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8편 1절 - 14절
1 [고라 자손의 시 곧 노래]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3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4 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5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6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7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8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 (셀라)
9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11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12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 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
13 그의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의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14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제목 : 무너지지 않는 성
믿음을 따르는 고난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에게 세상은 얼마나 많은 시험과 고난을 주는지 모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예배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차별과 핍박과 법적 조치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너희는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십대 청소년들과 이십대 청년들이 또래 친구 모임에서 나는 교회 다닌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직접 밝히는 일이나 티를 내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의 상황 속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히는 일은 그 모임 안에서 소외감을 만들어내고 안좋게는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은 이토록 어렵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으로서, 다른 이웃나라와는 다른 신을 섬긴다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시편 48편은 이러한 상황과 형편을 견디는 하나님의 백성의 노래입니다.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당한 자기 백성을 위해 어떤 일을 하시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그리고 예루살렘
시인은 시편 48편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찬양 받기에 합당하시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위대하다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 그 능력이나 업적이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업적은 위대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그 중에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신 그 능력과 업적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시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위대하다는 말을 해석해도 별 무리는 없지만, 시인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위대하다의 문자적 의미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대하다는 말은 클 위자에 클 대를 합쳐서 만든 말로, 크고 크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땅 위에 서 있고 하늘 아래에서 다니지만, 하나님께서는 크고 크셔서 무엇도 그 분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어떤 공간도 심지어는 시간도 위대하신 하나님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무소부재 하신 분,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찬양합니다.
공간과 시간을 뛰어 넘어 위대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제한된 감각과 인지 능력으로는 도저히 알아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우리 앞에 나타나시고 말씀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장소를 정하시고 그 곳에서 자기 백성과 만나고 교제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이 오늘 시인이 노래하는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성 시온 성 즉, 예루살렘입니다.
시온 산은 그 부근에서 가장 크거나 높은 산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곳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두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곳에서 자기 백성들과 만나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크고 크셔서 어떤 것에도 담기지 않으시는 분이 예루살렘이라는 한 도시, 그 도시 가운데서도 성전이라는 한 건물, 그리고 그 건물에도 단 한 군데 지성소, 지성소 중에서도 언약궤 위에 조각된 그룹의 날개 사이에 거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자기 백성과 지키려고 그들의 찬양을 듣고자 그 곳에 성전을 짓게 하시고 다윗과 솔로몬이라는 큰 왕을 주셔서 그 땅을 지키고 가꾸게 하셨습니다.
왕들의 계획
하나님께서 계시기로 한 시온은 여러 이방 왕들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시온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길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과 아람,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근동 지방의 패권을 다투던 나라들은 예루살렘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거듭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일이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으며, 제국의 지배를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노리는 많은 강대국이 있었지만, 예루살렘은 쉽게 점령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은 많은 산들로 둘러쌓여 있어 쉽게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고원지대에서 가장 약점이 될 수 있는 식수 문제도 성 안에 물을 공급 받을 수 있는 샘이 있어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지만, 예루살렘은 18개월 이상을 버텼습니다. 결국 성벽에 구멍을 뚫은 작전으로 점령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말 그대로 난공불락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방 왕들은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에 금방이라도 점령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 지방의 전쟁은 사람과 사람 간의 전쟁이기도 하지만 신과 신의 전쟁이었습니다. 어느 민족이, 어느 나라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잘 섬기는지, 그 잘 섬기는 신이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들은 더 많은 신을 섬기길 원했고 그들의 힘을 얻기 위해 영토 곳곳에 신을 섬기는 산당을 만들고 산당 안에도 여러 우상을 세우고 제사장을 많이 뽑아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이방인들과는 다르게 이스라엘은 신을 정성스럽지 않게 섬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단 한 분의 신만 섬기고 단 한 곳에만 성전을 세우고 산당을 없앴습니다. 또 제사장도 레위 족속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만 제사장으로 삼아서 그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생각하기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거의 무신론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의 신은 그들은 지켜주지 않을 것처럼 여겼습니다. 왕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지 않을 것이니 난공불락의 예루살렘이라도 함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다
왕들은 그럴 듯한 근거로 예루살렘을 쉽게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왕들은 자신에게 조공을 바치는 왕까지 불러서 예루살렘을 치려고 군사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신 것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 하여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히스기야 왕 때 이루어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기세를 올려 근동 지방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남유다로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앗수르의 왕은 산헤립이였고, 남유다의 왕은 히스기야 였습니다. 산헤립은 큰 군대를 보내어 유다의 성읍들을 차지하였고 마침내 예루살렘 앞에 군대가 도착하였습니다. 산헤립은 자기 신하 랍사게로 하여금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항복을 요구하도록 했습니다. 랍사게는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앗수르 방언이 아닌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쳤습니다.
