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0일 일요일

진흙이 토기가 되다 / 로마서 9장 14 - 29절


로마서 9장 14 - 29절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진흙이 토기가 되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너무나 많은 특혜를 하나님께 받아 누린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 그리고 믿음의 조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유대인에게서 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고도 언약대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구원 받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그 언약의 말씀이 통째로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 모두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이삭의 자손을 택하시고 이삭의 자손 중에서도 야곱의 자손을 택하셔서 결코 혈통에 얽매이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는 것이 구원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구원 받는다! 라고 하는 이 절대적 조건에 대한 설명입니다. 절대 주권으로 구원 받을 자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베푸셨는지 본문을 묵상하며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불의하지 않으신 하나님


우리는 마음대로 하는 사람을 독재자라고 부릅니다. 역사 속에서 독재자는 항상 상상할 수 없는 나쁜 짓을 저지르고 큰 오명을 남겼기 때문에 독재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 모두를 택하지 않으시고, 이삭과 야곱만을 택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독재자처럼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선택은 불의하지도 않고 불공평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선택하신 이유는 불쌍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간절히 원하는 자를 보시지 않고, 달음박질 잘하는 자도 보시지 않으십니다. 오직 긍휼함을 받을 자를 긍휼히 보십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기 위하여 맛있는 별미를 만들어오라고 말했습니다. 에서는 그 축복을 받기 원하여서 활과 화살통을 들고 들을 쏘다니며 사냥감을 구했고 아버지를 위해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시는 바와 같이 형 에서에게 밀려 집 안에만 있던 야곱에게 축복의 기회가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시고자 하는 자를 완악하게 하십니다. 에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출애굽 당시 바로도 똑같은 처지였습니다. 출애굽 당시 바로는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파산에 이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애굽의 모든 좋은 것들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기 위해 벌어진 일입니다. 


토기장이의 비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셨다면 하나님께 책망 받을 일도 없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단호하시며 처벌까지 하십니다. 이 처사에 부당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당함은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안다면 가질 수 없는 감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쓰이는 그릇으로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미 만들어진 그릇들은 자신들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토기장이에게 따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그릇을 만든 토기장이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의 권한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진노하여 깨버리기로 한 그릇을 반대로 오래 참음으로 관용하실 수 있습니다. 또 영광 받기로 예정된 그릇에게 더 큰 영광을 주셔도 그것은 토기장이의 권한입니다. 우리는 모두 토기장이의 손에서 깨어져도 상관없던 그릇이었습니다. 토기장이는 우리를 용납하시고 돌아오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핑계 댈 것이 없고 변명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아줄 필요가 없는 우리를 참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구원


토기장이가 지으신 그릇에는 이방인 그릇도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예언을 주셨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은 우발적인 것도, 즉흥적인 것도 아닙니다. 토기장이의 변덕도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계획된 구원입니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호세아와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본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이라 하더라도 전체가 아니라 남은 자만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시켜 줍니다. 택하신 자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원칙이 드러납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납니다.


구원은 구원 받는 자의 자격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우리 하나님께만 그 권한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떤 조건도 하나님께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설명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중 작정을 하십니다. 구원하실 자와 그대로 내버려 두실 자를 구분하셔서 작정하셨습니다. 그 작정에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습니다. 오로지 그 작정을 하실 분은 우리 하나님 밖에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셔서 기다려 주십니다. 당장 해야해야 할 처벌을 미루시고 또 미루시며 참으시고 또 참으십니다. 우리는 긍휼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구원을 즐거워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을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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