것입니다. 흐리고 캄캄한 날은 구름이 가득 끼여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날을 의미합니다.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쏟아질 것 같은 그런 날에도 우리의 참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있는 자기 양을 찾으시고 구출해 내실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 떼를 모으시고 참된 안식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증명] 우리는 참된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목자를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을 보시며 목자 없는 양 같이 여기시고 그들의 아픔과 약함을 고치시고, 그들을 지배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며,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채우시고 말씀을 가르쳐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던 그 날은 흐리고 캄캄한 날이었습니다. 흐리고 캄캄하던 그 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참된 목자께서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우리의 참된 목자가 예수님이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은 결코 예수님과 같을 수 없습니다.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목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세상은 요란하고 참된 지도자를 찾을 수 없을 지라도 우리는 참된 목자 아래 있는 양인 것을 감사하며, 참된 목자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당시 오실 것이라는 그 약속을 굳게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하시고 참된 안식으로 이끄실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을 믿고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 오직 의지할 분, 우리 주인

세상은 참 시끄럽습니다. 마치 태풍이 와서 요란한 비를 뿌리며 큰 바람이 부는 소리처럼 시끄러워서 어쩔 때는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을 거 같은 그런 어둡고 어두운 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짐나 우리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우히 하나님의 양 떼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시고 내가 어디로 가던지, 어떤 일을 당하던지 살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갚아 주실 것이며, 우리를 온전한 안식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셔서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주신 이 사실만으로 우리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참된 평안을 누리는 귀한 성도님들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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