랍사게가 전한 앗수르 왕의 말을 정리하면 세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히스기야 왕을 믿지 말라 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 비하여 싸울 계략이나 용맹이 없는 자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두번째는 애굽을 믿지 말라는 말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하여 애굽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앗수르의 입장에서 애굽 군대는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이 약했습니다. 세번째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을 믿지 말라는 말입니다. 히스기야가 다른 산당과 제단을 없애고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예배하라고 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우시기는 커녕 오히려 그 땅을 쳐서 멸하라고 하지 않겠나고 말했습니다.
앗수르 왕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친히 군대를 이끌어 이미 여러 나라와 민족의 군대를 무찔렀습니다. 또한 유다를 구원하기 위하여 올라 오던 구스 왕 디르하가가 이끄는 애굽 군대도 격파하였습니다. 산헤립은 자신만만하게 외친 것처럼 싸울 계략과 용맹이 충만하고 애굽 군대는 앗수르 군대에 비하면 상한 갈대와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산헤립이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만군의 여호와시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모르는 산헤립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 앞에 스러진 수 많은 민족들의 신들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히스기야에게 경고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항복을 권고하는 최후통첩을 받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그 글을 펼쳐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어 응답하셨습니다. 앗수르 왕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하고 방패를 가지고 성 가까이에도 오지 못하고 흉벽을 쌓고 공격하지도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중에서 나타나 십팔만 오천 명을 쳤습니다. 산헤립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음을 알고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돌아갔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두신, 자기가 선택하신 그 성 시온을 지켜주십니다. 산헤립 왕과 같이 수 많은 군대를 끌고 와도 하루 밤에 그들을 쳐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또한 다시스의 배가 몰려와도 하나님께서는 그 배를 깨뜨리실 것입니다. 다시스는 지중해에 위치한 섬으로 예루살렘과는 굉장히 멀리 떨어진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다시스의 배는 그 먼 거리를 항해하기 위해 왠만한 폭풍에도 끄떡없는 튼튼한 배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 튼튼한 배도 하나님께서는 동풍을 일으켜 깨뜨리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어떤 종류의 공격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시온은 중요한 지점에 위치해 있었지만, 시온 산 자체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곳 입니다. 시온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골짜기가 깊어 쉽게 접근할 수 없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특별히 높거나 낮지도 않았습니다. 성 안에 물을 공급할 샘이 있지만, 그 샘은 공격 당할 약점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을 소탕할 때에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기습 공격하여 성공하였습니다. 철저한 준비와 맞설 용기를 가진다면 함락시키지 못할 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을 왕들이 함락시킬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떨며 지나갑니다. 왜냐하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성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성을 자기 이름을 둔 성으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이유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신명기 7장 7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에는 이유나 조건이 없었습니다. 이유나 조건을 따진다면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어 사랑할 만한 구석이 없던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종으로 태어나 종으로 살고 종으로 죽을 운명에 처한 이스라엘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어떤 것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모압 땅을 지날 때,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발람은 아마 이방 신을 섬기는 선지자였지만, 많은 신을 섬기는 중에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는 선지자 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발람은 발락의 부탁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애를 썼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보내셔서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합니다. 민수기 24장 5절에서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긴 광야 생활을 지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발 하나도 해지지 않도록 보호하셨다고는 하나,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 옷차림과 행색으로 40년 가까이를 광야를 떠돌며 다닌 사람들이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놓은 장막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이스라엘의 어떤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시온의 모습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루살렘은 큰 성도 아니고 높은 성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신 성이고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또한 구원하시는 그 손길을 시온을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시인은 시온을 돌면서 그 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보라고 말합니다. 