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9일 일요일

백성들의 죄악 / 호세아 4장 11- 19절

호세아 4장 11- 19절

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12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13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14 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15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16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17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18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19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백성들의 죄악


북이스라엘에 만연한 죄악


호세아 선지자는 떠나간 고멜을 돈을 주고 사서 다시 되찾아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고멜과 같이 음행하며 하나님 앞에 순전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다시 찾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찾으시겠다는 약속이 지금 이스라엘이 범하는 음행에 면죄부를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시며 그 근원을 밝혀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근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쳐야 할 제사장들을 꾸짖으시며 그 행위대로 갚으실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제사장에 대한 고발이 끝나고 백성들을 향해서 고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끝내 죄를 짓고 마는 어리석은 백성들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들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더러운지 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도록 합시다.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음행과 포도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음행과 포도주는 일상 생활 속에서 바람을 피거나 포도주를 마시는 상황을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스다롯을 섬기는 신전에는 신전 창녀들이 있어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스다롯을 예배하는 행위였습니다. 이 행위를 통해서 밭에 비가 뿌려지고 심긴 작물들이 잘 자라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포도주는 신과 접촉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취하게 되는 그 몽롱한 상태를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상태로 여긴 것 같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의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도 전제를 통해서서 포도주를 받으셨지만 제사장들은 제사 중에 포도주와 독주를 입에 대지 말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맑은 정신으로 그가 정하신 절차와 과정 가운데 제사의 모든 절차 자체를 받으시고 제물을 받아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함으로 음행과 포도주에 그들의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음행과 포도주로 말미암아 나무와 막대기를 섬겼습니다. 물론 그 나무와 막대기에게 그럴 듯한 이름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과 비슷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나무이고 막대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나무가 자기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 믿고 기도하기도 하고 막대기가 응답을 주었다고 여기며 나무와 막대기를 마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듯 섬깁니다.


우상을 섬기는 장소는 어디에든 있었습니다. 야트막한 산 꼭대기라면 어디든 그곳에 산당이 지어졌고 푸르고 넓은 나뭇잎이 있어 그늘이 크게 지는 어떤 나무 아래에서든지 산당이 만들어졌습니다. 오직 예루살렘과 성전에서만 예배를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했으나 음행과 포도주로 말마임아 자기 마음대로 예배할 수 있는 우상을 선택했습니다.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음행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의 신전에서 봉사하는 여자들이 먼저 벌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들이 신전에서 창기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더 죄가 많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음행하는 여자들 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결국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징계를 받아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길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한 그들이 자기 죄에 대한 벌을 온전히 받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죄에 대한 온전한 벌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내버려 두기로 하셨지만 가만 두지 못할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일은 자신들이 짓는 죄를 남에게도 짓도록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유다를 유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 길갈에도 가지 말고 벧아웬에도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고 난 후, 처음 가나안 땅에 진을 쳤던 땅입니다. 그 곳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 개의 큰 돌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가나안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할례가 있었고 총 3차에 걸친 땅 분배 과정 중 두 번째 땅 분배가 길갈에서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굉장히 의미있는 성지였습니다. 벧아웬도 마찬가지 입니다. 벧아웬은 우리가 익히 아는 벧엘과 아주 가까이에 있는 지명입니다. 벧엘도 야곱이 세운 돌기둥과 함께 아브라함이 세운 제단도 있고 사사시대에는 언약궤가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곳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성지였습니다.


길갈과 벧아웬 이 두 성지는 옛날의 명성을 잃어버리고 북이스라엘 우상 숭배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발하신 모든 행위가 길갈과 벧 아웬에서 일어났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성지를 방문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려고 그곳을 찾고 싶었을 것이나 이제 길갈과 벧아웬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정적인 영향을 막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므로 버려 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 양과 같은 남유다와는 함께 두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결말은 정해져 있습니다. 폭풍과 같은 강한 바람이 날아가는 새의 날개를 싸버린다면 추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죄를 깨닫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 이스라엘은 강한 바람을 타고 가는 새처럼 추락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끄러움과 죄를 알기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지은 죄와 그들이 죄에 대해서 가졌던 태도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음행과 포도주에 취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버리거나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나무와 막대기를 섬기길 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지적하시고 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려 두시려고 하십니다. 징계를 하면 그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그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벌을 받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더 큰 벌을 받길 원하셨지만, 그들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이 깨닫길 원하셨습니다. 부끄러워하고 죄로 인해 괴로워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그 죄가 다른 이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막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죄를 싫어하십니다. 또한 죄로부터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끔찍한 경고의 말씀을 서슴치 않고 하십니다. 이 경고가 경고로 들리는 것, 이 위협이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입니다. 이 복 가운데 살고 있음을 감사하며 과감하게 자기 죄에서 돌이킬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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