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종족의 출현
지난 이야기를 요약해보자면,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상을 바꾸고 뒤집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가장 작은 작은 자를 섬기고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나누는 것이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 나라 입니다.
경상도 남자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무뚝뚝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라도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넉넉함과 너그러움 입니다. 충청도 사람의 특징은 느립니다. 비교적 느리다는 이야기 입니다. 심지가 굵고 뚝심이 있어 한 번 정한 마음 준 사람에게 마음을 거두지 않습니다. 각 사람에게 특징이 있듯이 그리스도인도 어떤 특징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안디옥 교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탄생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지은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폐쇄적인 유대인들과는 다르고 개방적인 헬라인들과는 달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여서 그리스도를 부르고 나가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이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강력한 전파를 통해 나타난 새로운 종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세상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새로운 종족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인의 후예입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인의 특징 세 가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특징은 세상 사람들과 위기 대처 능력이 다릅니다.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위기의 이면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엄청난 그리스도인의 핍박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먼 이방 지역인 안디옥까지 갔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들은 실패자 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오히려 세상의 비웃음 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환난이 안디옥의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이 없으면 바나바도 없고 바울도 없습니다. 소아시아의 복음화도 로마의 복음화도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실패가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실패는 하나님의 성공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대처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고난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음의 눈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당할 때, 재수 없다고 팔자를 원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 했습니다. 고난 이후를 믿음의 눈으로 말합니다.
제가 서울에 설교할 일이 있어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는 행신역으로 가는 기차였고 사람들 대부분은 서울역에서 내렸습니다. 앞에 서 있는 초등학생이 우리가 내리지 않았는데 기차가 출발하면 어떡하냐며 불안해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손님이 내릴 때까지 기차가 출발하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시선이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보는 시선입니다.
주님이 뜻하시는 일을 헤아리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랑과 말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만들어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게 만듭니다. 이 믿음이 세상과 충돌을 일으켜 새로운 종족을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기쁨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나바가 기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안디옥의 복음이 전해져 사람들이 회심하기 시작한 일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뻐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기쁨의 코드가 다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그리스도인의 세 종류의 기쁨이 있습니다. 첫 번째 기쁨은 누가복음 10장 20절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네 안에 있는 믿음 때문에 기뻐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기쁨은 누가복음 15장 6-7절에 나오는 기쁨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을 찾는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쁨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것보다 기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하실 때 잔치라고 표현합니다.. 잃은 것을 찾았을 때, 극상의 기쁨을 잔치로 표현합니다. 이 잔치는 춤을 추는 잔치입니다. 우리는 잔치에 초대를 받아 함께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느꼈던 기쁨이 바로 이 기쁨입니다.
세 번째 기쁨은 누가복음 6장 22-23절에서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으로 인하여 하늘의 상급, 하나님의 인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즐거워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 서로 받은 기쁨을 알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자기가 노력하여 이룬 성과에 대해서 기뻐합니다. 누가복음 사도행전에는 이런 종류의 기쁨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기쁨은 다른 종족들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 그리스도인만이 누리는 신령한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는 것으로 기뻐합니다. 다른 이에게 믿음이 생기는 것으로 기뻐합니다.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 받은 것으로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기쁨의 종류가 다른 사람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태도로 사람을 대합니다. 바나바가 사람을 태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애서 모든 사람을 만나 믿음을 굳건하게 하도록 믿음을 격려했습니다. 바나바는 모든 사람을 만나 믿음을 격려했습니다. 오직 사람을 믿음의 관점으로 보았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에게는 믿음을 말하고 믿음 있는 사람은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말을 했습니다. 바나바는 심지어 사울을 다소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사울을 꺼리며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것을 보지 않고 오직 믿음의 눈으로 사람을 보았습니다. 피부색도 신분도 나라도 상관없이 믿음의 눈으로 사람을 대했습니다 .
바나바의 시선은 안디옥 교회 시선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가 등장합니다. 바나바는 정통 유대인이며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 출신입니다. 흑인 시몬, 구레네 사람 구기오 입니다. 북부 아프리카 사람입니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젖동생은 왕자를 교육할 때 함께 교육시킨 귀족을 말합니다. 사울은 유대인이지만 기독교를 박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다섯 사람들이 모여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오직 사람을 믿음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안디옥 교회가 복음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종족은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온유와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종족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이런 이상한 종족의 공동체 입니다.
이런 교회를 세워나가는 우리 학생신앙운동원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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