니느웨나 바벨론 같이 큰 성과는 비교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 약하고 작은 것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죽을 때까지 그의 인도를 기뻐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대로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시온과 함께 하시고 지키신다는 이 기쁨의 찬송을 듣고 하더라도, 실제로 우리 앞에 어려움이 닥친다면, 실제로 우리 앞을 가로 막는 자들이 나타난다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이는 문제가 나타난다면 우리 믿음은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는 쉽게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여유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돌아봐주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고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온 성의 생김새와 시설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로 지키셨고, 지금도 지키시며, 앞으로도 지키실 것을 후세에 전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온 성은 오늘은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과 보호를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 말씀대로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일하여 주시겠다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말씀대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는 아들을 보내시려고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어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셨습니다. 나사렛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조롱을 받던 아주 시골 동네였습니다. 그 곳에 사는 아주 평범한 결혼을 앞둔 마리아를 찾아가셨습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말을 듣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낳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가브리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 말씀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천사 가브리엘이 묘사하는 모습은 마치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뒤 그 위에 구름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과 유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그 곳에 지어진 성전을 인정하시고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덮였듯이, 마리아라는 개인을 택하시고 그 택하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덮일 것입니다. 따라서 시온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그 성을 사랑을 하고 보호하셨듯, 마리아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그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에게 덮으실 때에 마리아는 그 안에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의 종착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서 완전히 구현된 말씀 그 자체이신 존재이십니다. 말씀이 마리아의 안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리아에게 임하신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과 동일한 성령님이신 것을 압니다. 이 말은 곧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여 말씀을 그 안에 품었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품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여기서 더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그냥, 주어진 상황대로, 흘러가는 상황 가운데서 잉태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장의 말씀을 좀 더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장 36절에서 37절입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리아에게 일어날 일이 그 전에도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만하고 하나님의 능력은 그 말씀대로 능히 이루실 만한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과 요구, 명령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사랑을 통해 나중에 될 일 혹은 지금 당장 이루실 일에 대한 확신을 물으십니다. 마리아는 이 질문에 대해서 간결하게 또한 변하지 않는 그 마음을 표현합니다. 누가복음 1장 38절 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고백을 시작으로 마리아는 그 안에 말씀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 짧은 고백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그 말씀대로 이루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았던 시온 성을 보며 하나님에 대한 확신의 찬송을 올렸던 그의 옛 조상들과 동일한 믿음이며, 우리 가운데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도 가져야 할 귀한 고백입니다.
무너지지 않는 성! 시온 성, 그리고 우리의 확신
지금까지 시편 48편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족 중에서 가장 적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주변 산들과 비교하여도 별로 뛰어나지 않는 시온 산을 택하셔서 사랑하시고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떠났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셨다고 말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온의 망대와 그 성벽을 보아야 합니다. 그 성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떠나갔던 왕들의 얼굴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택하셔서 사랑하시고 보호하셨듯이, 우리 또한 택하셔서 사랑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 안에 말씀을 품게 하십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무너지지 않는 시온 성입니다. 이미 완성된 계시, 이 성경 말씀을 우리 안에 가득 채우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가지시길 소원합니다. 우리는 이미 말씀이 한 여인의 몸에 임하여 육신을 입었던 그 큰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건은 단 한 번 일어난 일이지만, 여전히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말씀을 품게 하십니다. 이토록 지극한 사랑과 보호를 충만히 누리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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