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9일 일요일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 / 로마서 2장 25절 - 29절

로마서 2장 25절 - 29절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


사도 바울은 이전 단락에서 유대인의 교만함에 대해서 지적하고 고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먼저 받았다고 자부하면서 교만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을 자신들을 분별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신들이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라고 여기며 자기 스스로를 선생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끝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유대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할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할례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유대인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지켜야 할 가장 첫 율법입니다. 할례를 받았는지 아닌지를 통해 그가 유대인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할례도 율법에 속한 것이며 할례를 행했다고 해서 율법을 어기고 있는 위선적 태도를 숨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할례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지 말씀을을 묵상해봅시다.


할례와 이스라엘


할례는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할례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시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법이었습니다. 할례를 통해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사는 이방인들과 자신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할례 이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후사를 낳았습니다. 할례는 율법이 없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과 그렇지 않은 백성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도 할례를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 때에 이르면 할례를 받을 대상자의 범위가 늘어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명령 받았을 때는 아브라함의 집에 속한 모든 남자였고 혈연관계가 있는 자들이 행했습니다. 가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민족과 나라를 이루어야 하는 모세 시대에는 이스라엘 나라와 그 백성에 속하려고 하는 모든 이방인들도 할례를 행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따라온 수많은 잡족들이 있었고 그들도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한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길갈에서 다함께 할례를 받으므로 가나안에 있던 이방 족속과 구분하였습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이었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증표였습니다. 


할례와 율법


할례가 이스라엘 백성을 나타내는 증표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지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할례를 행하라는 명령은 율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가 율법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다른 율법을 지키지 못해도 할례에 대한 법은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같이 생각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바울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데 할례를 했다고 해서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옛날 선지자들이 외쳤던 것과 일맥상통한 이야기 입니다. 선지자들은 할례를 받았으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이방신을 섬겼던 이스라엘을 버리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할례 받지 않은 이방 왕 고레스는 하나님께서 세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을 구원한 모세처럼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셨습니다. 할례는 할례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정한 율법을 지키고 그 율법을 정한 하나님을 기뻐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증표만으로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겉으로만 율법을 지킨다고 표시한다고 해도 율법은 우리의 행동과 말에 대한 규율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사고 방식의 완전한 변화를 목표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와 악으로 인해 부패한 인간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처럼 “내 안에 정직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옵소서!” 하며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할례와 진정한 유대인


할례를 행했다면 법적으로 유대인으로 인정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옛날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진정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인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인정의 수준을 율법으로 정하셨습니다.


할례 또한 율법의 한 계명이지만 율법은 모양이나 말, 행동만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생각과 사고 방식, 그 마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할례와 같이 보여지는 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우리 삶 전체를 규정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로 만들어나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셨을 때 빛이 생긴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으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창조의 권능에 저항하고 오직 표만 취하였습니다. 진정한 유대인,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진정한 유대인으로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율법은 영적인 것


지금까지 할례와 이스라엘, 할례와 율법의 관계를 살펴보며 진정한 유대인,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지 로마서 2장 말씀을 통해 묵상해보았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을 명령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겉으로만 표시 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마음과 영이 변화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변화이며 우리에게도 큰 기쁨이 되는 변화입니다. 다윗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이 기쁨을 누리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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