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요일

대학생대회 둘째날 경건회 요약

잔인한 세상 긍휼의 목자


먼저 복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가지를 먼저 정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저녁 말씀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말씀을 붙들어야 하는지 나눠 보시길 바랍니다. 추천 받은 지원자를 톨해석 둘째날부터 참여한 친구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용기를 내어 잘 나눠주어서 감사합니다. 전체를 위해서 좋은 이야기를 나눠주셨고 저에게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꺠진 쪽박도 비가 억수 같이 오면 바가지에 물이 찹니다. 세는 것보다 쏟아 붓는 것이 많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와도 차지 않는 바가지가 있습니다. 엎어놓은 바가지는 절대 차지 않습니다. 바가지가 하늘을 향하지 않으면 물이 차지 않습니다. 우리의 바가지를 엎어놓지 말고 하늘로 열어두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말씀 하나만 붙들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이 땅 위에 온전히 임할 때까지 우리 일생을 주관하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되는 대학생대회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키나와 섬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두 여고생이 걸어가고 있어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딱 한 마디를 했더니 너무 좋아하고 나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했을까요? BTS 한 이름을 말하니 두 소녀는 기뻐하고 서로 사이에 있던 벽이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이름 하나에 어마어마한 힘이 있습니다.


오늘 2,000년 역사 동안 가장 위대한 이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이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이름이 사람을 기쁘게 하고 위로와 희망을 주고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하나 되게 합니다. 이 이름을 위해 자기 삶을 헌신하려고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똑같은 세상이었지만 세상이 달라보이며 구름에 떠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대학교 때 진로를 결정하며 예수님을 더욱 알기 위해서 신학교를 지원하였습니다. 오늘 제 목표는 오늘 밤 제가 좋아하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그를 섬기도록 결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교회에 다닐 때,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대학원을 위해 올라온 자매였고 신실한 자매여서 모두가 사랑한 자매였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기도했습니다. 자매는 원하던 직장에 취직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축하했습니다. 오랜만에 교회에서 자매를 만나게 되었고 원하던 직장에 다니니 행복하냐고 인사차 물었습니다. 자매는 제 질문을 듣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자매는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자기 위의 상사 한 분이 배워준 것도 없는데 못한다고 자신을 무시해서 너무 힘들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자매가 경험한 대로 무자비하고 잔인한 세상입니다.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고 내 인격을 무시하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내 인격 자체로 존중해주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르바이트 해고 사유를 알지 못하고 해고 되는 경우가 30%가 넘는다고 합니다. 필요에 저는 좋아했던 중학교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 입학에 실패했을 때 그 선생님은 말은 안했지만 저를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선생님도 나를 존재 그대로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자기 인격 자체로 여겨주지 않으므로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왔을 때,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불안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헤롯이 불안한 이유는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자기 왕위를 빼앗길까봐 두려웠습니다. 백성들은 헤롯의 불안감이 어떤 못된 짓을 만들어 낼지 불안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불안하고 두려운 상태였습니다.


헤롯은 매우 잔인한 사람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경배하고 자기 나라에 바로 돌아가버리자  베들레헴의 아이들을 모두 다 죽였습니다. 헤롯의 잔인함은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아도 잘 나옵니다. 헤롯은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부인인 마리앙과 두 아들을 반역을 계획한다는 소문만 듣고 확인하지 않고 죽였습니다.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도 헤롯의 잔인함을 물려 받았습니다. 아켈라오도 유월절에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만 듣고 군대를 모아 삼 천 명을 학살하였습니다. 아켈라오는 소문 한 마디로 자기 백성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겼습니다. 이 왕 아래에 있는 백성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을까요? 바로 이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여기는 잔인한 왕의 시대에 네가 소중하다고 이야기 하시는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오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목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로 목자인 왕이 양인 백성을 먹이고 인도하고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붙힌 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로 오셨기에 자기 백성을 먹이고 인도하고 지키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를 목자 기독론이라고 합니다. 에스겔의 예언으로부터 시작하여 요한복음과 마태복음에서 목자이신 예수님을 잘 설명하여 줍니다. 마태복음은 잔인한 세상 속에서 우리를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지키시는 목자이신 예수님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자세를 취하셔서 자기 백성을 먹이고 인도하고 보호하십니다. 


첫 번째 목자의 자세는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목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은 인격 자체로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기계와 같은 현대사회를 살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위해서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목자가 되십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하십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잔인하고 사람들은 우리를 무시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소중하게 생각하십니다. 너는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씀해주십니다. 내가 너를 찾아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왔을 때 춤을 추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린이가 다가오면 귀찮다고 하고 맹인이 소리지르면 시끄럽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귀찮다고,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들을 꾸짖으시고 그들을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에게는 작은 어린이나 하찮은 맹인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를 보면 고래를 잡는 독특한 방법이 소개합니다. 고래를 잡기 위해서는 새끼 고래를 노려 공격해야 합니다. 다른 고래는 공격 받은 것을 보고 피하지만 어미 고래는 상처 입은 새끼 고래 주변을 돌고 있다고 합니다. 죽는 줄 알면서도 말입니다. 새끼를 소중히 여기는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에 죽을 줄 알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죽음보다 강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기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예수님을 통해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번째 자세는 불쌍히 여기는 목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아파하며 안타깝게 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마음이 창자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불쌍히 여길 때 창자가 끊어지도록 아픔을 느낀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한국어로 표현하면 애가 끓다라는 표현과 유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에 병을 고치시고 먹이시고 용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보시고 그저 그냥 채워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아픔을 직접 느끼시며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 자세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목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양들의 죄를 대신해서, 그 죄의 댓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대신 심판 받으신 목자이십니다. 나를 대신해서 댓가를 지불하시고 나를 자기 소유로 삼으셔서 나의 목자가 되셨습니다. 


이 세 가지가 자기 양을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목자의 자세입니다. 


어느날 식료품 매장에서 쇼핑을 하던 중, 주인 없는 카트가 많이 보였습니다. 분명 카트 안에는 상품이 있었지만 주인이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주인이 자기 카트를 신경쓰지 않고 매장을 돌아다니며 쇼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산대를 지나면 카트에 있는 상품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값을 지불하고 자기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님께서 값을 치루어 소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떼지 않고 자켜주실 것입니다.


세상은 무자비하고 사람들은 잔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소중히 여시기시며, 불쌍히 여겨주시고, 값을 치루어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눈을 떼지 않으실 것이라 말씀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이야기 입니다. 


목자로부터 소중히 여김 받고, 불쌍히 여김 받고, 눈을 떼지 않는 돌봄을 받는 양은 티가 납니다. 마지막 날에 목자는 자기 양을 구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소중히 여기셨듯이 형제자매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예수님의 양의 특징입니다. 그 사람이 형제 자매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가 어떤 양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왕으로 삼아주시므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기 퍼져 나가게 됩니다. 양들의 공동체는 긍휼의 공동체가 되어 그 공동체는 평안하게 됩니다. 나를 존귀하게 여기신 분께서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목자 예수님을 따라가는 긍휼의 공동체로 우리를 세워가도록 합시다. 


우리 함께 목자 예수님의 사랑과 목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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